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조원 원전 해체 시장, 우리에겐 아직 ‘그림의 떡’
  • 원태영 기자 (won@sisabiz.com)
  • 승인 2015.09.25 18:51
  • 호수 13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해외 진출에 의욕...경험·기술 부족 등 과제 산더미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한 고리원전 / 사진=한국수력원자력

국내 최초 상업용 원자로 고리1호기가 2017년 6월 영구정지한다. 이를 계기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최대 1000조원에 달하는 세계 원전 해체 시장에 뛰어든다는 야심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고리1호기는 1978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2008년에는 2017년까지 연장 운행이 결정됐다. 그러나 잦은 사고와 2012년 2월 완전 정전사고가 발생한 것이 알려지면서 폐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2015년 6월 산업통상자원부는 고리1호기를 2017년 6월 영구정지하기로 결정했다.  2022년 해체에 착수해 2030년까지 작업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부처 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미래부는 해체 단위 기술 및 공정을 개발하고 산업부는 표준 해체 설계 기술 확보에 나선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해체 관련 규제와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현재 운영 중인 원전은 24기다. 한수원은 원전 1기당 해체비용으로 6033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내다 봤다. 이를 합산하면 국내 전체 원전 해체 시장은 14조원에 이른다.

해외 시장은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현재 가동을 멈춘 원전은 149기다. 운영 중인 원전 437기도 2050년이면 대부분 작동을 멈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 분야의 시장 가치가 2050년까지 10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원전 해체 기술을 가진 나라는 많지 않다. 미국·일본·EU(유럽연합) 정도다. 해체 경험도 미국 15기, 독일 3기, 일본 1기뿐이다. 한국도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시장임에는 틀림없다.

정부는 2019년까지 해체 종합연구센터를 건립하고 2030년 이후 국내 원전 자력 해체 및 해외 해체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기계·화학을 비롯한 관련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원전 해체 경험 전무...핵심 기술도 부족

이러한 정부 계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과제가 많다. 우선 한국은 원전 해체 경험이 전무하다. 소규모 저방사능 시설 해체 기술은 있지만 원전과 같은 대규모 고방사능 시설을 해체한 적은 없다. 또 한국은 원자력시설 해체에 필요한 38개 핵심 기술 중 21개 기술만 확보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체작업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최근 3년간 해체관련 예산으로 38억원을 지출했다. 전체 연구개발(R&D)투자 금액 1조241억원의 0.37%에 불과하다. 한수원이 그동안 원자력 해체 시장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징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적기에 독자적인 원전 해체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해외 기술로 해체사업을 추진할 경우 향후 14조원에 이르는 국내 시장 잠식이 우려된다”며 “이렇게 되면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해체 산업육성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원전해체 비용도 문제다. 정부가 예상한 원전 1기당 해체 비용은 약 6000억원이다. 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IEA) 추산에 따르면 고리1호기 해체비용은 1조원에 달한다. 또 원전해체를 위해서는 제염절차와 안전도기준, 인력양성과 교육훈련 규정이 필요하지만 어느 것도 마련되지 않았다.

원전해체는 상용후핵연료 냉각에 4~5년이 필요하고, 이후에도 10여년의 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해체비용의 안정적 재원확보가 우선이다.

특히 한수원이 원전 해체 충당금을 빚을 내서 적립하고 있어 막상 해체에 들어갔을 때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원전해체 시장에 대한 낙관론 경계해야

해외 원전해체 시장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원전해체 시장 규모는 기술 보유국과 개발 중인 국가를 제외하면 약 70조원 정도”라고 말했다.

정재준 부산대학교 교수는 “미국은 이미 원전 16기를 해체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영국과 독일 등도 상당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섣불리 해체를 시작하면 해체기술의 해외수출은 고사하고 국내시장도 지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원자력시설 해체기술 종합연구센터’ 유치경쟁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현재 기술 개발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부산, 울산 등 8개 지자체는 자신의 지역에 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심지어 지역 국회의원들까지 가세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관계자는 “정치적 공약이나 지자체들의 과열경쟁은 자제돼야 한다”며 “지역을 포함한 이해당사자들은 국가 차원에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