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현대차 막는 방패에서 폴크스바겐 저격수 된 변호사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biz.com)
  • 승인 2015.10.14 16:18
  • 호수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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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스바겐 소송 대리 법무법인 바른 하종선 변호사

1979년 사시 21회, 84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변호사시험에 연이어 합격한 후 미국과 국내에서 변호사로 일해왔다. 86년부터 95년까지는 현대자동차 법무실장으로 일하며 각종 소송전에서 현대차를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도맡았다.

그런 그가 2015년 폴크스바겐을 겨냥한 저격수가 돼 돌아왔다. 법무법인 바른 소속 하종선 변호사 이야기다.

하 변호사는 “폴크스바겐과의 싸움은 일반 기업과의 다툼 이상의 의미가 될 것”이라며 “국제 기업이 한국 소비자들을 우습게 보는 선례를 남기면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 2명에서 1000명까지, 눈덩이처럼 커지는 소송단

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법무법인 바른 사무실에서 하종선 변호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 사진 = 박성의 기자

추석 연휴 전날인 지난달 22일, 법무법인 바른 사무실에 폴크스바겐 차량 소유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이번 ‘대(對) 폴크스바겐 소송전’의 시작이었다.

하 변호사는 “폴크스바겐 스캔들이 터지고 처음 걸려온 전화였다. 폴크스바겐에게 속은 것이 억울하고 괘씸하다고 말했다”며 “차주의 마음에 깊이 공감했다. 그렇게 지난달 30일 아우디와 폴크스스바겐 차주 2명과 함께 소송에 나섰다”고 밝혔다.

2명으로 시작된 싸움은 3차 소송이 제기된 지난 13일 총 266명 규모로 불어났다. 인터뷰를 진행한 13일 오후에도 하 변호사의 휴대전화는 수분마다 한 번씩 울렸다. 그중 대다수가 폴크스바겐 관련 소송 문의였다. 하 변호사는 소송을 원하는 차주들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 이제는 규모를 짐작하기 쉽지 않아졌다고 말했다.

“매일같이 서류와 이메일, 전화를 통해 폴크스바겐 소송에 참여하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온다. 국내 폴크스바겐 차량 소유주 12만명 중 10%만 소송에 참여해도 1만2000명이다. 앞으로 4차 소송 인원을 500명, 5차 소송은 1000명으로 보고 있는데 원고 규모가 얼마까지 커질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 미국 집단소송 실패 시, 미국 본토로 넘어갈 것

하종선 변호사는 인터뷰 도중 직접 화이트 보드에 이번 재판 개요를 써가며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 사진 = 박성의 기자

하 변호사는 소송단을 구입 차주와 리스 차주 2부류로 나눴다. 우선 폴크스바겐 차량을 구입한 차주들과는 주위적 청구와 예비적 청구를 준비 중이다. 주위적 청구에서는 민법 제110조에 의거해 매매계약 취소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주위적 청구가 기각될 때를 대비해 예비적 청구로 손해배상 청구를 준비할 예정이다. 리스 차주들은 손해배상 소송에 나선다.

“이번 사태로 폴크스바겐 차량은 중고차 시장에서 가격이 하락했다. 리콜이 이루어져도 디젤차로서 치명적인 연비와 토크 저하가 예고된다. 차주로서는 당연히 보상을 받아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하 변호사는 소송 전선을 국내를 넘어 미국까지 넓혔다. 하 변호사가 한국과 미국(캘리포니아) 양국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어 동시 소송 진행이 가능했다. 하 변호사는 과거 현대차 미국법인 통상 중재 등을 맡은 경험을 살려 소송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일각에선 소송 승소 가능성이 크다는 낙관론이 제기되지만 하 변호사는 미국 집단소송(Class Action)은 두 가지 고비를 넘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 집단소송의 첫 관문은 ‘Class Certification’이다. 즉 집단소송을 낸 사람이 대표성이 있는지가 확인돼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International Class’, 한 마디로 한국 소비자가 하나의 소비자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는 부분이다. 이 두 가지 판단은 판사 재량으로 이루어지기에 변수가 있다.”

그는 두 가지 고비만 넘는다면 재판에서 ‘비빌 언덕’이 있다고 말한다. 폴크스바겐 파사트 차량이 미국 테네시 주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변호하기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시사저널 경제매체 시사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재판이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한 플랜B를 최초로 밝혔다.

“아직 공개하지 않은 정보지만 플랜B를 준비 중이다. 만약 이번 집단소송에서 패할 경우 미국 현지로 직접 건너갈 생각이다. 집단소송이 기각된다고 해서 잘못된 차량을 생산한 주체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폴크스바겐이 아닌 테네시 주 파사트 공장법인을 대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하겠다.”

◇ 한국 정부, 기업에 끌려다니는 모양새 바로 고쳐야

하종선 변호사는 폴크스바겐 사태를 계기로 정부와 기업이 소비자 권익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 사진 = 박성의 기자

하 변호사가 이번 소송을 진행하며 실망한 대상은 폴크스바겐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였다. 그는 정부가 국내 소비자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면 결국엔 국익(National Interest)까지 하락할 것이라 지적한다.

“환경부나 정부가 미국 EPA(환경보호청) 등과 긴밀히 협조하고, 외부 전문가도 적극 활용해서 공세적 검증을 해나가야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검증 실력을 키워야 한다. 지금은 폴크스바겐과 외국 등의 조처에 한국 정부가 끌려다니는 모양새다.”

그는 또 국정감사를 통해 폴크스바겐의 국가적 대응 차별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는 적극 리콜 및 반품 등을 고려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대책 없는 사과로만 일관한다는 것이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토마스 쿨 폴크스바겐코리아 사장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잘못을 사과한다고 말하면서도 리콜 및 반품 등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 미국 국회의원 앞이었다면 그런 답변이 나왔을까.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면 국민이 회사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폴크스바겐에 더 큰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번 소송전을 로펌의 돈벌이로만 보는 시각을 경계했다. 과거 자동차회사 법무실장으로 일할 때부터 이번 폴크스바겐 차주들을 변호할 때까지, 로스쿨 학생 때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는 게 그의 다짐이다. 그 초심이란 ‘공정한 기업 생태계 조성’이다.

“기업의 공정한 생태계는 고객이 기업에 억지를 쓰지 않고, 기업은 ‘한 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라는 태도를 가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안타깝게 우리나라는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악순환의 생태계다. 법이 기업 친화적이다. 이번 폴크스바겐 사태를 계기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소비자 권익을 위한 법이 도입돼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재판이 향후 몇 십년간의 선례로 남을 것이다. 10%의 로펌 수익만을 위해 이 재판에 뛰어든 것이 아니다. 사회공헌이라는 생각으로 재판에 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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