‘김정은 군사 드라마’의 실패가 예고된다
  • 정영태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 승인 2015.09.22 09:59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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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협상장에 끌어들이려는 북한 외교전략 안 먹힐 듯

극한 상태로 치달았던 한반도의 위기 상황이 북한 당국이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전격적으로 제의하면서 새로운 해결 국면을 맞았다. 8월25일 남북 고위급 회담의 합의 도출 이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대화의 손짓을 하고 나섰다. 물론 그 자신이 “우리가 주동적으로 남북 고위급 긴급 접촉을 열고 무력충돌로 치닫던 일촉즉발 위기를 타개했다”면서 모든 공(功)을 자기 쪽으로 돌리기는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는 화(禍)를 복(福)으로 전환시킨 이번 합의를 소중히 여기고 풍성한 결실로 가꿔야 한다”(8월29일 조선중앙통신)고 함으로써 남북 관계 개선을 향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이 보여준 행동에 대해 한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에서는 또다시 실망과 함께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합의 국면에서 동시에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 움직임까지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이러한 ‘좌충우돌’식 태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북한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태도는 결코 ‘좌충우돌’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하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2012년 12월12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서 장거리 3단 로켓인 은하3호를 전격 발사했다. 사진은 발사 준비 중인 동창리의 은하3호 장거리 로켓 주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 ⓒ AP 연합

‘좌충우돌’ 아닌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

첫째, 북한이 먼저 제의한 남북 고위급 회담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남한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포함한 심리전 중단이다. 북한 당국은 ‘남측이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 방송을 8월25일 12시부터 중단하기로 하였다’는 합의를 이끌어낸 것을 굉장한 성과라고 평가한다. 비록 조건부이긴 하지만 그들의 1차적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둘째, 이번 ‘8·25 합의’로 북한은 남북 관계 개선 카드를 주도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남북 고위급 회담 합의를 외세가 배제된 상태에서 남북이 직접 머리를 맞대어 해결한 것임을 강조해 주한미군 철수를 비롯한 ‘반미 활동’을 확산하기 위한 명분으로도 삼고자 한다. 물론 북한은 남북 대화와 협상을 통해 금강산 관광 재개 및 개성공단 확대 등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이득을 동시에 노리고 있기도 하다. 이를 위해 그들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우선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남한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 재개를 가장 목말라 하는 인도적인 사업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고 북한 당국은 이를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남한의 모든 대북 관련 비판이라든가 부정적인 행태를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포함한 남북 관계 개선 카드로 차단 또는 억제하고자 하는 태도를 표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북한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이 “해외 행각에 나선 남조선 집권자가 우리를 심히 모욕하는 극히 무엄하고 초보적인 정치적 지각도 없는 궤변을 늘어놓았다”고 비난하면서 “지금의 북남 관계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장과 같다”(9월4일 조선중앙통신)고 위협한 것이 대표적이다.

셋째, 처음부터 북한은 8·25 합의에 언급된 ‘비정상적인 사태’ 내용에 미사일 시험발사라든가 핵실험은 예외로 하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평양 당국은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평화적 이용을 위한 ‘위성’으로 부각하고, 핵실험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로 추진하게 된다는 선전 활동을 강화함으로써 8·25 합의와 관계없이 이를 정당화하고자 한다. 실제로 북한의 ‘국가우주개발국’ 국장은 “현 시기 우주 개발은 세계적 추세로 되고 있으며 많은 나라들이 통신 및 위치 측정, 농산물 수확고 판정, 기상 관측, 자원 탐사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위성들을 제작·발표하고 있다. 세계는 앞으로 선군조선의 위성들이 당 중앙이 결심한 시간과 장소에서 창공 높이 계속 날아오르는 것을 보게 될 것”(9월14일 조선중앙통신)이라는 말로 평화적 용도의 ‘위성 발사’를 예고했다. 이에 더해 북한 당국은 핵실험 위협도 재개하고 나섰다. 그들은 “미국과 적대 세력들이 무분별한 적대시 정책에 계속 매여달리면서 못되게 나온다면 핵뢰성(핵실험)으로 대답할 만단의 준비가 되어 있다”(9월15일 조선중앙통신)는 ‘조건부 핵실험’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9월3일 북·중 접경지역인 신의주의 측정계기 공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월4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핵실험 강행 판단은 다소 유보적

이렇게 볼 때, 북한 당국은 오는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을 전후해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10월10일 이전에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사일 시험발사는 기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이후도 될 수 있다. 어떻든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는 조만간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정권이 과학기술 성과로 경제 발전을 이룩하겠다는 약속 이행 차원에서도 지속적인 ‘로켓’ 또는 ‘위성’ 시험발사는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라의 경제 발전에 적극 이바지하기 위하여 기상 예보 등을 위한 새로운 지구 관측 위성 개발 마감 단계에서 다그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위성 개발의 새로운 높은 단계인 정지위성에 대한 연구 사업에서도 커다란 전진을 이룩하였다”(9월14일 조선중앙통신)고 밝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핵실험에 대한 판단은 다소 유보적이다. 북한 당국은 “핵보유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미국의 극단적인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에 대처한 자위적 조치”라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보면, 미국이 북한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포기하고 북·미 회담 재개 등 대화로 나온다면 핵실험을 중단하거나 포기할 수 있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이에 응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즉 김정은의 핵 및 미사일 도발 카드가 미국에 먹혀들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오히려 북한이 이를 강행할 경우, 미국은 더욱더 강화된 대북 제재 조치를 이행하고자 할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시험 도발로 인한 또 하나의 군사적 긴장 조성 드라마는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윌슨센터 세미나에서 “북한이 국제적 제재로 이어지는 위협·도발 행위를 한다면 북한의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 북한 ‘군사 드라마’의 실패를 예고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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