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재앙, 수석 한 명 경질로 끝날 일인가
  • 김종대 |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 승인 2015.10.29 16:05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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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한국형 전투기 사업 논란에서 드러난 국방부와 공군의 무능력과 무책임

2013년 5월, 국산 수리온 기동헬기가 최초로 전력화되었다. 그 기념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 산업화 시기에 방위산업은 국가 경제의 성장을 이끈 견인차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제 우리 방위산업이 민간의 창의력과 결합해서 창조경제의 꽃을 피우는 핵심 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난 지금,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 논란을 지켜보면 우리나라 방위산업이 과연 박 대통령의 말대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다. 개발에 8조원, 120대 생산에 10조원이 소요될 이 대형 국책사업은 정부 조직과 기관의 이기주의에 휘둘려 민간의 창의력을 질식시키는 괴물이 되었다. 창조경제의 꽃이라기보다 개발에 얼마나 많은 재원이 소요될지 알 수 없는 국가 경제의 짐이 되어버렸다.

6월9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왼쪽)과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청와대에서 대화하고 있다.

시한폭탄 안고도 “잘 해결될 것” 안일한 자세

청와대는 핵심 기술을 미국으로부터 이전받지 못해 적신호가 켜진 KF-X 사업에 대한 관리 부실의 책임을 물어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경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주 전 수석은 원래 이 사업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교관 출신일 뿐이다. 이 한 사람을 경질하고 더 이상의 진상규명이나 문책을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볼 때 단순한 꼬리 자르기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이 사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 사업은 2002년 합참 소요 결정 이후 사업 타당성 검토를 거듭하면서 △항공기 개발 형상 △예산 범위 충족 △기술 확보 등에 대한 불분명한 판단과 이견 때문에 장시간 표류해왔다. 이 사업의 본질이자 핵심인 군의 전력화 향상을 우선하기보다, 국방 예산 절감(기재부)과 수출 시장 확보(산자부)라는 요구 조건이 추가되면서 사업 구도는 복잡해지고, 여러 행위자들의 참여로 효율적인 사업 추진은 저해되었다. 그 결과, 사업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러다 2010년 항공우주산업개발정책심의회(산자부장관 주관)는 보라매 사업의 전제조건으로 △선(先) 수출 시장 확보 △개발비 분담 가능한 파트너 확보 △기술 협력선(핵심 기술 이전 및 개발비 분담) 확보를 사업 착수 조건으로 부과했다. 이에 따라 한국 주관하에 미국의 록히드마틴사와 인도네시아가 참여하는 3개국 공동 개발 형태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국내 무기체계 사업 역사상 가장 복잡한 구도라고 할 수 있다. 애초 이렇게 된 배경에는 국가가 이 사업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결여된 가운데 국가의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편리한 방법만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막상 한국형 전투기 체계 개발에 착수한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상황을 살펴보면, 항공우주산업개발심의회가 제시한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지 않은 채 사업이 추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은 2013년부터 이 사업에 대한 3차례 절충교역 협상을 추진하면서, 사업 성공의 관건인 미국 정부의 수출 허가(E/L) 승인과 사업 파트너인 록히드마틴의 업무 분담·개발비 투자 확보는 마무리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도네시아 정부와 사업 협정(PA: Project Agreement)을 체결했다. 또한 방사청은 절충교역 협상을 통해 보라매 핵심 기술 이전(21종, F-16 최신 기술 자료), 기술 지원 인력(360명)을 확보한 만큼 향후 록히드마틴과의 업무 분담 및 개발비 투자는 업체 간 협상 항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E/L 승인이나 록히드마틴과의 업무 분담에 대한 합의 없이는 인도네시아와의 PA 체결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한국 측의 협상 여지는 축소될 공산이 컸다. 이런 시한폭탄을 안고도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될 것”이라는 안이한 자세로 사업을 진행해오다가 올해 9월 국정감사에서야 비로소 그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러는 동안 한국형 전투기의 구체적 형상도 결정하지 못한 채 국방부와 공군은 사업의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다가 급기야 모든 관련 기관의 조직 이기주의와 탐욕에 휘둘리기 시작했다. 먼저 공군은 한국형 전투기의 형상을 단발 전투기에서 쌍발 전투기로 변경했다. 이 문제를 결정하려고 국방부에 별도의 검토 TF(태스크포스)팀을 만든 다음 공군이 주축이 되어 쌍발 엔진을 우겨넣었다. 탐색 개발 당시엔 핵심 기술 중 전자식 레이더와 적외선 탐지 추적(IRST)은 개발 타당성이 없다고 했고, 영상 추적 장치(EOTGT)와 전자파 교란 장비 정도는 국내에서 개발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체계 개발 단계에 이르자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전자식 레이더 개발 사업을 또 우겨넣었다.

스텔스 기능만 해도 그 과정을 보면 한심하다. 우리 군은 정확히 스텔스 기능이라는 게 어느 정도의 레이더 반사 면적(RCS)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데이터조차 갖지 못했다. 일례로 2013년 12월에 합동참모회의에서 차기 전투기 사업(F-X)의 요구 성능으로 스텔스 기능을 추가할 때, 이것이 어느 정도의 RCS인지 정확한 기준조차 제시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스텔스 전투기를 사는 것으로 변경한 것이다. 데이터를 산출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또 하나의 요구 성능을 우겨넣었다. 그러자 정작 전투기 체계 종합의 당사자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펄쩍 뛰었다. 자꾸 성능이 추가되어 개발이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견을 전달하려고 하자 이번엔 국방부 전력자원관리실에서 KAI를 ‘미친놈’ 취급하며 “정부가 돈 주고 만들라면 만들지 업체가 왜 말이 많으냐”는 식으로 윽박질렀다.

우리 국방부는 마치 ‘전투기는 돈 주고 주문하면 저절로 나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철공소 논리다. 철공소는 돈 주고 만들라면 군말 없이 만들어낸다. 이런 식으로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의 재앙적 요인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이번에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미국에 가서 기술이전을 거절당하고도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한 채, “과학자의 의지”로 문제가 된 기술을 전부 개발하겠다는 비현실적인 처방만 난무할 뿐이다. 그렇게 국산화 개발이 쉽다면 왜 이제껏 미국에 기술을 달라고 그토록 졸라댔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문제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금, 정부는 기존 계획을 고수하며 밀어붙이기로 일관하지만, 이것이 향후 엄청난 비용의 증가를 수반하는 재앙이 될 것임을 모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이게 과연 청와대 수석 한 명의 경질로 끝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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