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정권 교체’보다 ‘與與 권력 교체’ 때 피바람이 더 불었다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5.10.07 17:55
  • 호수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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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대표 없어도 정권 재창출 충분” 청와대와 친박의 자신감

정치인들에게 정권 교체는 ‘잔치’가 아니면 ‘죽음’이다. 이게 권력의 생리다. 때문에 죽기 살기로 정쟁에 몰입한다. 하지만 정권 교체로 인해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인사보다 정권 교체의 매서운 맛을 더 봐야 하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여당’ 인사들이다. 즉 정권 교체가 아닌, 정권 재창출에서 ‘여여(與與)’ 간 권력 이동에 따른 세력 교체가 더 큰 전쟁을 초래했다. 남이 아닌 같은 형제끼리 치고받는 골육상쟁(骨肉相爭)은 어느 싸움보다 험악했다. 재산 분쟁이라면 그나마 덜했으나 권력놀음에선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보복이 가해졌던 역대 기록은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월1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0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에 참석,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 앞을 지나고 있다. ⓒ 연합뉴스mds

‘유승민 응징’은 김무성 대표 향한 경고장

여여 간의 권력 교체 때 벌어지는 양상은 골육상쟁의 그것과 흡사하다. 야당으로 전락한 전임 정권 세력에 대해선 정치 보복이라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일정 부분 자제하지만, 얼마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식구들끼리는 다르다. 엄정한 법 집행을 명분으로 철저하게 짓밟는다. 속을 모르는 여론은 같은 여당을 먼저 일벌백계로 치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2인자’ 시절 설움의 한풀이라도 하듯 서슬이 시퍼렇다. 중간 과정이야 어쨌든 막대한 자금과 인원을 동원해 대통령을 만들어준 데 대한 공치사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1988년 노태우 정부는 자신을 청와대 주인이 되게 ‘만들어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에 유폐시키고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그 수하들을 감옥에 보냈다. 이는 ‘5공 청산’의 예고된 수순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의 후임 김영삼(YS)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과 박철언 의원 등 미운털이 박힌 이들을 감옥에 넣었다. 모두 같은 정권 안에서 이뤄진 일이다. 반면 여야 정권 교체가 이뤄졌던 YS의 후임 김대중(DJ) 대통령은 그토록 자신을 견제하고 괴롭혔던 YS였지만 직접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다. 물론 YS 정권 인물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있기는 했지만, 여여 교체기의 그것과 비교하면 약과였다. 여여 교체가 더 매서운 것은 DJ를 이은 노무현 정부 때도 증명된다. DJ 정권 때의 대북 송금 의혹에 대해 특검을 실시하고 임동원·신건 전 안기부장 등을 줄줄이 구속한 것도 이때다. DJ 정권의 실세로 불렸던 박지원 의원도 검찰의 집요한 수사를 피하지 못했다.

정권 재창출로 탄생한 현 박근혜 정부의 전임 이명박(MB) 정권에 대한 칼질도 섬뜩하긴 마찬가지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구속으로 시작된 ‘MB맨’ 겨냥 칼날에선 청와대의 서슬이 읽힌다. ‘포스코 비리’를 쫓는 검찰의 집요함이 원체 강해 이상득 전 의원 비리 캐기를 넘어 MB를 직접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다. MB 부인 김윤옥 여사 주변에 대한 검찰 수사 역시 진행된 지 오래다. ‘오뉴월 서리’라는 은어는 박근혜 대통령의 MB에 대한 깊은 반감을 대신하는 말이다. ‘청와대가 노무현 사람은 양해해도 MB 사람은 안 봐준다’는 뒷공론도 그런 맥락의 것이다.

김 대표가 고개 숙이지 않으면 파란 불가피

정치권이 박 대통령의 9월7일 대구 방문을 하나의 ‘사건’으로 간주하며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총선을 7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대구 지역 출신 의원들의 행사장 참석을 일부러 막은 의도가 분명한 탓이다. 대구 출마설이 나도는 대구 연고 청와대 비서관 3명을 대동하면서 대대적 물갈이를 예고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런 메시지를 확인이라도 하듯, 그 이틀 후 인천을 방문할 때는 인천 지역 의원들을 초청했다.

사실 ‘대구 사건’은 대구 동구 을 지역구의 유승민 의원을 새누리당 원내대표 자리에서 내몰 때부터 예고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 관여 시비를 무릅쓰면서까지 ‘배신의 정치’를 성토했다. 그랬음에도 많은 여당 의원, 특히 대구·경북 지역 의원들이 유 의원 편을 들자 벌컥 했다. 배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배신’이라는 단어까지 동원한 강력한 경고를 했음에도 이것이 묵살되자 더는 방치하지 않겠다고 판단한 듯하다. 유 의원이 되레 차기 대권 주자 대열에 완전히 자리를 잡고, 지지도가 점차 높아가는 ‘사태’가 박 대통령을 더 자극했을 수도 있다.

청와대의 유승민 의원 응징은 애당초 유 의원 개인만 겨눈 것이 아니었다. 최종 표적은 김무성 대표라고 보는 게 여권 내부의 정설이다. 궁극적으로 ‘김 대표는 절대 안 된다’인지, ‘아직은 나서지 마라’라는 한시적 메시지인지 여부에 대한 진단은 엇갈리지만, 최근 일련의 조치가 김 대표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청와대는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가 ‘친박’ 서청원 후보를 꺾고 현재의 자리에 오를 때부터 매우 못마땅해했다. 친박 후보 지원을 위해 대통령이 전당대회장에 ‘친히’ 임석했음에도 여지없이 패함으로써 대통령의 권위는 적잖이 훼손됐다.

김 대표는 청와대의 우려대로 독자 행보를 이어갔다. 청와대가 가장 질색하는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과 사사건건 청와대를 거스르는 유승민 원내대표를 좌우에 두고 당권을 장악했다. 청와대는 김 대표가 자신의 정치운명을 걸었다는 ‘공천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해 그 속셈이 무엇인지를 확신하고 있다. 한마디로 “청와대는 공천에서 손을 떼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반면 현역 새누리당 의원들은 크게 환영했다. 소속 의원들이 앞 다퉈 ‘무대(김무성) 줄서기’에 나서자 친박 진영은 전체 의원의 3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이런 터에 경남 출신 김 대표가 대구의 유 의원과의 제휴를 통해 새누리당 텃밭인 영남권을 석권하려 들자 압박 수위를 최대한 높인 것이다.   

김 대표는 선친 김용주씨의 친일 행적 시비나, 둘째 사위의 마약 흡입 사건 등으로 이미지에 상당한 손상을 입었다. ‘기획 폭로설’이 확산됐다. 확인되지 않은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김 대표를 향한 친박 진영의 일제 포격이 작위적인 것은 확실하다는 게 여권 내부의 대체적 견해다. 대통령 정무특보를 겸한 윤상현 의원이 공개리에 김 대표를 공박하고 서청원 최고위원이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불가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한 것은 기획 도발이다. 윤 의원의 “지금 여권의 대선 주자를 말하는 것은 의미 없다”는 말이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김무성 대세론’은 허상이라는 얘기다. 그는 친박 진영에도 차기 대선에 도전할 의원이 있다는 말로 쐐기를 박았다.

왼쪽부터 새누리당 ‘친박계’ 서청원 최고위원, 윤상현 의원, 조원진 의원. ⓒ 시사저널 최준필·이종현·박은숙

청와대 출신 등 공직자들로 지역 북적북적

청와대와 친박의 대공세가 어느 선까지 계속될지에 대해선 이론이 분분하다. 당권을 포기하라는 것인지, 대표는 유지하되 공천권 일부를 넘기라는 것인지, 차기 대권에나 전념하라는 것인지 억측이 구구하다. 이와 관련해, 여권의 한 원로 인사는 “말이 정권 재창출이지 후폭풍은 여여 간 권력 이동 때가 훨씬 더 험악했던 게 과거의 경험”이라는 말로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전한다. 다른 소식통은 “‘제 식구가 더 무섭다’는 것은 경험칙”이라며 “하물며 박 대통령에겐…”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이렇듯 김 대표가 특단의 ‘화해책’을 도출해내거나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여권 내부에 엄청난 파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청와대의 강공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관측들이 이어진다. 이 가운데 청와대와 친박 진영에선 “2017년 12월 대선까지 (새 후보를 만들)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이고 “새누리당 지지층의 충성도가 높으므로 (새 후보를 옹립해 야당을 이기는 데) 걱정할 게 없다”는 얘기가 주를 이룬다. 즉 김 대표가 아니라도 차기 대선 승리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의 바탕에는 새정치연합의 분란이 자리하고 있다. 여권이 그토록 ‘죽을 쑬’ 때도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20% 안팎을 헤맨 점이 그 배경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당(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정도의 말 때문에 현역 대통령으로서 탄핵까지 당했는데, 현직 장관이 여당 승리 기원 건배사를 외치고, 여당 승리를 위한 예산 편성 속내를 털어놓아도 무탈할 만큼 정신 못 차리는 게 지금의 야당이 아니냐는 반문이다. 이런 호재도 주어 담지 못하는 정파에 정권을 빼앗길 염려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정국 상황이 그렇게 전개될지 여부와는 별개로 지금 여권 핵심부에는 여유가 넘친다.

청와대의 ‘대(對)김무성 공격선’이 어디까지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공천 독식’ 차단은 확실한 듯하다. 실제 이번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전국 각지가 정치인들과 정치 지망생들로 북적인 것도 이런 움직임과 무관치 않은 듯싶다. 여기엔 평소 지역에서 잘 보이지 않던 청와대 출신 비서관·행정관을 비롯한 공직자가 특히 많이 눈에 띄었다. 내년 총선과 관련해서다. 얼마 전 국회 국정감사에서 감사원의 김영호 감사위원은 고향인 진주에서 출마를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는데, 숫자를 명시하기는 어려우나 이처럼 출마를 저울질하며 고심하는 공직자는 상당하다는 전언이다.

실제 영남 출신의 한 공기업 사장은 대대적 물갈이를 기정사실처럼 전망하고 있다. 그는 총선 90일 전인 내년 1월14일 전에만 사표를 내면 되지만, 연내에 거취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윗선’의 결심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 역시 ‘지역구’를 돌아봤고 평소보다 10배 가깝게 ‘인사’를 했다. 상황이 이쯤 되다 보니 그동안 청와대와 일정 거리를 두던 의원들이 초긴장해 조직을 점검하느라 더 분주했다는 전언이다.

청와대의 강공 드라이브에 김 대표 진영은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하지만 대응 수위에 대해서는 누구도 단언을 하지 못한다. ‘현재 권력’과의 정면 대결이 ‘아직’은 크게 부담스러운 탓이다. 그저 “이렇게 여권 진영을 들쑤시면 어쩌느냐”는 아쉬움이나 토로하며 아직은 몸을 낮추고 있다. 물론 9월30일 “당 대표에 대한 모욕을 앞으로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는 강력 반발이 일순간 여권을 초긴장 상태에 빠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더 이상 참지 않는’ 순간이 언제가 될지는 예측이 어렵다. 아직은 현재 권력의 손아귀가 너무나 완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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