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식구, 오늘은 적”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09.22 10:07
  • 호수 13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백억 횡령 사건에 검찰 고위직 출신 ‘안대희 vs 노환균·홍만표·신경식’ 법정 공방

수백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고발당한 코스닥 상장회사 창업주가 검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세 명의 거물급 변호사가 한꺼번에 변론에 참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법조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세 명의 변호사는 노환균 전 서울중앙지검장(연수원 14기)과 신경식 전 수원지검장(연수원 17기), 홍만표 전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연수원 17기)이다. 그래서인지 피의자는 회사 돈 300억원을 횡령했음에도 결과적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 정도의 돈을 횡령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친 피의자가 불구속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코스닥 상장사 횡령 사건에 법조계 이목 집중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참엔지니어링은 LCD 패널 검사 장비로 연매출 1300억원 이상을 올리는 회사로 2004년 코스닥에 상장됐다. 대구에 있는 참저축은행을 비롯한 4개 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이 회사의 창업주이자 최대주주는 한 아무개 전 대표이사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011년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차명 주식에 대한 증여세 34억원을 부과받았다. 2012년에는 주가 조작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세무조사 이전부터 금융권과 개인에게 빚을 지고 있던 한 전 대표는 증여세까지 부과되자 2010년부터 회사 회계 담당자와 함께 회사 돈을 횡령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거래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방식으로 2010년 7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총 28회에 걸쳐 16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저축은행으로부터의 불법 대출 및 타 계열사 비자금 조성 등을 통해 총 290억원을 횡령했다. 이러한 사실은 2014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의 세무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세무조사 후 대표이사가 계열사 저축은행장으로 있던 최 아무개씨로 교체됐다. 최 대표이사는 한 전 대표의 측근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통해 선출됐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참엔지니어링 본사. ⓒ 시사저널 최준필

대표이사 교체 후 일부 임직원들 사이에서 최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회사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직원들은 세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전 대표를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2014년 12월16일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 측은 최 대표가 직원들을 등에 업고 경영권을 빼앗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한 전 대표가 검찰에 고발당한 사흘 후 이사회는 최 대표를 해임하고 한 전 대표를 다시 대표이사에 앉혔다.

이때부터 양측의 난타전이 시작됐다. 창업주가 직원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사적으로 유용한다는 주장과 신임 대표이사가 직원들을 등에 업고 회사를 빼앗으려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한 전 대표 측은 자신을 고발한 직원 8명을 해고하는 한편, 최 대표를 수원지검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자신과 관련한 각종 개인정보를 외부에 유출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최 대표는 자신을 해임한 이사회가 불법적으로 개최된 이사회이므로 법적 효력이 없다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다. 법원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한 전 대표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또한 지난 3월30일 열렸던 주주총회 결과에 따라 부당 해고된 직원들과 최 대표의 자격도 회복됐다.

그러는 사이 검찰 수사도 진행됐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에서는 2015년 1월부터 7월까지 6개월간 한 전 대표의 횡령 및 배임 혐의를 수사했다. 한 전 대표는 노환균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신경식 전 수원지검장, 홍만표 전 대검 수사기획관이라는 세 명의 거물 변호사 등에게 변론을 맡겼다. 한 전 대표 측은 몇 차례의 검찰 수사에서 횡령 사실에 대해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횡령은 최 대표와 공모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5월1일 최 대표를 고발했다.

최 대표에 대한 고발이 이뤄지면서 검찰은 세 차례에 걸쳐 최 대표를 소환조사했고, 회사 돈을 횡령한 사실이 있는지를 추궁했다. 그는 검찰 수사에서 “한 전 대표가 회사 돈을 횡령하던 시기, 참엔지니어링의 베트남 해외법인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세 차례에 걸친 조사에서 기본 사실 여부만 물은 채 한 전 대표와 최 대표 모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290억 횡령 피의자 불구속 기소 석연치 않다”

법원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최 대표의 범죄 혐의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영장을 기각했다. 동시에 한 전 대표의 구속영장도 기각했다. 검찰은 곧바로 두 사람을 불구속 기소했다. 수백억 회사 돈을 횡령해 구속이 확실했던 한 전 대표 입장에서는 경영권 분쟁을 부각시켜서 최 대표와 함께 불구속 기소된 반면, 최 대표 입장에서는 한 전 대표의 횡령을 도운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검찰 수사에는 거물급 변호인단의 조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최 대표가 횡령을 도왔다면 지난해 말 한 전 대표에 대한 고발이 이뤄졌을 당시 맞고발하는 것이 당연한데, 검찰 수사가 5개월 정도 이뤄진 시점인 5월1일 갑자기 최 대표를 맞고발하면서 사건을 경영권 분쟁으로 몰고 간 것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며 “한 전 대표에 대한 횡령 사건을 경영권 분쟁으로 물타기 하려는 고도의 전략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또한 한 전 대표 측은 대표이사에 복귀했던 올해 1월14일 노환균 변호사가 고문으로 있는 법무법인 태평양에 법률자문 명목으로 회사 돈을 빼내 1억6500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최 대표가 복귀한 후 참엔지니어링 측은 “개인적 횡령 사건에 대한 수임료를 회사 측에서 대신 지급한 것은 엄연한 횡령”이라고 문제 삼았고, 태평양 측에서 이를 다시 돌려준 것으로 확인됐다.

최 대표 측은 기소 직후 검찰 출신 안대희 전 대법관(연수원 7기)이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평안의 변호사를 선임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법조계에서 거물급 변호인 간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외형적으로 노환균·신경식·홍만표 세 변호사는 한 전 대표의 횡령·배임 혐의를, 안대희 변호사는 최 대표의 공모 혐의를 각각 변호하는 모양새다. 안 변호사는 사건을 맡을 경우 후배들과의 대결 구도가 부각돼 처음에는 사건을 거절했으나, 최 대표 측의 사정을 전해 듣고 마음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의 공소장 내용대로 경영권 분쟁의 양상을 띠고 있는 것도 사실이어서 사실상 양측 변호인 간 불꽃 튀는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