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일이 궁상맞아 보여도 비웃어서는 안 된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10.14 17:07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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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돌아보는 에세이집 <라면을 끓이며> 펴낸 김훈 작가

 

 

소설가 김훈 작가가 에세이집 한 권을 들고 초가을 마실을 나왔다. 아직도 경북 울진에 있는지, 어디를 다녔는지 질문에 답하는 내용도 몇 편 담겨 있다. <라면을 끓이며>라는 제목의 이 책에는 그의 가족 이야기부터 기자 시절 그가 거리에서 써내려간 글들, 최근에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동해와 서해의 섬에 각각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써내려간 글에 이르기까지, 김 작가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라면을 끓이며>는 김 작가의 지난날을 이룬 다섯 가지의 주제에 따라 5부로 구성돼 있다. ‘밥’ ‘돈’ ‘몸’ ‘길’ ‘글’. 간단명료하게 한 자씩 내건 주제마다 그동안 그가 펴낸 산문집이 하나씩 떠올려진다.

ⓒ 문학동네 제공

“내 정서의 밑바닥에 인 박인 라면의 맛”

“라면이나 자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자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浮薄)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이래저래 인은 골수염처럼 뼛속에 사무친다.”

책의 표제 글이 된 ‘라면을 끓이며’는 매해 36억 개, 1인당 74.1개씩의 라면을 먹으며 살아가는 평균 한국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에는 번듯한 자리에서 끼니를 고상하게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리에서 밥벌이를 견디다가 허름한 분식집에서 홀로 창밖을 내다보면서, 혹은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듯.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라면을 먹어왔다.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 맛들은 내 정서의 밑바닥에 인이 박여 있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는 일은 쓸쓸하다. 쓸쓸해하는 나의 존재가 내 앞에서 라면을 먹는 사내를 쓸쓸하게 해주었을 일을 생각하면 더욱 쓸쓸하다. 쓸쓸한 것이 김밥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간다. 이 궁상맞음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당신들도 다 마찬가지다.”

김 작가는 몇 해 전부터 최근까지 동해와 서해 인근 마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지내왔다. 가족과 떨어져 왜 혼자 그렇게 지내왔는지 털어놓은 대목도 눈길을 끈다. “울진의 아침바다에서 나는 살아온 날들의 기억으로 가득 찬 내 마음의 쓰레기들이 부끄러웠다. 파도와 빛이 스스로 부서져서 끝없이 새롭듯이 내 마음에서 삶의 기억과 흔적들을 지워버리고 새롭게 다가오는 언어들과 더불어 한 줄의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인지를, 나는 울진의 아침바다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아, 나는 한평생 단 한 번도 똥을 누지 못한 채, 그 많은 똥들을 내 마음에 쌓아놓아서 이미 바위처럼 굳어졌다. 울진 바다에 비추어보니, 내 마음의 병명은 종신변비였다. 바다가 나의 병명을 가르쳐주었다. 나에게 가장 시급한 처방은 마음에 쌓인 평생의 똥을 빼내고 새로워지는 것이리라.”

김 작가는 울진 바다에서 ‘바다의 불가해한 낯섦’에 압도돼 늘 지쳐 있었다고 회고한다. 수평선 너머로부터, 그가 기다리는 새로운 언어는 날아오지 않았고, 그가 바다 쪽을 바라보는 시간은 날마다 길어졌다. 그는 조금씩 일했고 많이 헤매었다. 그의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일보다 헤매기가 더욱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지난해 봄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동료들과 팽목항을 찾은 그는 서해바다를 바라보면서도 힘들었나 보다.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 벗어난 곳에서”

문장의 힘은 ‘버리고 벼리는 데’서 온다는 김 작가. 이 책을 엮는 과정에서 그는 많은 글을 버리고, 새로이 문장을 벼렸다. 그가 축적해온 수많은 산문 가운데 꼭 남기고 싶은 일부만을 남기고, 소설보다 낮고 순한 말로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 싶은 그의 바람을 최근에 쓴 글에 담아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그의 버리는 작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전압에 끌린다. 전압이 높은 문장이 좋다. 전압을 얻으려면 상당히 많은 축적이 필요하다. 또 그만큼 버려야 한다. 버리는 과정에서 전압이 발생한다. 안 버리면 전압이 생길 수 없다.”

그럴 것을, 예전에 김 작가는 알지 못했나 보다. 그는 그 시절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버리고 벼리는 김훈’이 되기 전에 저질렀던 과오를 반성하는 것이리라.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향하여 나는 오랫동안 중언부언하였다. 나는 쓸 수 없는 것들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헛된 것들을 지껄였다. 간절해서 쓴 것들도 모두 시간에 쓸려서 바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늘 말 밖에 있었다.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리라. 이제, 함부로 내보낸 말과 글을 뉘우치는 일을 여생의 과업으로 삼되, 뉘우쳐도 돌이킬 수는 없으니 슬프고 누추하다. 나는 사물과 직접 마주 대하려 한다.”

김 작가는 2015년 여름이 ‘화탕지옥 속의 아비규환’이었다고 돌아보았다. 덥고 또 더워서 그는 나무그늘에서 겨우 견디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여름이 가고, 가을이 또 왔다.

“돌아와서 책상 앞에 앉았다. 연필을 들면 열대의 숲과 바다가 마음속에 펼쳐진다. 숲을 향하여 할 말이 쌓인 것 같아도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들끓는 말들은 내 마음의 변방으로 몰려가서 저문다. 숲속으로 들어가면 숲을 향하여 말을 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태어나지 못한 말들은 여전히 내 속에서 우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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