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흔들기’ 배후에 어른거리는 청와대 그림자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10.07 17:46
  • 호수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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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물러서는 김 대표 두고 “뭔가 단단히 약점 잡힌 건가” 수군수군

일단은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지금 상황에서의 섣부른 정면충돌은 양측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둘러싼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간 갈등 양상은 이렇듯 휴전 상태를 맞았다. 하지만 엄밀히 들여다보면 내상(內傷)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훨씬 더 컸다.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은 청와대와 친박계의 무차별적인 공습에 김 대표는 한때 “더 이상 모욕을 참지 않겠다”고 발끈했지만, 결국은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다시 보이고 말았다. 굴욕까지는 아니더라도 결사항전의 태세를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김 대표가 뭔가 단단히 약점을 잡힌 것 아닌가”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돌기 시작했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한 친박 측과 비박 측의 다툼이 계속된 9월30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참석, 상념에 잠겨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채동욱 前 총장 사태와 판박이 과정

지난 9월20일, 64번째 생일을 맞은 김무성 대표는 별도의 일정 없이 가족과 조용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마약 사위’ 사건과 ‘부친 친일 의혹’을 시작으로 친박계의 ‘오픈프라이머리 반대’와 ‘김무성 대권 불가론’까지 그야말로 무차별적인 공격이 연이어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논란들의 배후에 청와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것이다. 내년 4월 치러질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을 둘러싼 친박과 비박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 대표의 생일을 맞아 축하 난(蘭) 화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를 주목하는 여권 관계자는 아무도 없다.

김 대표의 둘째 사위인 이상균씨의 마약 사건 논란은 2년 전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논란 사태와 비슷한 메커니즘을 보여주면서 여권 핵심의 ‘김무성 흔들기 기획설’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일명 ‘찌라시’로 불리는 정보지에서 시작돼 유력 일간지의 보도로 공론화되는 방식이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해당 정보의 최초 유출지가 어디냐는 것이다. 채 전 총장의 경우 관련 정보의 배후로 청와대와 국정원이 지목됐는데, 실제로 청와대와 국정원이 채 전 총장의 개인정보 유출에 개입한 흔적이 밝혀지기도 했다. 검찰은 수사에서 이를 정당한 감찰 활동으로 판단하며 불기소 처분했지만, 정보지를 거쳐 언론에 보도되기까지의 과정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청와대 민정실이 해당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당시 채 전 총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것과 관련해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김 대표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위 이씨와 관련한 마약 의혹 역시 당초 찌라시에서 시작됐다. 김 대표의 차녀인 김현경 수원대 교수와 이씨의 결혼 소식은 지난 8월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충북에 기반을 둔 신라개발 이준용 회장의 장남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 대표가 차기 대선을 위해 충청권 인맥을 넓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김 대표 차녀의 결혼식은 지난 8월26일 비공개로 치러졌는데, 결혼 직후부터 온갖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 “김 대표에게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생겼다. 그 문제는 친인척 비리라고 한다”에서 시작된 소문은 “사위 이씨가 심각한 마약 중독자다. 이 때문에 측근까지 배제하고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라는 데까지 이르렀다. 다음 수순은 채 전 총장 사례와 마찬가지로 언론 보도였다. 결혼식이 끝난 지 2주 만에 이씨의 과거 마약 투약 사실이 대서특필됐다. 채 전 총장과 다른 점은 첫 보도가 실명 대신 ‘유력 정치인 인척’으로 나왔다는 점뿐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김 대표의 실명이 거론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후폭풍은 거셌다. 사건 자체의 폭발력도 컸지만 채 전 총장 때와 마찬가지로 정보 출처에 대한 의혹이 뒤따랐다. 이미 지난 2월에 결론 난 재판이 7개월 후에, 그것도 마치 결혼식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전격 보도되면서 사정 기획설이 여의도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비박계’의 수장으로 내년 총선 공천권을 놓고 청와대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김 대표를 흠집 내기 위해 가족사 문제를 끄집어냈다는 것이다. 비박계에서는 배후로 여러 친박 실세들의 이름까지 거론하고 있지만,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청와대 민정실을 의심하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한 친박 측과 비박 측의 다툼이 계속된 9월30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참석, 상념에 잠겨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측근에서 친인척까지 끊임없이 제기된 의혹

청와대가 김 대표 흔들기에 나섰다는 얘기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당의 당 대표로서 김 대표만큼 수많은 청와대발(發) 의혹에 시달렸던 인물도 찾아보기 힘들다. 김 대표에 대한 의혹은 지난해 10월 이른바 ‘상하이발 개헌론’을 계기로 여의도 정가를 뒤덮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김 대표의 오랜 측근인 A씨의 당직 사퇴 배경에 관심이 모아졌다. A씨가 일부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로비 자금을 받았고 그로 인해 그가 당직에서 좌천됐다는 것이다. 한번 제기된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피감기관 기업인 B사로부터 기념품을 받았는데, 이 기념품이 금 3돈짜리 순금 거북선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이 소문의 타깃 역시 농수산위에 소속된 김 대표였다.

점차 도를 넘어선 청와대의 ‘김무성 때리기’는 지난해 말 터진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에서 정점을 찍었다. 당시 청와대의 음종환 행정관이 정윤회 문건 파동 배후로 유승민 의원과 함께 김 대표를 거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 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거부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 2월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되면서 비박계가 당을 모두 장악하자 김 대표와 관련한 의혹도 한층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사정기관이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로까지 비화됐다. “○○기관 △△부서에서 김 대표의 사돈 측 기업을 내사하고 있다. 곧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구체적인 정보까지 나돌았다. 사정기관이 여당 총수인 김 대표를 직접 겨냥할 수 없기 때문에 친인척 비리부터 파헤치고 있다는 것이다.

은 김무성 대표 사위 마약 사건과 관련해 MB 정권과의 관계를 거론하기도 했다. ⓒ 선데이저널 캡쳐

이런 상황에서 결국 둘째 사위 이씨의 비리가 터져 나왔다. 이씨의 마약 사건 보도 직후 여의도에서는 판결문을 비롯한 수사기록 등 상세한 내용까지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씨의 부친인 이준용 신라개발 회장이 정치인에게 불법 선거자금을 건넨 사실과 최근 특수협박 혐의로 고소된 내용까지 세상에 알려졌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흔들리는 김 대표에게 숨 돌릴 여유는 없었다. 친박 핵심인 윤상현 대통령 정무특보는 ‘김무성 대권 불가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했고, 친박계 역시 ‘친박 대권론’을 주장하면서 김 대표를 흔들었다. 이는 2년 전 청와대가 채동욱 전 총장에 대해 “MB 정부가 임명한 인물”이라며 명확히 선을 그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청와대는 채 전 총장이 불명예 퇴임하기 전 이미 차기 총장에 대한 사전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김 대표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박 대통령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공식·비공식적으로 여러 차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춰 반 총장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박 대통령이 김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차기 여권 대선 후보로 반 총장을 밀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상균씨의 변호를 맡은 최교일 전 서울지검장. ⓒ 시사저널 임준선

때마침 ‘반기문 대망론’까지 제기돼

현 정부 출범 이후 이른바 청와대의 눈 밖에 나 유·무형의 압박을 받고 옷을 벗은 인물은 한둘이 아니다. 국회법 파동으로 지난 7월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유승민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부 출범 초기에는 양건 당시 감사원장이 “외풍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고, 장경욱 기무사령관 역시 번번한 퇴임식도 갖지 못하고 쫓기듯 물러났다. 장 전 사령관은 박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육사 동기 출신인 장성들을 검증하려다 솎아내졌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제 청와대의 서슬 퍼런 칼날은 김 대표를 향하고 있다. 수많은 의혹 제기와 딴죽 걸기로 사전 작업은 모두 이뤄졌고, 마지막 카운터펀치만 남은 형국이다. 그동안 청와대와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결정적인 순간 저자세로 일관했던 김 대표에게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어 보인다. ‘김 대표는 절대 믿을 수 없다’는 청와대와 친박의 불신감은 예상을 초월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와 김 대표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검찰, 김무성 사위 마약 사건 축소 수사했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둘째 사위인 이상균씨의 마약 사건을 놓고 야당에서는 검찰이 축소 수사를 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나섰다. 향후 정국에서 이 문제가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임내현 새정치연합 의원은 “검찰이 지난해 11월 이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결과, 마약 투약용 주사기에서 이씨뿐만 아니라 제3자의 DNA를 확인했음에도 일부만 공소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발견된 17개의 주사기 중 3개에서는 제3자의 DNA가 검출됐지만 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아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주사기가 공소장에 누락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야당의 주장대로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진행했다면, 김 대표가 사전에 이씨의 마약 사건을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최교일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이씨의 변호인으로 참여한 것도 김 대표의 영향력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즉, 김 대표가 검찰에 모종의 압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야당에서는 “상습 복용자인 이씨에 대해 최저 기준을 구형한 검찰은 봐주기 수사, 은폐 수사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서 특별수사팀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김 대표로서는 청와대와 야당으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는 최대 위기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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