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참사 발생할수록 총 더 팔리는 불편한 진실
  • 김원식│국제문제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10.14 17:00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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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정가를 마음껏 주무르는 ‘미국총기협회’ 막강 로비력의 원천

“오리건 주 캠퍼스가 다시 피로 물들면서 미국의 국가적 악몽(nightmare)이 재현됐다.” 지난 10월1일,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 외곽의 소도시 로즈버그에 있는 움프쿠아 칼리지에서 크리스 하퍼 머서(26)로 신원이 알려진 청년에 의해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10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나자 미국의 한 주요 언론이 보도한 기사의 첫 문장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젠 이런 일이 일상(routine)이 돼버렸다”고 개탄했듯이, 미국은 올해에만 대형 총기 난사 사건이 294회 발생해 거의 하루에 1건 꼴이 되고 있다. 특히 이번처럼 학교 내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만 벌써 45차례다.

NRA가 한 해 공화당에 쓴 로비 금액 139억원

자고 일어나면 뉴스는 전날 발생한 새로운 총기 사건을 다룰 정도로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미국의 진짜 악몽은 이러한 비극적 사건이 거의 매일 발생하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서 나온다. 한마디로 총기를 규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번에 총기 난사를 자행하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범인도 평소 외톨이형에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10여 정의 총기를 쉽게 구입해 범행을 결행할 날만 기다려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80%가 넘는 미국인이 이처럼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의 총기 구매를 금지하고 신원 조사를 강화하는 방안에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공화당이 미국 의회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어 규제 법안의 통과는 요원한 상태다. 더욱이 총기 규제 법안을 반대하는 공화당 뒤에는 이를 확고히 뒷받침하는 ‘미국총기협회(NRA)’라는 막강한 단체가 있다.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미국 오리건 주의 움프쿠아 칼리지에서 한 부부가 임시로 마련된 희생자 추도 장소에서 슬퍼하고 있다. ⓒ AP연합

이번 참사가 발생하자,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가슴이 아픈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며 “신원조회 등 여러 방안을 즉시 강구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공화당이 NRA의 꼭두각시(puppets) 역할을 하는 것부터 막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지금 미국이 처한 현실을 잘 말해준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지금까지 총기 규제 입법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정치적 결정이었다”며 “앞으로 이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만들겠다”고 공언하면서 유권자들이 표로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공화당을 심판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적 무관심이 팽배한 미국에서는 돈과 조직이 곧 선거 승리의 핵심이다. 현재 미국 대선 레이스가 열리는 현장에서도 각 후보들이 얼마나 막강한 돈줄을 확보했느냐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최고의 로비력과 조직력을 보유하고 있는 단체가 NRA이며, 이들이 거의 공화당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NRA를 비롯해 ‘미국총기소지자협회’ ‘전미총기소지권리협회’ 등 관련 단체들이 지난해 공화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로비에 쏟은 금액만 1200만 달러(약 139억원) 이상이었다. 이에 반해 총기 규제 강화를 지지하는 비정부 기구나 시민단체의 로비 금액은 240만 달러도 넘지 못했다. 한마디로 게임이 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NRA가 지원한 약 95%의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할 만큼 이들 단체의 파워는 막강하다. 이번에 10명이나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젭 부시나 도널드 트럼프 같은 공화당의 모든 대선 후보가 법에 의한 총기 규제에는 반대한다고 한목소리를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NRA를 비롯한 여러 총기 관련 단체들이 이렇게 총기 규제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이들이 총기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강력한 명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총기 소유는 미국 수정헌법 2조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청교도의 이민으로 세워졌고, 이 과정에서 인디언 원주민과의 싸움이나 서부 개척 등의 역사에서 보듯 스스로를 보호할 무장을 자체적으로 갖춰야 했던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특히 이러한 권리를 연방이나 중앙정부가 규제할 수는 없다는 나름의 강력한 명분을 갖고 있다.

미국 오리건 주 로즈버그 시에 있는 한 총포점에 총기들이 전시돼 있다. ⓒ AFP연합

잇따른 총기 참사에 ‘자기 보호’ 명분 더 강조

이들은 최근 잇따른 총기 참사에 대해 오히려 ‘자기 보호’의 명분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실제 지난 2000년 여론조사에서 총기 구입자의 절반 이상이 사냥이 목적이라고 했으나, 현재는 절반 이상이 ‘자기 보호’를 목적으로 총기를 구입한다고 밝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목적으로 총기를 구입한 사람들이 자동으로 NRA 회원이 되고 있으며, 총기 참사가 발생할수록 오히려 총기 규제는 목소리로만 메아리치고 현실적으로는 NRA 파워가 더욱 성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NRA의 막강 파워는 최근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며 여러 급진적인 좌파 공약을 배경으로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그는 최근 참사가 발생하자 “합리적인 총기 규제 법안이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합리적인’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은 그의 발언은 단순히 민주당 지지자들을 위한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왜냐하면 그와 NRA가 밀접한 관계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NRA의 막강한 힘을 그대로 보여준다.

총기 참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젠 정말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반복해 통탄하는 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미국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설령 민주당이 상·하원을 장악한다 해도 NRA의 막강한 로비력으로 인해 총기 규제 법안은 절대 통과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워싱턴에서 힘을 얻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막강한 자금과 로비력을 갖춘 NRA는 이제 수정헌법을 무기로 더욱 강력한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그들은 “총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문제이지, 총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며 “총기 규제는 오히려 ‘자기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선량한 시민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헌법 위반”이라고 강조한다. 대형 총기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말로는 총기 규제 필요성을 제기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보호’를 명분으로 오히려 총을 더 구매하는 것이 오늘날 미국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총기산업은 더 막대한 이익을 창출한다. 이를 기반으로 한 NRA가 미국 권력 핵심 축의 하나인 공화당을 더욱 완벽하게 장악해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미국이 마주하는 불편한 진실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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