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 비김’ 독자 행보 가시화하는 유승민
  • 유기림│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5.10.29 15:17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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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두고 중도·개혁 성향 의원들 사이에서 역할 부각될 것” 전망

지난 7월,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직에서 내려온 이후 긴 침묵을 지켜왔던 유승민 의원의 최근 행보가 심상찮다. 내년 4월의  20대 총선을 반년 정도 앞두고 서서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도 점차 예리해지고 있다. 원내대표 사퇴 당시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파동으로 청와대와 각을 세우고 존재감을 키웠던 유 의원이 3개월여 만에 다시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 시사저널 이종현

정병국·정두언·진영 의원 등과 물밑 교감

그동안 유 의원은 지역구(대구 동구 을)와 국회 국방위원회 일정을 소화하는 등 의정 활동에 집중해왔다. 국방위에서 정부 정책과 관련해 날카로운 지적은 멈추지 않았지만, 당 현안과 자신의 행보에 관한 언급은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최근 유 의원은 당내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공천 룰(오픈프라이머리 등) 문제를 비롯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 등 정부 정책을 잇달아 언급하며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나하고 뜻을 같이했다는 이유로 (다른 동료 의원들이) 공천에서 압력이나 차별을 받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가 지난 10월7일 대구 지역 언론인 간담회에서 자신과 측근들을 둘러싼 ‘대구·경북 지역구 의원 공천 물갈이설’을 겨냥해 단호히 경고한 말이다.

단순한 일회성 발언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남짓 후 유승민 의원은 다시 공천에 관해 언급했다. 그는 10월16일 대구 계산성당에서 ‘대구, 개혁의 중심이 되자’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던 중 “당연히 내년 총선을 위해 새누리당 (공천) 경선에 참여하고, 공천 역시 받을 것이라고 100% 확신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친박계에 대해 각을 세운 유 의원과 그 측근들에게 공천 보복이 가해질 것이란 이야기가 퍼진 것을 겨냥해 사퇴 이후 첫 공식석상에 나와 경고성 발언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 의원은 이번 성당 강연에서 “대한민국 역사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보수’로 가야 한다”며 자신이 지난 4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놓았던 “정의롭고 평등하고 공정하며 진실되게 따뜻한, 공동체 건설을 위해 땀 흘리고 노력하는 보수”를 꿈꾼다는 개혁 소신을 거침없이 다시 밝히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유 의원은 최근 정부와 여당에서 추진 중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식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한편,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 사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원내대표 당시 민감한 주제인 증세와 복지 논쟁,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 등에 관해 공론화를 시도해 청와대와 친박계에 날을 세웠듯, 다시 정부 정책에 관한 자신만의 강한 소신을 밝힘으로써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유 의원은 또한 원내대표 사퇴 이후 한동안 하지 않았던 언론 인터뷰에도 다시 나설 계획이다. 유 의원이 긴 침묵을 가졌던 만큼 언론 주목도가 높아진 상황이라 그의 행보에 따른 언론의 대응 등 향후 파급력은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20대 총선에 가까워질수록 유 의원의 보폭은 더 커질 전망이다. 새누리당은 보수 성향을 띠고 있지만,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중도층을 사로잡기 위해 조금씩 왼쪽으로 ‘좌클릭’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총선을 앞두고 정책적인 면이 부각된다면 새누리당은 다시 중도층 공략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며 “새누리당 내 중도적 색채를 담당하는 의원들에게 두루 신망이 있는 유 의원의 역할이 (총선 때)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이자 당내 정책통으로 통하는 유 의원이 당 사회적경제특별위원회·경제민주화실천모임 소속 측근 의원들과 손잡고 개혁 성향의 정책 노선을 두고 목소리를 키워갈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여기에 중도층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수도권 의원들까지 힘을 보탠다면 유 의원 측 세력은 몸집을 더 불릴 수 있게 된다. 벌써 수도권 중진인 정병국·정두언·진영 의원 등은 물밑에서 유 의원과 적잖은 교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중 정두언·정병국 의원은 최근 라디오 방송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적하며 유 의원과 가까운 입장을 드러냈다.

새누리당 회의에서 정두언 의원(왼쪽)과 진영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공천은 돕겠지만, 김 대표와 생각 같진 않다”

총선을 앞두고 당의 정책 노선 다툼이 치열해질 경우, 유승민 의원과 보수 성향이 강한 현 새누리당 지도부의 마찰은 불가피하다. 그럴 경우 김무성 대표와도 의견이 크게 대립할 가능성이 커 다시 한 번 지난 상반기의 ‘투톱’ 시절처럼 유 의원과 김 대표의 존재감 대결이 펼쳐질 수도 있으리란 전망이 나온다. 유 의원이 과거 원내대표 재직 시절 총선정책기획단을 구상했고, 최근 “용감한 개혁은 당의 노선과 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안보는 정통 보수, 민생은 진취적인 중도 개혁, 정치·사회는 통합으로 가면 새누리당이 계속 집권할 것 같다”(10월16일 계산성당 강연)고 말한 것에 비춰 총선 정책을 향한 그의 의지는 여전히 상당한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향후 당내 노선 투쟁 가능성은 적잖아 보인다. 특히 지난 2월 원내대표 경선에서 러닝메이트로 함께 나섰던 원유철 현 원내대표가 스스로 ‘신박(新朴)’을 강조하는 등 갈수록 친박 행보를 보이고 있어 김무성-원유철 현 지도부의 대립각으로서 유 의원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장은 유 의원이 눈앞에 닥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와 친박계를 경계하는 차원에서 김 대표와 손잡을 여지도 있는 상황이지만, 길게 볼 경우 공천 문제 이외의 사안에서 양자 간 공조가 이뤄지긴 힘들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유 의원 역시 “공천과 관련된 것은 도와주겠지만, 역사교과서나 노동 개혁 등 정부 정책과 관련된 여러 사안 중에는 나를 포함해 가까운 의원들의 생각이 김 대표와 꼭 똑같진 않다”고 밝혔다. 다만, 지금 유 의원은 평의원 신분으로서 당의 결정 과정에 큰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막 활동을 재개한 유 의원이 이런 난관을 어떻게 뚫고 나가 자신의 존재감을 회복할지 시험대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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