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도 울고 갈 신출귀몰 사기행각
  • 정락인│객원기자 (.)
  • 승인 2015.10.22 10:44
  • 호수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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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팔 사기’ 피해자 4만명, 피해액 4조원…중국 도피 후 ‘사망 자작극’ 논란까지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범으로 불리는 ‘조희팔’이 다시 뜨거운 이슈로 살아났다. 조씨의 생사와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최측근인 강태용(54)이 중국에서 검거됐기 때문이다. 강씨는 국내 송환을 앞두고 있다. 조씨를 비호하거나 수사 편의를 봐준 것으로 드러난 검찰과 경찰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강태용이 ‘정·관계 뇌물 리스트’라도 꺼내 들면 정국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엄청난 회오리가 몰아칠 게 빤하다.

전대미문의 조희팔 사기행각의 피해자와 금액은 정확하지가 않다. 다만 경찰 수사와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는 2만4599명이고, 피해금액은 2조5620억원이다. 이는 서류에 나타난 수치일 뿐이다. 피해자 단체에서는 실제 피해자가 4만여 명, 피해 규모가 최대 8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자 가운데 30여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희팔 가족들이 촬영했다는 장례식 동영상 장면. ⓒ 시사저널 사진자료

‘의료기기 대여업’ 수법으로 투자자 끌어모아

조희팔은 어떻게 수만 명의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을까. 조씨는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다. 대구 지역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난 때문에 우유 배달로 생계를 이어갔다. 변변한 직업 없이 청년기를 보낸 조씨는 다단계 사업에 눈을 떴다. 2004년 대구 동구 신천동의 한 빌딩에 ㈜BMC라는 업체를 차리고 투자자를 끌어모으면서 사기행각을 시작했다. 그는 ‘의료기기 대여업’이라는 그럴듯한 사기 수법을 사용했다. 안마기와 골반교정기 등 건강보조기구를 모텔이나 찜질방 등에 임대한 후 여기에서 나온 수익을 배당한다고 홍보했다.

예를 들어 회원이 440만원짜리 의료기기를 사면, 회사에서 이걸 제3자에게 임대해주고, 임대금 명목으로 연 최대 40%의 수익을 회원에게 돌려준다는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귀가 솔깃한 제안일 수밖에 없다. 440만원을 투자하면 8개월간 매주 17만5000원씩 모두 580만원을 원리금으로 주겠다고 했다. 잘만 하면 은행 이자의 10배를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투자자들은 처음에는 “이게 가능할까”라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조씨는 이런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반신반의하며 투자한 회원들에게 약속한 수익금을 계좌로 꼬박꼬박 넣어줬다. 실제로 수익금이 통장으로 들어오자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조희팔의 사기 수법은 투자자들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됐다. 투자자들은 여기에 가족과 친지, 이웃 등을 끌어들였고, 회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퇴직금은 물론, 금융권에서 대출까지 받아 투자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조희팔은 더 많은 투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전국 순회강연을 다녔다. 그리고 각 사업장마다 교육 등을 활성화해 투자를 독려했다. 사업장도 대구에 그치지 않고 서울, 경기, 부산, 인천 등 전국으로 확대했다. 조희팔이 보여준 신기루는 그가 파놓은 함정이었다. 새로운 회원이 낸 돈을 기존 회원에게 배분하는 ‘돌려막기’ 방식이었던 것이다. 조희팔은 한몫 단단히 챙긴 후 ‘먹튀’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 투자금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호텔, 요트, 원자재 개발 등에 투자했고, 은닉을 위해 법인이 아닌 측근들의 개인 명의를 이용했다.

결국 조희팔은 사기행각 5년 만인 2008년 10월 천문학적인 돈을 들고 사라졌다. 그는 2008년 12월9일 새벽, 충남 태안의 마검포항을 출발해 서해를 통해 중국으로 밀항했다. 조씨는 공해로 나가 중국 배에 몸을 실을 때까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다. 조씨의 밀항 정보를 제보받은 해경이 미리 잠복해 있었지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었다. 안 잡은 것인지, 못 잡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경찰은 조씨의 중국 밀항이 확인된 2009년 6월 인터폴에 요청해 ‘적색수배’를 내렸다. 하지만 조희팔은 중국에서 빼돌린 돈으로 호화 생활을 즐겼다. 중국 현지의 한 동포 신문은 “조희팔은 중국 지린(吉林)성에서 선양(瀋陽)으로 옮겨 호의호식을 하고, 중국에서 결혼까지 해 부인도 세 명이나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인 호적을 새로 샀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끊이지 않는 ‘가짜 사망’ 논란

호화 도피 생활을 하던 조희팔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것은 2012년 5월이다. 경찰은 “2011년 12월 조희팔이 중국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가족들이 촬영했다는 장례식 동영상과 중국에서 작성된 사망확인서 등이 그 근거로 제시됐다. 그러나 조씨의 ‘가짜 사망’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그는 서류상으로만 완전히 죽었다. 사망확인증도 있고, 매장증도 있다. 그의 시신이 안치되었던 장례식장도 있고, 시신을 화장한 화장장도 있다. 유골이 안치된 묘소까지 있다. 거기에다 조희팔이 죽은 뒤 가족이 촬영했다는 동영상도 있다. 이처럼 조희팔은 서류상으로는 완벽하게 죽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을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치 않았다. 사망했다고 보기에는 의심되는 정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과학적으로 그의 사망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시신을 서둘러 화장한 탓에 DNA(유전자) 확인이 안 됐다. 사망을 증명하는 서류도 허점투성이였다. 중국의 화장장에서 발급한 ‘화장증명서’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조씨는 2011년 12월19일 사망했고, 이틀 뒤에 화장됐다. 그런데 화장장 직인이 찍힌 날짜는 12월11일이다. 화장증명서는 조씨가 살아 있을 때 도장이 찍혔다는 것이 된다. 사전에 치밀하게 짜인 각본이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조씨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그가 다른 곳이 아닌 중국에서 죽었다는 점이다. 중국은 돈만 주면 얼마든지 위조가 가능한 곳이다. 위조 브로커들과의 접촉도 쉽다. 길거리나 인터넷에서는 위조 서류 제작업체의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돈만 주면 얼마든지 사망 관련 서류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공안이나 관리들을 매수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위조 브로커와도 연결돼 있다. 즉, 조씨의 죽음을 증명하는 서류는 마음만 먹으면 위조가 가능한 것이다. 실제 조씨는 2008년 중국으로 밀항한 후 신분을 세탁해 53세 조선족 ‘조영복’으로 살아왔다.

조희팔 사기 사건 피해자들이 2012년 11월4일 사건 해결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제공

철저히 계산된 ‘사망 조작’ 노림수

사정이 이런데도 경찰은 조씨의 사망을 인정하며 공식화했다. 이를 두고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조씨를 비호하는 세력이 추가로 드러나는 것을 경계한 경찰이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다는 눈총을 받았다. 조씨가 살아 있다는 구체적인 ‘증언’과 ‘목격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 산둥(山東)성에서 현지 조직폭력배의 비호 아래 지내고 있다거나,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등을 오가며 사업을 벌인다는 설도 있다. 조희팔 사기 피해자 모임인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바실련)도 처음부터 조씨가 살아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했다.

조희팔이 살아 있다면 그는 왜 죽은 것처럼 꾸몄을까. 조희팔에게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선 법적인 구속력이 사라진다. 조희팔에게는 ‘단군 이래 최대 사기꾼’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는 인터폴에 ‘적색수배자’로 등록돼 있고, 국내에서도 수배자로 등록돼 있다. 이런 조씨가 ‘사망자’로 처리되면 그와 관련된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된다. 그에게 내려졌던 수배도 해제되고 수사도 종결된다. 사실상 ‘법적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생사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더라도 살아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전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현행법상 사망신고는 사망한 날부터 1개월 이내에 하게 되어 있다. 행정 서류상으로도 조씨는 죽은 사람이다. 경북 칠곡군 청구공원에는 조씨의 무덤까지 있다.

조씨가 자신을 죽이고 얻는 것은 또 있다. 피해자들의 추적도 따돌릴 수 있다. 조씨에게 당한 피해자들은 바실련 등을 조직해 조씨를 추적해왔다. 조씨가 법적 사망자가 되면 이들 조직의 활동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범죄 수익을 은닉하고 사용하기 편한 여건도 조성된다. 언론의 주목을 피하는 등 여론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국내에 남아 있는 조씨의 가족들도 주위의 시선을 피할 수 있게 된다. 행동반경도 넓어지고 ‘사기꾼 가족’이라는 주변의 눈총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다. 성형수술을 통해 얼굴을 바꾸고 신분을 세탁해 다른 사람으로 둔갑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으로 들어와 새로운 사람으로 사는 데 걸림돌이 없다. 중국에서 성공한 조선족 사업가로 행세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힐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조씨에게는 엄청난 돈이 있기 때문이다. 조희팔이 살아 있다면 그의 최대 노림수는 ‘범죄자 조희팔’ 이름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호화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 즉, ‘죽어야 사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조희팔의 ‘사망 노림수’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경찰은 조희팔에 대한 지명수배를 철회하지 않고 유지해왔다. 검찰은 조희팔이 살아 있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그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피해자 단체는 조희팔이 은닉한 자금을 계속 찾고 있다. 검찰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조희팔 은닉 자금 찾기에 나섰다. 지금까지 1200억원 정도를 찾아냈다. 하지만 조희팔이 빼돌린 4조원대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조희팔에 관한 모든 의문을 해소하는 것은 최측근 강태용의 입에 달려 있다. 그가 국내로 송환되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관측된다. ‘조희팔 살생부’가 다시 회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찰과 검찰도 각각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수사 경쟁에 나섰다.

 

 

강태용은 조희팔의 오른팔이자 최측근이었다. 조희팔이 밀항하기 두 달 전인 2008년 8월 중국으로 밀항했다. 그 후 중국 산둥성과 장쑤(江蘇)성 등지의 고급 아파트를 은신처 삼아 골프를 즐기며 최근까지 7년간 호화 생활을 해왔다. 도피 직후 조희팔과 함께 인터폴에 적색수배가 내려졌었다.

그는 조희팔이 운영하는 다단계업체의 부회장 직함을 갖고 재무와 전산 업무 등을 총괄하던 인물이다. 대외 로비까지 맡아서 했다. 김광준 전 서울고검 부장검사에게 2억4000만원을 건넨 장본인이다. 조희팔이 운영했던 회사의 직원들에 따르면, 강태용은 한 달에 3~4차례씩 투자금에서 현금과 수표를 인출했다. 회당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수억 원에 달했다. 검찰은 이 돈이 정·관계 로비 자금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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