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비리 배후에 숨은 해외 ‘페이퍼컴퍼니’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5.10.29 15:18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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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방산 비리, 해외 페이퍼컴퍼니에서 외국 방산업체와 합작해 이뤄진 정황 포착

방산 비리와 관련해 수사를 받고 있는 국내 업체가 해외 페이퍼컴퍼니(유령법인)에서 외국 방산업체와 합작해 거래한 정황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일부 포착됐다.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의 납품대금 부풀리기 사건에서다. 그는 현재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의 수사 과정에서 공군 전자전훈련장비(EWTS)를 터키의 방산업체 ‘하벨산’과 거래하며 방위사업청을 상대로 500억원대 사기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규태 회장, 터키 방산업체와 유착 의혹

본지가 확인한 형사판결문과 국제 기업공개 자료에 따르면, 이 회장이 방산 사업 자금을 받는 창구로 활용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법인 ‘글로벌 인포메이션 앤 테크놀로지(The Global Information And Technology·이하 글로벌 인포메이션)’가 하벨산과 같은 사무실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 주소지가 똑같은 것이다. 이는 페이퍼컴퍼니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출범 1년을 맞았다. 하지만 이규태(왼쪽)·정의승(오른쪽) 등 거물 로비스트 주도의 방산 비리는 해외에서 이뤄져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이규태 회장이 ‘글로벌 인포메이션’을 방산 비자금 창구로 쓴 정황은 그가 횡령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았던 판결문에서도 나타난다. 일광공영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글로벌 인포메이션으로부터 사업투자금 600만 달러(약 60억원)를 빌렸다. 수천만 원을 인출하기도 했다. 다만 이 행위는 회사 차원이 아닌 이 회장 개인만 알았다. 또 이때 일광공영은 글로벌 인포메이션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글로벌 인포메이션은 사실상 이 회장의 사적 자금 창고였던 셈이다.

글로벌 인포메이션의 주소지는 LA 한인타운 중심지 윌셔 블러바드(Wilshire Blvd)의 김 아무개 회계사 사무실로 돼 있다. 국제 기업공개 자료에 따르면, 이 사무실은 터키 방산업체인 하벨산 역시 법인 주소로 등록하고 있다. 이는 이 회장의 방산 자금 창구와 하벨산을 한 에이전트가 같이 관리했다는 뜻이 된다.

이런 정황은 이 회장이 터키의 하벨산과 공모해 방산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을 뒷받침한다. 이 회장의 횡령 사건 판결문과 합수단의 전언에 따르면, 일광공영은 이 사건 이전부터 하벨산과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회장은 그 결과로 하벨산 및 국내 하청업체와 공모해 납품받은 EWTS(공군 전자전장비)를 신규 연구·개발로 개조할 것처럼 꾸며 방위사업청에서 약 1073억원(9617만 달러)을 타냈다. 이 행위의 진원지는 LA의 페이퍼컴퍼니일 가능성이 크다.

방산 비리가 해외에 숨어 있을 것이란 의혹은 정의승 유비엠텍 회장이 연루된 사건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해군 차세대 잠수함 도입 과정에서 독일 건조업체 하데베(HDW)와 엔진 제조사 엠테유(MTU)에서 중개료 1000억원을 받아 해외에 숨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도 있다.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입수한 해외 유명 회계법인 ‘언스트 앤 영’ 보고서를 보면, 정 회장은 싱가포르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를 통해 방산 자금을 주고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정 회장과 거래했던 MTU의 모회사가 언스트 앤 영에 비리 감사를 맡겨서 나온 이 보고서는 “MTU는 정의승이 통제하고 있는 싱가포르 계좌,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계좌를 통해 커미션을 지급했다”고 적었다. 정 회장은 이 보고서 인터뷰를 통해 “비공식적 수수료를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해외 계좌를 만들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해외 자금 은닉을 시인하면서도 업계 관행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방산 비리 수사는 난항을 겪고 있다. 방산 비리 합수단의 처음 칼날은 무척 예리했다. 그러나 결국, 방산 비리를 겨눈 칼날은 무뎌졌다. 출범 1년을 맞는 합수단의 수사는 지금 갈수록 ‘용두사미’로 치닫고 있는 모양새다. 수사에 대비하는 방산업체의 치밀함에 막힌 탓이다.

이규태 회장의 일광공영과 터키의 하벨산이 미국 LA의 같은 사무실에 유령법인을 개설한 것으로 확인됐다. ⓒ 국제기업공개사이트 캡쳐

해외 거래 못 밝히면 ‘겉핥기’ 수사 된다

합수단은 수사 과정에서 방산 비리의 상층부 일부를 ‘건드리는’ 데는 성공했다.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최윤희 전 합참의장과 기소된 황기철·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이 그 예다. 거물급 로비스트 정의승 유비엠텍 회장과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도 마찬가지다. 합수단은 올해 7월까지 전·현직을 비롯한 63명(구속 47명, 불구속 16명)의 예비역과 현역 장교들을 기소했다.

하지만 합수단이 이들을 끝까지 사법처리로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현재 전망이 불투명하다. 가진 증거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거물급 방산 비리 관련자를 재판에 넘긴다 해도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합수단이 증거 수집에 애를 먹는 까닭은 해외에 근거지를 두는 방산 비리의 속성 때문이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방산업체를 운영해도 외국과 공모해 수사에서 걸리지 않을 해외의 유령법인과 계좌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면서 “이런 것들을 수사 당국에서 일일이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합수단은 방산 비리의 증거가 해외 각지에 숨어 있는 탓에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 셈이다.

이 때문에 지금 검찰의 방산 비리 수사가 해외에 숨은 법인·계좌를 겨누지 않으면 겉핥기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황기철 전 총장의 사건이 한 예다. 황 전 총장은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으로 있던 2009년 통영함 음파탐지기를 도입하며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H사 제품이 납품되도록 문서를 조작한 혐의를 받았다. 1심은 “통상의 장비 소개를 넘어 부정한 청탁을 받았음을 인정할 근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합수단에 따르면, 재판부가 지적한 증거불충분은 H사가 해외에 있었던 데다, 그로 인한 관련 증거 제출이 어려운 탓에 빚어진 것이다.

그동안 정 회장에 대한 수사가 무산된 것도 이런 우려를 키운다. 언스트 앤 영 보고서는 “한국 국세청과 검찰이 여러 번에 걸쳐 진행한 수사에 의해서도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불법적 계약서가 한국 내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독일 검찰의 수사망도 피해갔다. 이번 수사에서도 같은 상황은 반복되고 있다. 지난 7월 합수단이 정 회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3개월이 지나도록 기소조차 되지 않고 있다.

김기동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장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합수단이 이를 밝힐 사법 공조를 해낼지 여부다.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그간 하벨산의 방산 사기 개입 정황이 뚜렷한 상황에서도 수사는 비켜갔다. 합수단은 수사가 시작된 지 8개월이 지난 9월에야 하벨산 임원들을 소환해달라고 사법 공조를 요청했다. 이들을 소환한다고 해도 LA 페이퍼컴퍼니를 규명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기동 합수단장도 사법 공조의 어려움을 시인했다. 그는 중간수사 발표 당시 “초기에 사법 공조 절차를 진행해왔는데 사법 공조가 시간이 좀 걸린다”며 “남은 5개월 사이에는 사법 공조가 도착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다음에 정 회장에 대한 영장을 재청구할지 결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이번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방산 비리 업체의 해외 페이퍼컴퍼니 실태에 대해 합수단에 확인을 요청했다. 수사 과정에서 이를 인지했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합수단 측은 “현재 수사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본지에 밝혀왔다.

전문가들은 합수단의 전향적 조치 없이는 방산 비리 구조의 뿌리에 접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송영선 전 의원은 “방산 비리를 수사할 때 해외의 로비스트들은 그 나라의 법체계를 따르기에 수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수사 과정에서 이런 점을 참작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 출신 방산업계 관계자도 “현재 상황으로 합수단 수사가 (방산 비리의) 뿌리를 뽑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면서 “11월에 마무리되는 수사가 연장된다고 해도 사법 공조 없이는 현상 유지만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발굴 정의승, 軍 장성 동남아 접대 의혹…
정황 드러나자 은폐 시도
 

거물 로비스트로 통하는 정의승 유비엠텍 회장이 군 고위 관계자에게 접대와 향응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또 그가 로비를 통해 이를 무마한 정황도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조사에서 드러났다.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입수한 회계법인 ‘언스트 앤 영’ 감사보고서는 정 회장의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이 보고서는 유비엠텍과 협력 방산업체 엠테유(MTU)가 2000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의 군 고위 관계자를 태국 여행, 골프, 유흥업소 출입 등으로 접대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감사를 맡은 조사관은 “MTU·유비엠텍 측은 한국군 관계자에게 고가의 골프 장비, 수경, 오리발 등을 선물했다”면서 “태국 방콕의 유명 홍등가에서 군 관계자를 대접한 계산서도 있다”고 보고했다. 게다가 그 비용은 MTU와 유비엠텍 측이 부담했고 밝혀진 것만 16만 유로(약 2억6000만원)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방산업계와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접대는 직장 내 교육훈련(OJT) 명목의 출장 형태로 이뤄졌고, 향응을 받은 인물은 주로 해군 고위직 중 잠수함 계약 관련자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합수단은 그가 이 접대 사실을 숨기려 한 정황을 포착하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 회장은 미국 블룸버그가 그의 동남아 접대 의혹을 보도하자 사건이 국내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해 이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합수단에 따르면, 정 회장은 접대 관련 의혹 무마를 부탁하고 안기석 전 해군 작전사령관에게 1억7500만원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청탁의 내용은 “해군 관계자들에게 대접한 것이 문제없었다는 해군 공식 서한을 받아달라”는 것. 안 전 사령관은 이를 받아들여 “한국 해군이 참여한 독일 MTU사 OJT 프로그램은 긍정적 효과만 있었고 이와 다른 (부정적) 요소는 없었다”는 내용의 해군 감찰실장 명의 공식서한을 받아 정 회장에게 건네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해군 관계자는 “알려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정 회장 측은 기자의 취재 요청을 위한 연락에 응하지 않았다.

정 회장은 ‘율곡비리’에 연루된 거물급 로비스트다. 그는 1990년대 학산실업을 운영하다 뇌물공여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앞서 합수단은 정 회장에게 1000억원대 국외 재산 도피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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