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수능 영어 절대평가는 교육 포퓰리즘의 극치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press.com)
  • 승인 2015.10.07 17:33
  • 호수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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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9월 말~10월 초의 한 주간에도 대한민국은 영일(寧日)이 없었습니다. 만날 지지고 볶는 여야 정치인들은 식구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벌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간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논란,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 갈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폭스바겐(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파문은 일파만파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면서 ‘정직이 돈 버는 것’이라는 교훈을 실감나게 했습니다. 10월1일부터 2주간 진행 중인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를 보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역시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官) 주도 급조 행사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0월의 첫날, 한국의 인터넷을 후끈 달군 ‘IS 김군 사망설’에 가장 눈길이 갔습니다. 저도 김군 또래의 자식이 있어 남의 일 같지 않았거든요. 보통사람들에게 주간 뉴스 중에 체감 톱뉴스를 뽑으라고 하면 김군 기사가 가장 유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웬만한 뉴스 갖곤 언급하지 않는 저희 식구들도 카카오톡으로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주요 뉴스인데도 이 무렵 어수선한 국내외 정세 덕분에 비교적 주목을 덜 받고 넘어간 게 있습니다. 바로 ‘수능 영어 절대평가제’입니다. 교육부가 10월1일 발표한 ‘2018학년도 수능 기본계획’에 따르면, 현재 고1 학생들이 치르는 2018학년도 수능부터 영어 영역이 절대평가로 바뀝니다. 지금은 상대평가여서 1등급은 상위 4%, 2등급 11% 등으로 성적 서열에 따라 등급이 결정됩니다. 2018학년도 수능부턴 성적표엔 영어 점수가 아닌 등급만 표시돼 등급이 같은 학생은 대입 전형에서 똑같이 취급됩니다.

절대평가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시험을 적절히 어렵게 내면 바람직한 교육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수능 영어 절대평가는 그와는 거리가 멀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교육부가 수능 영어 절대평가 정책을 추진한 것 자체가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이 교육부 업무보고 때 “영어 사교육비 부담을 대폭 경감하고, 학생들의 과잉 영어 교육을 요구하는 현실에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어가 ‘물영어’가 될 것이 명백합니다.

좋은 상급학교는 적고 가려는 사람은 많은 데서 사교육 수요가 생깁니다. 정부가 할 일은 이른바 ‘명문대’를 안 나와도 먹고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이지, 시험 난이도를 만지작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발상이야말로 지극히 정치적입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교육을 강화해도 모자랄 판인데, 대한민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른바 좌파와 우파가 ‘물수능’에 합의하는 기현상이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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