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를 껴안고 한국을 견제하라”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5.09.22 10:13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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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중추절을 법정 공휴일 지정한 속내

9월8일 한국 언론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산 제품이 중추절(仲秋節) 선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8월7일~9월6일 인터넷 쇼핑몰 G마켓의 중문 사이트에서 선물 관련 상품의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5%나 증가한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한국산 제품이 중추절 특수 덕분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보도는 오보(誤報)다.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 판매량이 급증한 것은 중추절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해당 사이트의 인지도가 지난 1년간 상승했고,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이 화장품과 가공식품을 대거 구입했을 뿐이다. 중국은 우리와 달리 새 학년이 9월에 시작된다. 그리고 9월10일 교사의 날을 맞아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 구매가 급증했다.

 

정치적 의도를 담은 채 2008년부터 중추절이 국경일이 된 탓에 중국에선 우리네 추석과 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 Xinhua

1949년 중추절 등 공휴일에서 제외

이처럼 우리 언론의 ‘중추절 특수’ 보도는 한국적 시각과 잣대로 중국을 재단한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중국에서 중추절이 국가 공휴일이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49년 들어선 사회주의 정권은 미신 타파와 전통 악습 폐지를 내세워 춘절을 제외한 중추절, 청명절(淸明節), 단오절(端午節) 등을 공휴일에서 제외했다. 타이완과 홍콩의 경우 공휴일을 유지했지만 타이완은 중추절 당일, 홍콩은 중추절의 다음 날 단 하루만 쉰다.

법정 공휴일이 된 것은 2008년이었다. 중국 정부는 2006년 중추절을 먼저 국가급 무형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했고, 다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겉으로는 ‘전통 명절의 의의와 풍습을 되살린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인 목적이 숨어 있었다. 첫째, 줄곧 중추절에 쉬면서 관련 의식을 지켜온 타이완ㆍ홍콩ㆍ마카오 주민과 해외 화교를 포용하려 했다. 둘째, 중추절과 비슷한 명절인 추석을 3일간 쉬며 전통의례를 지내고 가족 화합을 다진 한국을 의식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 흐름은 2005년 ‘강릉 단오제(端午祭)’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데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중국 언론은 “한국 정부가 ‘단오절’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록시켜 중국의 전통 명절을 강탈해갔다”고 앞 다퉈 보도했다. 진실은 수백 년간 강릉에서 전승돼 내려온 향토신제(鄕土神祭)를 등록한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신문과 방송은 단오절 자체를 등재한 것처럼 왜곡 보도해 중국인들을 격분시켰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등에 업고 중국 정부는 4대 전통 명절을 국가급 무형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했고, 2009년에는 단오절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 그에 이어 나온 조치가 바로 2008년 춘절에 더해 남은 명절 모두를 국가 공휴일로 지정한 것이다.

반세기 넘게 중추절에 쉬지 않고 일했던 습관 때문에 중국에서 음력 8월15일은 우리와 같은 추석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 보통 3일간 쉬지만, 직장이 있는 대도시와 드넓은 대륙 한편에 있는 고향을 자동차나 기차로 오고 가려면 꼬박 2~3일이 걸린다. 항공편을 이용하면 귀향하는 시간이 짧아지지만, 값비싼 비행기 표를 사서 고향에 가 잠시 머무르다 되돌아올 월급쟁이는 그리 많지 않다.

 

중추절 음식 월병, 뇌물의 통로로 변질

무엇보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중추절에 차례나 성묘를 지내는 풍습이 남아 있지 않다. 중국 남부의 객가(客家)나 일부 소수민족이 조상을 모시는 제례(祭禮)를 지내지만,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집 앞에 등(燈)을 내걸거나 온 가족이 달맞이를 하며 소원을 비는 것이 유일한 중추절 의식이다. 그나마 중국 특색의 중추절 풍습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 월병(月餠ㆍ웨빙)을 먹는 일이다.

월병은 밀가루로 만든 빵에 팥을 위시한 각종 소를 넣어 둥글게 만들어 찐 중국 전통 음식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월병은 제수품으로도 쓰였기에 집집마다 직접 쪄서 먹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쉬지 않는 중추절을 보내면서 월병은 가정이 아닌 공장에서 생산됐고, 가족이 모두 모여 먹기도 힘들어졌다. 오늘날에는 추석 때만 주고받는 선물로 변질됐다.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월병 뇌물’이다. 1990년대부터 중추절을 앞두고 직위상·사업상 관계에 따라 고가의 월병을 주고받는 풍조를 일컫는다. 처음에는 월병 안에 금을 넣은, 1만 위안(약 184만원)이 넘는 호화판 선물 세트가 나와 불티나게 팔렸다. 10년 전부터는 현금화할 수 있는 월병 상품권이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다.

뇌물의 강도가 갈수록 심해지자, 결국 중국 정부가 칼을 뽑아들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부패 척결에 나서면서 월병 뇌물에도 손을 댄 것이다. 2년 전부터 수천 위안에서 수만 위안을 넘나들던 월병은 자취를 감췄지만, 여전히 원가보다 10배 이상 비싼 고급 월병이 중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같은 중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추석의 제례의식과 의의를 온전히 보존한 나라는 오직 한국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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