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無邪] 아베 내각보다 못한 박근혜 정부
  • 이철현 편집국장 (lee@sisabiz.com)
  • 승인 2015.10.06 15:14
  • 호수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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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부인했지만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내각이 박근혜 한국 정부보다 훨씬 낫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 정책 관련해 뭐 하나 제대로 해내는 꼴을 보지 못했다.   

아베가 2012년 12월 일본 총리에 취임할 때만해도 태평양전쟁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외손자가 일본 경제를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구해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2006년 9월 총리에 오른 지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조기 퇴진한 정치 명문가 도련님이 뭘 할 수 있겠냐고 무시했다. 빚이 1000조엔(9668조원 가량) 넘는 나라가 용을 써봤자 별개 없을 것이라고 과소평가했다.

섶에 누워 쓸개 맛을 본 덕인지 아베 신조 총리는 돌변했다. 아베 내각은 출범하자마자 무제한 금융완화, 엔화 평가절하, 확대 재정정책 등 공격적인 경제성장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며 주식회사 일본의 부활을 공언했다. 이로 인해 자동차, 조선, 전자부품 등 일본 수출업계는 20년 불황에서 벗어나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유동성 확대와 기업 실적 개선 덕에 일본 증시는 초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 실적 개선은 고용 확대와 소비 증가로 이어져 내수 경기도 살아나고 있다.  

일본 경제가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는 동안 한국 경제는 악화일로를 거듭하고 있다. 국가 부채, 재정 형편, 수출 여건, 거시경제 지표 등 모든 조건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앞섰다. 하지만 정부 경쟁력만큼은 한국이 절대 열세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재정 확대, 소비 촉진, 금리 인하 등 경기 확장 정책을 뒤늦게 시행했으나 경기가 이미 꺾인 탓인지 효과가 미미하다. 남 눈치 보느라 금리 인하에 우물쭈물했고 환율 방어에 소극적이다보니 한국 기업은 세계 주요 시장에서 일본 경쟁업체와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그나마 한국 정부는 미국, 유럽, 중국과 잇달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일본과 수출 경쟁에서 앞서나가는 듯 보였다. 이마저 일본 정부의 묘수에 걸려 한방에 역전됐다. 한국이 참여를 주저하는 사이 일본은 5일(현지 시각) 미국 등 12개 국가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타결했다. 일본은 세계 국내총생산(GDP) 36.8%를 아우르는 거대 시장과 한꺼번에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것과 똑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한·미 FTA 체결로 미국 시장에서 얻은 국내 수출 업계의 가격경쟁력 우위는 한방에 사라졌다.

이쯤되면 박근혜 정부가 아베 내각보다 나은 게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경기 변동에 늑장 대처하기 일쑤다. 가계와 기업이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의 임계치를 가늠할 관료가 없다 보니 적절한 강도의 정책을 수립·실행하는데 번번이 실패한다.

프랑스 작가이자 외교관이던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1811년 “모든 나라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갈파했다. 박근혜 정부 정도가 우리 국민 수준에 맞는 건가. 기성세대야 이런 정부를 뽑아 놓았으니 할 말이 없다 치자. 우리 청년들은 무슨 죄인가. 왜 형편없는 정부 탓에 우리 청년들이 꿈을 포기하고 불안정 고용과 실업에 좌절해야 하나.  

어제(5일) 갓 사회에 진입한 청년 2명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필자는 “자네들 꿈이 뭔가”라고 물었다. 둘 다 “꿈, 그런거 없다. 우리 세대 70~80%는 꿈이 없다”고 답했다. 40~50대 기성세대는 쳥년시절 독재에 시달리고 자본의 논리에 좌절하더라도 꿈이 있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건가.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낭패감을 되새김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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