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팔 때만 ‘고객님’ 판 다음엔 ‘나 몰라라’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10.14 16:58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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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차의 AS·리콜 등 사후 관리에 불만 폭증

“곪은 상처가 터졌다.” 최근 폭스바겐 배기가스 저감장치 조작 소프트웨어 사용으로 인한 파장이 커지는 것을 보고 자동차 동호회 회원들 사이에서 부쩍 많이 나오고 있는 이야기다. 국내에서 독일산 자동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불만도가 낮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독일 차에 대한 막연한 환상으로 인해 이런 불만들이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지난 8월 한국경제신문과 리얼미터가 발표한 ‘코리아 톱10 브랜드’ 수입차 부문 선호도 조사 결과를 보면, 10개 수입차 브랜드 중 독일 차가 나란히 1, 2, 3, 4위를 차지했다. 1위는 19.9%의 지지를 받은 BMW였고, 2위는 벤츠(18.3%), 3위는 아우디(16.4%), 4위는 폭스바겐(10.5%)이 차지했다. 4개 브랜드에 대한 지지도가 65%를 상회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독일 차에 대한 우리 국민의 선호도가 얼마만큼 높은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선호도를 바탕으로 독일 차들은 10년 가까이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해왔다.

독일 차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서 눈부신 성장을 해오는 동안 소비자들의 불만 역시 쌓여갔다. 특히 AS나 리콜과 같은 사후 관리 등에서 불만이 적지 않았다. 국내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더 컸던 탓에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누렸을 뿐이었다. 그러나 최근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저감장치 조작 소프트웨어 사용으로 인한 파장이 도화선이 돼 그동안 곪았던 문제들이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다.

독일 차 한국 지사와 AS센터 서로 책임 전가

독일 차에 대해 소비자들이 가장 크게 불만을 가지는 부분은 AS 정책이다. 비싼 AS 비용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비용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문제가 생겼을 경우 독일 차 한국 지사와 AS센터 간에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해 억울함을 호소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지난 9월11일 광주광역시의 벤츠 전시장 앞에서 벤츠를 야구방망이로 부순 사건도 억울함을 호소해도 벤츠 측이 묵묵부답인 데다 호소할 방법이 없자 벌어진 일이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독일 차 브랜드는 차를 공급하고, 소비자들이 차를 사기 위해 필요한 금융을 제공하는 일만 한다. 실제적인 AS는 딜러사들이 운영하는 AS센터를 통해 이뤄진다. 독일 본사나 한국 지사가 직접 운영하는 AS센터는 독일 차 브랜드 전체를 따져봐도 한두 곳뿐이다.

굵직한 AS 정책은 독일 차 한국 지사가 본사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 차를 공급하는 주체와 AS를 하는 주체가 다른 시스템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즉 센터 측에서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독일 차 한국 지사에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다르고 한국 지사 역시 독일 본사의 결정을 따라야 할 때가 있다. 책임 권한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서로 미루기가 쉽다. 즉 AS센터 측은 ‘한국 지사 측의 결정이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하고, 지사 측은 대표전화 한 곳의 채널만 열어놓은 채 ‘AS센터와 얘기하라’고 답하면 소비자들은 더 이상 항의할 방법이 없어지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국산차들은 본사에서 운영하는 AS센터가 있기 때문에 AS와 관련된 권한이 큰 편이다.

반면, 딜러사들이 운영하는 AS센터는 지사에서 내려온 지침을 넘어선 AS에 대해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최근 정부가 비싼 수입차 부품을 대체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재생품이나 해외 직구(직접 구매) 등을 권고하고 있지만, 어렵사리 부품을 구해 AS센터로 가져가면 수리를 해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독일 본사의 정책이기 때문에 수리가 불가하다는 것이 AS센터 측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소비자들이 한국 지사 대표번호로 항의를 하면 ‘본사 차원의 결정이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해명한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BMW AS센터. 최근 BMW는 타이밍체인 결함과 관련해 5만5000대의 리콜을 결정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본지 보도 ‘BMW 디젤 엔진 결함’도 늑장 리콜

최근 시사저널 보도<1348호> 이후 리콜이 결정된 BMW 2000cc 디젤 엔진의 타이밍체인 결함에 대한 AS도 뒤죽박죽이었다. 관련 동호회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같은 증상이어도 어떤 소비자는 수리비의 일부를 부담했고, 어떤 소비자는 수리비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어떤 AS센터에 차를 맡기느냐에 따라 서비스가 달라졌다. 이런 독일 차의 AS 문제는 그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음에도 그동안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 가려져 있었다.

리콜을 실시하는 것도 오랫동안 뜸을 들였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가 BMW가 지난 9월 24일 결정한 2000cc 디젤 엔진 타이밍체인 결함 리콜이다. 해당 결함은 이미 2014년 1월 영국 공영방송 BBC를 통해 처음 제기됐다. 국내에서도 타이밍체인 결함으로 인한 민원이 계속 발생했음에도 BMW는 선제적 리콜을 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관련 사안에 대해 지난해부터 BMW 측에 권고해왔지만 시큰둥한 반응만 보여왔다”고 말했다. 급기야 고속 주행 중 엔진이 멈추는 사건이 시사저널 보도를 통해 알려지고, 이후 동호회 가입자들이 국토부와 BMW 측에 항의하면서 리콜 논의가 급진전됐다. BMW 측은 보도 이후에도 타이밍체인 전체를 교환할 것인지, 일부 부품만 교환할 것인지를 놓고 시간을 끌다가 폭스바겐 사태가 터지자 전격적으로 리콜을 발표했다. BMW가 발표한 리콜 대상은 약 5만5000대 규모다. 이에 대해 자동차 전문지의 한 기자는 “타이밍체인을 바꾸는 것은 작업이 간단치 않기 때문에 BMW 측에서 리콜을 망설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해당 결함은 안전과 직결된 부분이기 때문에 바로 리콜을 했어야 함에도 시간을 계속 끌었던 것은  자사 브랜드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폭스바겐코리아 측도 처음 미국에서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 해도 “국내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고 발표했다가, 사안이 점점 커지자 해당 차량의 전량 리콜을 결정했다. 벤츠도 이른바 야구방망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확산되자 차량 교환을 결정했다. 선제적 대응보다는 문제가 커지면 비로소 무마에 나서는 일이 독일 차 브랜드의 공통된 대응 방법이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가파른 성장에 도취해 AS나 리콜과 같은 사후 관리에 상대적으로 부실했던 것이 폭스바겐 사태를 계기로 드러났을 뿐”이라며 “이번 일로 시장 판도가 얼마나 바뀔지는 알 수 없어도 독일 차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깨지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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