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시행 1년]② 휴대폰 가격 거품은 여전
  • 민보름 기자 (dahl@sisabiz.com)
  • 승인 2015.09.22 11:52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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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 장려금 주는 대신 값 부풀려...리베이트 관행 계속돼
단말기 보조금 관련 삼성전자와 공정위 간 항소심 판결문 일부(선고일 2014.02.06)

2008년 시작돼 여전히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다. 그 유명한 ‘휴대폰 출고가 부풀리기 담합 사건’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 7월 2008년부터 시작된 제조사 및 통신사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분을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이동통신사에 가장 많은 장려금을 제공한 삼성전자에 벌금 141억 원이 부과됐다.

출고가 부풀리기가 논란이 되자 당국은 지난해 10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시행했다. 단말기 제조사가 리베이트나 지원금을 미리 반영해 휴대폰 가격을 부풀리는 관행을 막자는 것이 단통법 시행 취지였다.

그럼에도 단말기 유통시장은 여전히 혼탁하다. 일부 고가 프리미엄 폰 출고가는 여전히 100만원에 육박한다. 단말기 제조업계와 통신업계 모두 독과점 체제나 다름없다. 삼성전자, SK텔레콤 등 시장점유율 50%에 달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존재한다.

◇ 독과점 기업의 출고가 부풀리기

최근 국정감사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9개월 간 제조사가 이통사와 대리점에 준 리베이트는 8000억 원이 넘는다. 단통법 시행 이후에도 제조사는 통신시장에 판매 장려금을 뿌리고 있었다.

휴대폰 판매 장려금은 단말기 가격을 왜곡하는 대표적 관행이다. 관련 내용은 시사비즈가  입수한 2012년 공정위 전원회의 의결서에도 나타나 있다. 2011년 8월 22일 삼성전자 부장은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출고가로 단말기 성능을 판단한다”면서 “싼 것을 싸게 사는 것보다는 비싼 것을 싸게 산다고 할 때 훨씬 많이 구매한다”고 진술했다.

제조사와 이통사는 이를 이용해 휴대폰 출고가를 높게 책정한다. 대신 대리점에 판매 장려금을 지급한다. 대리점은 주로 장려금이 많은 단말기를 소비자에게 추천한다. 소비자는 싼 가격이 매겨진 휴대폰을 사는 대신 비싼 휴대폰을 판매 장려금이나 불법 페이백(보상금)을 받으며 구입하는 셈이다. 그리고 단말기 시장은 고가폰 위주로 고착화한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단말기 공급자가 시장을 과점하다 보니 통신사와 제조사 간 담합을 규제하지 못하고 시장 논리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단말기 제조사와 통신사를 제재한 것도 담합 행위와 관련있다. 제조사와 통신사가 협의해 판매 장려금과 휴대폰 출고가를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 장려금 공개 왜 못하나

공정위는 통신사와 제조사가 단말기 가격에 대해 협의하고 제조사가 장려금을 지급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런 행위를 할 경우 장려금 액수를 공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은 공개 명령에 대한 취소 판결을 내렸다.

그 전에 서울고등법원은 공정위의 시정명령에 대해 효력정지 판결을 내렸다.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국내 제조3사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통3사가 항소심 판결 일부에 불만을 갖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즉 이들은 효력 정지에 따라 소송 기간 공개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대법원이 공개 명령에 대한 유효 판결을 내려도 문제다. 취소 판결이 파기돼 고등법원에서 다시 판결하더라도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업계는 영업비밀보호를 근거로 장려금 공개를 반대한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는 삼성전자가 제공하는 장려금 공개가 비례원칙 상 과도한 조치라고 해석했다. 고법은 제조사와 이통사가 담합해 출고가를 부풀린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제조사가 장려금 공개로 영업비밀을 노출하도록 하는 명령은 지나치다고 평했다.

이는 국무총리 산하 규제개혁 위원회 회의 당시 나온 논리와 유사하다. 단통법 고시안에 있던 분리공시제는 이 회의 결과 삭제된다. 당시 삼성전자는 제조사 중 유일하게 분리공시제를 반대했다. 그 이유로 영업비밀보호를 내세웠다. 이 주장은 받아들여졌고 결국 단통법에서 분리공시제는 빠졌다.

◇ 당국 규제 의지와 분리공시제 필요

당국의 규제 의지가 약한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이통사 영업정지 결정을 내릴 때 제조사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10일 방통위 국정감사에선 방통위가 애플과 삼성전자, LG전자의 프리미엄 신제품 출시 시기를 피해 이동통신사 영업정지 결정을 내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리베이트 단속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하는 의견이 많다. 방통위가 실시간 모니터링해야 단속 효과가 있지만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 있다.

보조금 분리공시제 도입에 대한 여론도 높다. 분리공시제는 단말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가 제공하는 보조금을 따로 게시하는 제도다. 보조금이 따로 공개되면 제조사가 부풀리는 가격 규모가 나타난다. 소비자는 이를 통해 휴대폰 가격을 합리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공정위가 2012년 제조사 판매 장려금을 공개하라고 명령했던 이유다.

현행 법으론 공정위가 대법원에서 승리하더라도 제조사 지원금 규모를 공개하도록 할 방법이 없다. 한 법조인은 “현재로선 장려금 공개 명령을 취소한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면서 “분리공시제가 통과되지 않으면 공개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분리공시가 지나친 규제로 시장 질서를 왜곡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나온다. 소수 사업자가 이미 제조와 통신 시장을 장악한 탓이다. 자유경쟁 체제를 회복하려면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애초에 분리공시제가 단통법의 핵심이었다는 주장이다.

박기영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는 “애플이 정부 도움 받아서 큰 게 아니지 않냐”며 “기업들은 정부 제도를 반대해 이익을 얻으려 하기 전에 소비자를 위한 혁신이나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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