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성매매 강요하다 살해하고 시멘트로 암매장까지
  • 배상훈 |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프로파일러) (.)
  • 승인 2015.10.14 16:52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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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로 스며드는 ‘가출팸’ 확산…범행 수법 잔혹한 ‘분노 범죄’에 노출

2014년 3월 김해에서 15세 여고생 Y양이 20대와 10대로 이루어진 공범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된 후 암매장됐다. 제2의 지존파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이른바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이다. 피살된 Y양은 같은 해 3월15일 범인 K를 비롯한 공범들의 꼬임에 빠져 집을 나간 후, 범인들과 함께 부산의 한 여관에서 생활했다. 범인들은 Y양에게 성매매를 강요했고, 거기서 나온 화대(花代)로 생활했다. 이 과정에서 범인들은 Y양과 다른 여학생들을 번갈아가며 싸움을 붙여 관전하기도 했고,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공범들은 Y양을 발로 걷어차거나 때렸고, 선풍기 등과 같은 무거운 물건을 Y양에게 내던지기도 했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냉면 그릇에 소주 2병을 부어 마시도록 한 후 Y양이 게워내면 그 토사물을 핥아 다시 먹게 했다. 또 끓는 물을 Y양에게 끼얹기도 했다.

Y양이 집을 나간 사실을 안 Y양의 아버지가 가출신고를 했고, 범인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3월29일 Y양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Y양이 강압적인 성매매 사실을 알릴까 두려워 다음 날 Y양을 다시 납치했다. 결국 피해자 Y양은 모텔 인근 주차장에서 탈수와 쇼크로 인한 급성 심장 정지로 사망했다. 범인들은 자신들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Y양의 시신을 산에 묻기로 했다. 4월11일 경남 창녕군의 한 과수원을 찾아 Y양의 얼굴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붙이고 시멘트를 반죽해 시신을 덮었다. Y양의 시신을 영원히 찾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 일러스트 오상민

조폭보다 무서운 10대 ‘가출팸’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그 잔혹성에 빗대 제2의 지존파 사건으로 일컬어졌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급격하게 번지고 있는 이른바 ‘가출팸’에 대한 우려 섞인 경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났다. 이제 ‘가출팸’과 관련된 범죄는 너무 일상화돼 뉴스거리에도 들지 않을 정도다. SBS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학교 밖의 아이들’이 전국적으로 34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2013년 한 언론사의 조사에서는 20만명 내외였다. 물론 두 수치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증가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런 자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이 어떻게 거리에서 살아갈까’라는 단순한 질문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핵폭탄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은 이른바 ‘조건만남’이라는 성매매와 깊은 관련을 가지며, 좀도둑질과 아리랑치기 등 각종 범죄에 근접해 있다. 과거 몸 전체를 캔버스 삼아 동물 그림을 문신하고 다니던 조폭들이 공포의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10대들끼리 떼를 지어 다니는 ‘가출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들이 더 두려운 것은 이전 조폭의 경우 경제적 목적이 중심이었다면, 이들 ‘가출팸’에서 출발한 집단의 경우 특정한 목적이 없다는 점이다. 단지 생존 자체가 목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도 거의 없으며 폭력 방식에 대한 제한도 거의 없다. 하루만 사는 하루살이에게 범죄에 대한 처벌로 10년 징역형이 내려진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셈이다.      

필자는 2013년 7월 발생한 ‘용인 모텔 살인 사건’의 범인 S군 사건을 분석하면서 이들 ‘가출팸’의 위험성에 대해 절실하게 느낀 바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학교  밖의 아이들’이라고 하면 ‘가출’한 아이들로 동일시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부모와 완전히 독립된 생활을 하는 경우만이 아니라 가끔 집에 들어가는 아이들부터, 학교에는 가지만 실제 생활은 학교 밖에서 하는 경우까지 여러 유형이 ‘학교 밖의 아이들’로 분류된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인 것이다.

실제 S군도 등교는 꼬박꼬박 하면서 6~7명 규모의 작은 집단인 ‘가출팸’에 속한 고등학생이었다. 그 ‘가출팸’에는 아예 자퇴한 청소년도 있었고, 가끔 집에 들어가는 청소년도 있었으며, 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S군과 같은 청소년도 있었다. 집단은 나이가 좀 있는 몇 명과 그들보다 어린 여자 청소년 몇 명 정도로 구성돼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명확하다. 가출한 어린 여중생이나 여고생들에게 성매매를 시키거나 알바를 시키면서 그들의 유흥비나 생활비를 충당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범죄는 점차 진화해 성매매에 그치지 않고 절도나 집단 강도, 보험사기 등으로 무차별하게 확장돼갔다.

“가혹행위 즐긴 것 아닌지 의심”

그들의 범죄가 매우 잔혹한 이유는 공범들 사이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범죄자 만들기의 일환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자신들을 버린 누군가에 대한 ‘분노’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20대 범죄자들이 김해의 Y양에게 그토록 잔혹하게 폭력을 행사한 이유는 버림받은 자들의 분노가 표출됐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재판에서 재판부는 “피고들이 폭행과 가혹행위를 즐긴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라고 밝혔다. 그들은 자신들을 그처럼 초라하게 만든 세상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는데, 실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은 눈앞에서 돈을 벌어다주는 Y양밖에 없었던 것이다.

2013년 7월12일 10대 여성을 성폭행하고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피의자 S씨가 현장검증 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의 한 모텔에서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영화에 나오는 폼 나는 조폭처럼 조직이나 자원도 없었고,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어떻게든 생존해야 하는 나약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래서 더욱 잔혹하게 Y양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결국 살해까지 하게 됐다. 시체를 유기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영화에서 본 것처럼 시멘트 구덩이에 암매장했다. 잔혹성에서는 용인의 S군이 더 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을 버린 부모에 대한 복수심으로 부모와 심리적인 담을 쌓았고, 보란 듯이 ‘가출팸’으로 데리고 다니던 여중생을 난도질했다. 그리고 그 시체의 일부를 장롱 속에 보관했다.

언제 터질지 모를 ‘핵폭탄’

‘가출팸’이라는 현상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이 현상이 우리나라 공교육의 붕괴와 양극화의 심화 등 사회적 문제와 관련이 깊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1997년 IMF 사태와 2008년 금융위기 등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김해 사건 주범들의 나이가 20대 중반 정도라고 본다면 아무래도 2008년 금융위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서울과 경기도가 맞닿아 있는 지역, 즉 서울 서남부 지역이나 외곽, 경기도의 도시 외곽 슬럼가(街)의 PC방이나 모텔촌, 주거형 오피스텔 등을 다녀보면 이런 ‘가출팸’을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물론 수도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로 광역시 외곽의 버려진 슬럼가가 이런 ‘가출팸’들이 잘 모일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이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또 무엇을 먹고 살까.

 우리 사회가 경제와 성장, 안보와 가족, 일등 이데올로기라는 구시대적인 틀에 갇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때, 우리 청소년들은 목적도 희망도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하루살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루살이는 하루만 살기에 하루의 도덕과 하루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고백하건대 필자에게 이러한 ‘가출팸’ 문제의 해결책을 묻는다면 필자 또한 답변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공교육의 회복과 사교육 철폐를 얘기하고, 어떤 이는 가족 가치의 회복을 얘기하고, 어떤 이는 사회안전망 확충을 얘기한다. 무엇이 해답일지 확신이 없지만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있다. 지금 이 핵폭탄을 방치한다면 아주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니 우리 사회는 이미 그 강을 건너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가 하루살이에게 줄 희망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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