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쇼핑몰, 지역 경제에 별 도움 안 된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5.10.29 17:00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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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복합쇼핑몰 사업’ 제동 건 김승수 전주시장 인터뷰 “재정 부담되지만 충분히 극복 가능”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대기업 자본을 통한 도심 개발 사업은 달콤한 유혹이다. 자체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는 거두고 싶다. 그러니 임기 중 말뚝부터 박아놔야 다음 선거에서 유리하다고 본다. 재벌 기업을 얼마나 끌어들이느냐를 마치 지역 경제 발전의 지표처럼 여기는 것이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전주종합경기장 개발과 관련해 롯데쇼핑과의 협약을 해지했다. 롯데쇼핑은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며 발끈했다. 전주시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계획을 변경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 김 시장도 강하게 맞섰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끝까지 대응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재벌 대기업의 복합쇼핑몰 사업에 제동을 건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 시장은 왜 롯데쇼핑과의 협약을 해지했을까. 10월21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회의실에서 김 시장을 만나 직접 물었다. 전주종합경기장에 대형 쇼핑몰이 들어와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시장은 먼저 “지역 경제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전주다움으로 관광객 끌어들여야”

“쇼핑몰이 들어오면 지역에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길거리 상인들이 죽기 때문에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든다. 그리고 정규직 일자리는 5% 미만이다. ‘로드숍’을 쇼핑몰 안에 유치하겠다고 해서 들어가면 마진이 35%에서 15% 안팎으로 줄어든다. 세금이 늘어나지 않겠느냐고도 하는데 국세인 재산세가 대부분이라서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김 시장은 “모든 도시가 기업 유치라는 이름으로 쇼핑몰을 도심 한가운데에 세우고 있다. 한국의 도시들이 다 복제되고 있는 것이다”며 “도시는 사람을 담는 그릇인데 그릇이 똑같으면 시민들의 삶도 똑같아질 거다. 도시가 다양성을 잃으면 국가 경쟁력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전주종합경기장 개발 방식은 기존의 민간 투자 방식에서 재정 사업으로 전환하게 됐다. 전주시 재정에 부담이 되지 않을까. 김 시장은 “솔직히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고 털어놓았다. 향후 전주시는 900억원가량의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김 시장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2만평에 이르는 도시의 심장부를 체육시설에서 상업시설로 바꿔 900억원에 팔겠다는 것인데, 한번 팔려가면 나중에 1조원을 줘도 다시 살 수가 없다. 전주시 예산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재정에 부담이 되지만 미래 가치를 보면 극복할 사안이지 포기할 사안이 아니다.”

전주종합경기장 개발이 재정 사업으로 전환된 데 대해 전북도에서는 상당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고 한다. 김 시장은 “전주시 예산이 빠듯할 텐데 과연 극복할 수 있느냐는 거다. 신뢰할 수 없다며 제반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송하진 현 전북도지사가 전주시장 시절 추진한 사업을 후임 시장이 뒤집은 데 따른 정치적 해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전북도와의 마찰이 불가피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김 시장은 “이번 사안은 전주의 100년 후를 내다보는 중요한 정책 결정이다”며 “마찰이나 갈등이 (일어날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정치인들을 (단체장으로) 뽑는 것은 지역의 일에 힘을 모아서 열심히 하라는 명령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형님·동생 하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임 시장께서도 사적 이익으로 판단한 게 아니라 그 방향이 전주시를 위한다고 보고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나 역시 미래를 위한 결정을 내린 것이기 때문에 건전한 가치 논쟁이라고 본다.”

지역 주민들의 우려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 발전을 위해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시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김 시장은 “쇼핑몰로 승부하기보다 전주가 지닌 문화 상품을 팔아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 주권과 관련해서는 시민들께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생존권을 지키는 게 먼저라고 본다. 그리고 전주의 정체성을 지키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김 시장이 ‘반(反)재벌 정서를 자극한다’거나 ‘롯데에 대한 국민적 비난에 편승(便乘)한다’는 식의 비판이 제기된다. 김 시장은 “반(反)기업 정서를 가진 사람이 전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제조업보다 서비스업 쪽으로 가고 있다. 일자리가 어려운 것도 제조업 기반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주는 할 수만 있다면 제조 대기업을 유치해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굉장히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그리고 롯데에 대한 반감이 형성된 것은 2~3개월 전부터인데, 쇼핑몰의 경우 이미 1년 6개월 전부터 반대해왔기 때문에 편승한 게 아니다. 지난해 지방선거 과정에서 제기한 핵심 공약 중 하나다.”

“도시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건 정체성”

김 시장은 중앙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 스스로 자립할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맞는 말이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그에게는 어떤 복안이 있을까. 김 시장은 “지역에서 순환경제를 만드는 게 중요한데, 공격해야 할 것도 있고 방어해야 할 것도 있다”고 밝혔다.

“방어 측면에서 보면 지역 경제의 규모보다 흐름이 더 중요하다. 지역의 부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야 된다. 공격 측면에서는 지역의 문화를 잘 살려 관광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전주의 경우 먹거리 시장을 얼마든지 살릴 수 있다. 공예 등도 지역을 살릴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다. 공격과 방어를 함께 해야 한다. 독자적인 경제 권역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김 시장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다. 전주종합경기장 개발에 대한 그의 선택이 향후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단하기는 힘들다. 많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지금도 대형 개발 사업에 전력을 쏟고 있다. 김 시장은 “쇼핑몰이 들어오면 도시가 살아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본다. 꼭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뚫리고 쇼핑몰이 생겨야 좋은 도시가 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도시도 사람과 같은 유기체다. 도시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쇼핑몰이 아니라 그 도시가 가진 정체성이다. 도시가 지닌 기억·추억·역사가 중요하다. 도시의 기억을 되살리고 도시가 영감을 줄 수 있는 길로 가는 게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일이라고 본다. 정치에서는 현재 관점도 중요하지만 미래 관점도 굉장히 중요하다.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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