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수면은 오히려 ‘독’
  • 김형자 | 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09.22 10:32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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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 평소 기상 시각보다 1~2시간 더 자면 피로 회복

잠자는 시간은 금(金)이다. 깨어 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만큼 잠자는 시간에 얼마나 단잠을 자느냐도 중요하다. 일상에 시달려 항상 잠이 부족했던 직장인들, 보통 주말에 잠을 몰아서 자기 마련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과연 이렇게 몰아서 자는 잠이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될까.

직장인들처럼 늘 잠이 부족한 경우 당장 피로가 문제지만 장기적으로는 건강을 망치게 된다. 수면 부족은 운동 부족, 부적절한 식사와 함께 장기적으로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3대 적이다. 따라서 못 잔 수면 시간은 언젠가는 채워줘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통계청이 국민 4만2973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은 평일 평균 7시간23분, 여성은 7시간13분을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상당수 직장인은 4~5시간도 못 자는 게 현실이다. 술자리가 잦은 직장문화와 과도한 업무가 ‘잠 못 드는 사회’를 부추기고 있는 것. 요즘엔 인터넷에 빠져 쉽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연구팀에 따르면, 잠을 4시간으로 줄일 경우 포도당 처리 능력이 떨어져 당뇨병의 전조 증세가 나타난다. 또 잠자는 동안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만들어지는데, 잠을 덜 자면 아침에 코르티솔이 적어 멍한 상태가 되고 대신 오후에 코르티솔이 많이 나와 예민해진다. 더구나 포만감을 느끼는 렙틴호르몬도 적게 분비돼 허기를 잘 느끼고 많이 먹게 돼 비만이 될 가능성도 커진다. 수면 부족이 계속되면 백혈구가 줄어들고 면역 시스템이 깨지며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 유방암에 걸릴 위험 또한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잠은 저축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주말이나 추석 연휴에 하루 종일 잠자기로 지금까지 못 잔 시간들을 보충해주면 건강에 이로울까.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연구팀은 ‘주말 잠 몰아 자기 효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주말에 8~10시간을 몰아 잘 경우 평소 6시간을 잘 때보다 혈중 스트레스 호르몬과 염증 수치가 절반 정도, 고혈압 위험도는 3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 결과만 보면 주말에 잠만 자는 행위는 꽤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주말 이틀 동안 각각 10시간 이상 잠을 잘 경우, 뇌의 생체 리듬이 오히려 지연돼 우리 몸은 오전 7시를 오전 5시 정도의 새벽으로 인식해 피로감을 더 느끼게 되고, 우울증과 약물 중독의 위험성까지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말에 푹 자고 났는데 오히려 월요일 아침에 더 일어나기 힘들고, 하루 종일 피곤한 ‘월요병’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잠은 저축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추석 연휴나 주말에 몰아서 자는 장시간의 수면은 오히려 건강에 독이 된다.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평소 일어나는 시각보다 1~2시간 늦게 일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도 피곤하다면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에, 20?30분 낮잠을 청하는 것이 좋다. 낮잠도 30분 이상으로 길어지면 잠에서 깨어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소 어느 정도 잠을 자야 적당할까? 대다수 사람은 잠에 들면 대략 90분 동안 4단계의 수면 상태를 거쳐 꿈을 꾸는 렘수면에 도달한다. 미국 코넬 대학 의대의 제임스 매스 박사는 “사람은 수면 주기가 4~5번 되풀이돼야 컨디션이 최고”라면서 8~9시간을 자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적정 수면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다음 날 건강한 생활이 가능한 수준이면 좋다는 게 의학계의 공통된 견해다. 어떤 사람은 짧은 시간에도 깊이 잠들 수 있기 때문이다. 뇌에 있는 ‘생물학적 시계(Biological Clock)’가 낮과 밤을 인식하는 기준이 사람에 따라 달라 어떤 사람은 9시간을 자야 하지만 어떤 사람은 6시간만 자도 충분하다는 얘기다.

자신의 적정 수면 시간을 알려면 몸이 개운하다고 느끼는 수면 시간을 찾는 게 우선이다. 평소 잠을 몇 시간 잤는지 기록한 다음 가장 컨디션이 좋은 시간을 택해 그만큼 자는 것이 방법이다. 이보다 많이 자면 오히려 몸이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시간만이 척도는 아니다. 잠을 적게 자는 것도 해롭지만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 더 해롭다. 잠을 설치고 난 다음 날은 하루 종일 피곤하다. 물론 한번 잠들면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자는 사람이 있다. 으르렁대는 천둥소리는 기본이고, 옆에서 대판 싸움을 해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도 쿨쿨 잘 자는 사람은 수면 중 잡음이 들어가지 않도록 소음을 차단하는 시스템이 뇌 안에 갖춰져 있는 경우다. 그러나 이처럼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보통 단잠을 자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추석 연휴 푹 자고 싶다면 음식도 가려야

평소 깊은 잠을 자고 싶다면 깨어 있을 때 뇌를 활발히 움직여줘야 한다. 의사들은 불면증 환자에게 ‘낮에 밝은 태양 아래서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라’는 처방을 내린다. 햇빛을 받으며 산책을 하면 수면을 돕는 ‘멜라토닌’ 호르몬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멜라토닌은 밝은 빛 아래서 억제되고 어두울 때 합성·분비된다. 햇볕을 쬐며 산책하는 동안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되고 그만큼 비축된 멜라토닌이 밤에 활발히 분비된다. 따라서 밤에 더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된다. 멜라토닌이 분비됐을 때 자야 각종 면역 호르몬, 성장 호르몬, 부교감신경, 즉 심장과 뇌가 안정된다.

그동안 부족했던 잠을 추석 연휴에 보충하려는 사람들은 음식 또한 가려 먹어야 한다. 일단 저녁에는 육류 섭취를 삼갈 것. 육류를 먹으면 깊은 잠을 자기 힘들다. 육류는 소화되는 과정에서 타이로신이라는 아미노산을 발생시킨다. 타이로신은 수면을 방해한다. 잠자기 3시간 전에는 술도 마시지 말 것. 잠을 자려고 술을 마신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술은 중추신경계를 억제해 잠이 드는 데는 도움을 줄지 몰라도 깊은 잠을 자는 데는 방해가 된다. 술을 많이 마시고 잠자리에 들면 쉽게 잠들었다가도 새벽 3~4시에 잠이 깨 화장실에 가고 싶어진다. 술이 깨면서 중추신경계에 대한 억제가 풀리기 때문이다.

반면 탄수화물은 깊은 잠을 유도한다. 탄수화물 소화 과정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은 잠을 유도하는 물질인 ‘트립토판’의 활동을 돕는다. 잠자기 전 간단하게 먹기 좋은 음식은 탄수화물과 칼슘을 함유하고, 단백질도 소량 들어 있는 아이스크림, 두부와 개암, 오트밀, 건포도 등이다. 우유, 콩, 해산물, 달걀, 현미 등도 트립토판이 많이 함유돼 수면을 돕는다.

우리는 모두 매일 잠을 잔다. 잠을 잘 잔다는 것은 재충전을 충분히 해 내일을 맞을 준비를 잘하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밤샘은 삼가야 한다. “공부 또는 일에 지친 사람들이여, 밤샘을 하지 말고 아름다운 여인의 몸매를 떠올려서라도 푹 자고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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