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업계 CEO 기본 덕목은 ‘약한 조직 장악력’
  • 엄민우 기자 (mw@sisabiz.com)
  • 승인 2015.09.25 18:08
  • 호수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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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 연령, 갈수록 낮아져
임지훈 카카오 대표, 박지원 넥슨코리아 대표, 김범석 쿠팡 대표(왼쪽부터)

정보기술(IT) 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이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 네이버·한게임 신화를 창조했던 김범수 카카오 의장(49), 이해진 네이버 의장(48) 이후 세대다. 분야별로 잘 나간다는  CEO를 보면 30대 많아야 40대 초반이다.

최근 임지훈 사내이사가 카카오 대표로 선임됐다. 올해 서른다섯 이다. 대기업에 다녔다면 대리급에 불과한 나이다.

엔씨소프트와 게임업계 1위를 다투는 넥슨코리아는 박지원 대표(38)가 이끈다. 소셜커머스 업계 1위 쿠팡의 김범석 대표 역시 서른일곱이다.

어린 나이는 최신 트렌드를 체감하고 즉각 경영에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우려도 만만치 않다. 조직을 장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기우’라고 전한다. 오히려 ‘CEO가 됐으니 조직을 장악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IT업계에선 위험하다는 것이다.

제조업 기반인 우리 산업구조에서 기대되는 CEO의 주요 덕목은 ‘기업 오너의 뜻을 얼만큼 효율적으로 달성하느냐’였다. 목적달성을 위해 조직 장악력은 필수였지만 그 덕목은 IT업계에선 오히려 감점 요인이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IT 기업은 CEO가 상명하복식으로 조직을 장악하려고 하는 순간 색깔과 강점을 잃는다”며 “운영효율화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최대한 창의적인 것들을 이끌어 즉각 반영할까를 고민하는 IT업계에서 강한 조직 장악력은 오히려 독”이라고 지적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IT업계에선 새 아이디어가 나오고 좋은 아이디어를 바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한 오너십과 위계질서는 임직원을 위축시켜 아이디어를 말하지 못하게 한다. 설사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보고 체계을 거치느라 반영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러는 사이 아이디어가 경쟁사가 먼저 실행하기 일쑤다. 그러면 뒤처지고 곧 바로 경영실적에 악영향을 준다.

젊은 CEO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관리형 리더십을 경험하지 않아 수평적 문화에 익숙하다. 아이디어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고, 트렌드를 이해한다. 여기에 CEO 권한을 바탕으로 한 ‘실행력’이 더해지면 성과로 나타난다.

카카오 직원들은 임지훈 대표를 ‘지미(Jimmy)’라고 부른다. 수평적 의견교환을 돕기 위해 카카오에선 쭉 영어이름을 써 왔다. 카카오 직원은 누구나 지미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말할 수 있다.

전 직원들이 대화 공유마당 ‘아지트’를 통해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는다. 물론 여기엔 임지훈 대표도 포함된다. 모든 아이디어는 공격받고 그 과정에서 점점 보완된다. 아이디어 주인의 직급이 높아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카카오택시와 같은 대박 아이템들이 나오고 있다.

박지원 넥슨코리아 대표가 조직 장악을 고민하지 않는다. 임직원이 자신을 불편해할까봐 걱정한다. 집무실이 있음에도 굳이 평직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업무를 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박 대표는 넥슨코리아가 성장하면서 초창기 색깔을 잃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래서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거리감 없는 CEO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한다.

쿠팡은 여름이면 직원들이 반바지와 슬리퍼를 신고 출근할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다. 물론 김범석 대표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국내 한 대기업을 다니다 쿠팡으로 왔다는 한 내부 관계자는 “CEO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다른 회사 회의와 달리 쿠팡 CEO 회의에선 직급과 상관없이 의견 제시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선 대기업들도 이런 문화를 받아들이려 하는 분위기다. 박주근 대표는 “시장이 워낙 빠르게 돌아서 이젠 대기업도 창의를 이끄는 조직문화를 도입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미국계 IT 컨설팅 회사의 한 임원은 “요즘은 대기업들도 보고체계를 단순화하는 추세”라며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얼마나 조직원 아이디어를 이끌어주느냐가 CEO의 주요 덕목이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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