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부영의 ‘잔혹한 10월’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5.10.29 17:06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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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회장 과도한 배당 논란 등 악재 연이어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에게 2015년 10월은 어느 때보다 잔인한 달이다. 시작은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이 회장을 10월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면서다. 부영그룹이 공급한 임대아파트의 보증금과 분양가가 LH·SH공사의 공공임대아파트보다 높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이 의원은 국감 출석을 하루 앞둔 지난 10월7일 증인 신청을 취소했다. 폭스바겐 사태가 부각되면서 타깃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영, 이 회장 조카 회사에 편의 제공 의혹

안도의 숨을 내쉬던 사이 새로운 문제가 불거졌다. 부영그룹이 이 회장 조카 회사가 사업을 낙찰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는 국감을 앞두고 한 국회의원실에 제보된 내용으로 전해졌다. 문제가 된 회사는 경비 서비스업체인 흥덕기업이다. 이 회장의 누나인 고 이봉림씨의 아들 유상월씨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부영그룹은 공개 입찰을 진행하면서 흥덕기업에 경쟁사들의 입찰견적서를 넘겨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통해 사업을 수주한 흥덕기업은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2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부영그룹을 통해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확인한 결과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며 “공개 입찰 절차상 사전에 정보를 넘겨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부영그룹 본사. ⓒ 시사저널 포토

숨 돌릴 틈도 없이 이 회장 일가의 과도한 배당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부영·동광주택산업·광영토건·대화도시가스·부영대부파이낸스 등 그룹 계열사 5곳이 지난해 406억원의 배당을 실시했고, 이 중 344억원가량이 이 회장 일가에 흘러들어갔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배당을 내준 회사들의 경영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문제가 됐다. 실제 광영토건과 대화도시가스, 부영대부파이낸스 등은 순이익이 절반 내지 그 이하로 감소했고, 동광주택산업은 적자로 돌아선 상황이었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오랜 기간 보관해오던 이익 잉여금을 한 번에 배당하면서 규모가 커지게 된 것”이라며 “배당금은 교육 사업 등 개인 기부 활동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국세청이 부과한 수백억 원대 추징금이 확정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2010년 친인척에게 명의신탁했던 주식 494만주를 증여받은 것으로 서류를 작성해 세금을 냈다. 이후 원래 자신의 소유였던 명의신탁 재산을 환원했다고 주장하고 불복에 나서 증여세를 돌려받았다. 2011년에도 비슷한 방법으로 임직원들 명의로 보유하던 주식 400만주를 실명 전환한 후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 국세청은 이 회장이 자신의 주식을 광범위하게 명의신탁한 것으로 봤다. 그리고 부영그룹 계열사들의 주식 변동 내역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국세청은 2013년 이 회장 일가에게 부당무신고 가산세와 납부불성실 가산세를 포함한 증여세 260억원을 통보했다. 이 회장이 친인척의 명의로 주식을 보유하면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 회장은 국세청의 가산세 부과가 부당하다며 심판청구를 냈다. 그러나 조세심판원은 최근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조세심판원은 “이 회장이 차명으로 주식을 관리하면서 문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부영의 주주 변동 상황을 숨겨왔다”며 “명의신탁 주식에 대한 증여세를 의도적으로 회피해왔기 때문에 가산세 부과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과거 회사의 부도로 이 회장 자신의 명의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친인척과 임직원들에게 명의신탁을 해 회사를 운영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세청의 추징세금은 전부 납부했지만 이 회장 개인의 절세 차원에서 심판청구를 냈다”고 전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 연합뉴스

 회장, 기부로 쌓아올린 이미지 무너지나

악재가 한 번에 몰려오자 부영그룹은 크게 당황한 눈치다. 그동안 별다른 부침 없이 순항해온 터라 더욱 그렇다. 부영그룹은 현재 재계의 전통적인 재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2012년 재계 순위 30위권 내에 진입했고, 지난해 말에는 20위에 오르기도 했다. 자산 규모는 지난 4월 기준 17조원에 육박한다. 부영그룹의 이런 위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실적에 비해 명성이 과소평가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재계에서 ‘숨은 강자’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부영그룹이 ‘알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임대 사업 방식의 도입이다. 주택을 지어 임대한 후 매달 임대료를 받는 식이다. 과거 일반 건설사들은 임대주택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분양 호황기 때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선 분양 후 시공’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임대주택은 수익성이 높지 않았다. 또 브랜드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부영그룹은 임대주택 시장에만 ‘올인’했다. 많지는 않지만 매달 안정적인 임대료 수입이 들어왔다. 건설사 부도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 프로젝트파이낸싱(PF)엔 손대지 않았다. 정부가 임대주택 사업자에게 공사비 35%를 지원해주는 ‘국민주택진흥기금’ 혜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영그룹의 진가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고 부동산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나타났다. 임대아파트에 대한 높아진 관심은 부영그룹의 수익으로 이어졌다.

부영그룹의 성공에는 이중근 회장의 역할이 컸다. 이 회장은 그동안 ‘세발자전거론’을 강조해왔다. 두 바퀴 자전거처럼 빨리 달릴 순 없어도 세발자전거처럼 느려도 쓰러지지 않는 경영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영론이 지금의 부영을 일궈낸 바탕이 됐다. 무엇보다 부영그룹은 여느 재벌가들과 달리 이렇다 할 오너 리스크가 불거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회장의 지속적인 기부 활동 등 선행으로 좋은 이미지를 쌓아왔다. 그러나 재계에선 최근 일련의 사태가 연속적으로 벌어지면서 그동안 쌓아올린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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