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이유 때문에 출산 포기하는 사람 없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5.10.29 17:14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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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선진국 독일·프랑스 현지 르포

아이 울음소리가 멎을지도 모르는 비극이 우리네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제3차 저출산 고령 사회 기본계획안’은 200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다. 하지만 ‘초·중·고-대학-취업-결혼-출산-자녀 양육-은퇴’를 벗어나는 삶의 다양한 변수에 관한 대응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핀트가 맞지 않는다”며 갖은 비판을 받았다. ‘합동 미팅설’까지 등장하자 ‘정부=통일교’라는 말까지 나오며 비꼬임을 당한 판이다.

그래서 한 번 알아봤다. 출산 선진국은 어떻게 변수들을 제어하고 아이들 숫자를 늘렸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 젊은이들의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지 않은 복지정책은 설득력이 없다는 점이다.
 

언제 출산해도 국가가 커버해준다

독일 캠퍼스의 ‘학생 부모들’을 만나다

강성운│독일 통신원

결혼만 시키면 만사형통일까. 독일 역시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독일의 합계 출산율은 여성 1인당 1.4명으로 한국의 1.2명보다는 높지만, 여전히 EU(유럽연합) 평균인 1.55명에 미치지 못한다(2013년 기준). 하지만 한국과 독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누가 어느 시기에 출산을 하든 국가가 부모의 생활과 자녀 양육을 소득에 따라 전폭적으로 지원해준다는 것이다. 덕분에 한국의 젊은 세대 사이에 만연한 좌절감이 독일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라면 출산과 육아를 포기했을 독일 대학생 부모들을 만나 물어봤다. 베를린 자유대학교(FU) 의과대학인 ‘샤리테’에는 ‘엄마 그룹’이 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느라 규정 학기를 초과한 열세 명의 늦깎이 대학생들을 부르는 별명이다. 이들이 낳아 기르는 아이는 모두 합해 19명이나 된다. 시사저널이 만난 요한나 클라인도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생인 딸 둘과 갓 돌이 지난 늦둥이 아들 등 세 아이를 키우며 학업을 병행 중이다. 그녀는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의대 입시에 도전했고, 임상학기에 들어가기 직전인 지난해 여름 서른넷 나이에 셋째를 낳았다.

세 아이 키우는 의대생이 받는 ‘당연한 배려’

클라인은 임신 때문에 생업이나 학업에 지장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전혀 없었다. 늘 긍정적인 경험만 했다”고 단언했다. “가끔 지하철이 붐빌 때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부탁해야 했지만 그 외엔 딱히 불편한 점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학교나 공공시설에서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시선을 받은 적이 없느냐고 묻자 “독일에서는 없었다. 12년 전 첫째를 임신했을 때 파리에 여행을 갔다가 안 좋은 소릴 들은 게 전부다”며 웃었다.

클라인은 지난해 여름방학 동안 출산을 하고 바로 학업을 이어갔다. 대학 측에서 자녀가 있는 학생들도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배려를 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샤리테는 재학생 자녀를 위한 탁아소를 운영하고 있고, 필요할 경우엔 집으로 베이비시터를 파견해준다. 양육이나 부부 문제가 발생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담 부서도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화장실마다 기저귀 갈이대가 설치돼 있어 걱정이 없다.

교과과정에도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섬세하게 배려한 대안이 반영돼 있다. 예를 들어 해부용 시신 보관에 쓰이는 포름알데히드가 임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임신부가 속한 조는 전원이 별도 시험장에서 인체 모형으로 해부 실습 시험을 치러야 한다. 클라인은 “산모의 건강과 학업 모두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특별대우로 보거나 차별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고 설명했다.

클라인이 학업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바로 감정적 지지와 존중이다. 임산부와 어린아이는 어느 곳에서든 환영받는다. “강의실에도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자 곧바로 “당연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얼마 전에도 어느 여학생이 옹알이하는 아기를 데리고 강의에 들어왔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수도 “우리의 미래 세대가 이 자리에 있다”고 농담을 했다.

그녀는 어린 후배들의 역할 모델로 여겨진다. 클라인은 “특히 여학생들은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가 되려면 12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아이를 낳으려면 이 과정 중에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고령 임신(35세 이상)은 산모와 아이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라인은 “교수들도 다양한 경험을 쌓은 학생 부모들이 어린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임산부와 부모, 자녀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는 엘리트 대학의 학생만이 누리는 특혜가 아니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클라인은 미용실에서 일하며 미용사 자격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염색약과 파마약 등 독한 화학물질을 다루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의사의 명령에 따라 곧바로 일을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정부가 계속해서 월급을 100% 지급했다. 뿐만 아니라 출산 후에는 모성보호지원금, 부모수당, 자녀수당, 고용청의 저소득층 지원금 등 각종 정부 지원금을 받아 큰 걱정 없이 양육에 전념할 수 있었다.

클라인은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야 남자친구와 결혼했다. 즉, 첫째와 둘째 아이는 비혼 자녀로 태어났고, 셋째 아이만 ‘클라인 부부의 자녀’로 태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제도적인 차별은 전혀 겪지 않았다.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의 종류와 상담 및 양육 지원 서비스는 결혼 전이나 후나 다를 것이 없었다. 이 때문에 그녀는 “늘 정부로부터 충실하게 지원을 받았고 아쉬운 점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한국의 3포 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에 대해 들은 그녀는 “독일에서는 적어도 경제적 이유 때문에 출산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청년층에 대한 지원을 아끼는 것은 결국 나라가 제 살을 깎아먹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인터뷰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녀가 보여준 긍정적인 확신이었다. 임신과 양육이 사회적으로 환영 받는 경험을 하면서 “우리 사회는 임산부와 아동에게 친절하고 안전한 곳”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베를린에서는 부른 배를 안고 혹은 유모차를 밀며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굳이 핑크색으로 표시하지 않아도 지하철에는 언제나 앉을 자리가 있었다.

“학생은 시간이 많아 아이 낳아 기르기 좋다”

쾰른 대학에서 매체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크리스티안 슈미트는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첫 아이를 얻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기쁜 일이었다”며 웃던 그는 한국의 학업 기간 단축안을 듣더니 “독일에서는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학업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공부를 제대로 마칠 수 있게 졸업 시기를 늦춰줘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슈미트는 학생 부모의 장점으로 ‘시간’을 꼽았다. 자녀와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고 유연하게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매일 6시간가량을 아이와 함께 보낸다.

슈미트가 장학금을 받게 되고 여자친구 다니엘라가 취직을 하면서 이 커플은 둘째 아이를 낳았다. 두 번의 임신을 경험했지만 결혼하지 않은 학생 부모라고 손가락질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는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진심으로 기뻐하시며 유모차를 사주시고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여주셔서 큰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시사저널이 만난 독일의 두 학생 부모는 공통적으로 “아이를 낳기에 최적의 시기란 없다”는 말을 했다. 인구정책은 그 특성상 효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독일은 다양한 삶의 방식에 열려 있는 가족정책을 펴고 있다. 생애 어느 시기에 아이를 낳아도 괜찮은 사회, 수혜자가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복지 체제, 임산부와 어린 부모를 격려하고 환영해주는 사회를 향하고 있었다. 우리 정부가 내놓은 미래 설계도의 빈틈 역시 이런 것들로 채워져야 하지 않을까.


 

“귀빈 대접 받는 임산부 보고 애 갖기로 했다”

국민 인식과 정책이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프랑스

최정민│프랑스 통신원

라시다 다티 전 법무장관은 재직 시절 출산을 했다. 43세의 노산(老産)임에도 출산 후 5일 만에 출근하며 외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토픽감이 됐던 것이다. 아이의 아버지를 밝히지 않은 것까지 알려지자 영미 언론과 호사가들의 입방아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프랑스 내부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비판 일변도였다. 몸을 푼 지 5일 만에 출근한 것을 두고 여성 정치인에게 우호적인 ‘파리마치’마저도 ‘슈퍼우먼 코스프레’에서 온 ‘오만한 행동’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프랑스 여론이 차갑게 반응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여성을 대변하는 여성 정치인이 여성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이유, 그리고 정치인이기 이전에 산모이자 어머니로서 좋은 본보기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세골렌 루아얄 환경장관도 1992년 장관 재임 때 출산을 했지만 일터로 나오는 모습이 아닌 병원에서의 모습이 언론에 노출됐다.

반면 흥미로운 점은 라시다 다티가 출산한 아이의 아버지를 두고 언론이 농담거리로 삼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대 진영이었던 좌파 사회당의 엘리자베스 기구 의원은 산모를 농담거리로 만드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비판은 했지만 여성과 어머니로서의 입장은 확고하게 방어해준 것이다.

배 속에서부터 대접받는 아기

이 사례는 프랑스와 프랑스인들이 ‘출산’과 ‘산모’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유럽 최고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높은 출산율은 두 개의 축으로 움직인다. 하나는 정부의 정책이며 또 다른 하나는 ‘출산’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다. 정부의 정책은 1939년에 마련된 가정법을 기준으로 가족 구성의 토대를 마련한다. 영국의 평론가 미셀 시렛트는 “프랑스인들이 독일보다 인구가 적어서 2차 대전에서 독일에 패했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로 2차 대전 이후 프랑스는 인구정책에 유달리 집착했다. 그러한 집착의 결실은 의외의 법안에서 이뤄졌는데, 1999년 조스팽 내각에서 만들어진 ‘시민연대협약’이다. 일명 ‘PACS’라고 불리는 이 법안은 동성 커플의 사회적 보호를 위해 마련됐지만, 결혼하지 않고 결혼한 부부와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출산율 상승에 일조했다. 이 제도를 통해 수많은 커플이 결혼이라는 통과의례가 없어도 부부와 같은 조건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출산과 육아를 위한 1차적 지원은 아이를 출산했을 때 받는 수당, 3세까지 받는 유아수당, 2명 이상의 자녀를 둘 경우 주어지는 가족수당 등이다. 그렇다고 경제적인 지원만으로 아이를 낳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정책의 속을 꽉 채워주는 것은 사회적인 배려와 ‘출산’에 대한 프랑스인의 의식이다. 아이와 출산에 대한 폭넓은 배려가 곳곳에 배어 있다. 프랑스에서 버스는 앞문으로 타고 뒷문으로 내린다. 유일한 예외는 유모차다. 유모차는 뒷문 승차가 기본이고 뒷문 앞쪽의 빈 공간은 유모차 전용이다. 짐이 많은 여행객도 유모차가 들어서면 자리를 내줘야 한다.

115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파리 지하철은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역도 많고 계단이 엄청 많다. 그러나 유모차는 그저 기다리면 된다. 어느 누구도 그냥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유아와 동행한 어른은 어디서나 ‘갑’이다. 공공 미술관을 비롯해 어디서든 입장할 때 유모차는 줄을 서지 않고도 바로 입장이 허락된다.

아이는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대접받는다. 파리에서 거주하며 일하는 이자벨(38)은 대학 석사 과정 때 임신을 했다. 당시 동거 중인 상태였다.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 것은 같은 과정에 있던 친구의 출산을 보면서다. 임신한 친구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귀빈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시험 때면 아이들이 행운을 기원한다며 주변에서 임산부의 남산만 한 배를 만지고 갔고, 만삭일 때는 친구들이 신발 끈까지 묶어주었다.

파리 12구 걸리버 유아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델피(34) 역시 5년 전 동거 상태에서 아이를 가진 경우다. 그녀의 출산 계획에 맞춰 보조교사가 이미 마련돼 있었다. 프랑스의 법정 출산휴가 일수는 16주다. 동료들의 눈치를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외가 있다면 취직 직후 아이를 갖는 경우인데, 그럴 경우 경영진은 에둘러 타박하는 정도에 그친다.

대다수 병원이 국립인 프랑스에서 출산은 거주지로부터 가까운 병원을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임신 확인과 출산에 이르는 과정은 세분화돼 있다. 출산 전까지 임신부는 부인과의 의사에게 한 달에 한 차례씩 검사를 받는다. 프랑스에서 출산이 특이한 것은 ‘사주팜’이라고 하는 전문 조산원이 출산을 담당한다는 사실이다. 의사는 출산 직전까지 임신부를 체크하고, 출산 과정에서 산후 조리와 모유 수유의 과정은 사주팜의 손을 거치게 된다. 병원에는 평균 5일간 입원한 후 퇴원하며, 지역에 따라 산후 조리 처방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다섯 차례 사주팜의 방문 진료를 받거나 통원 진료를 받는다.

최고의 출산율을 자랑하는 프랑스이지만, 아직도 만족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지난 5월 유엔이 발표한 ‘엄마 되기 좋은 나라’ 조사에서 프랑스는 23위였다. 이를 두고 프랑스 언론들은 ‘형편없는 성적’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1위는 노르웨이였고 상위에 위치한 나라는 모두 북유럽 국가들이었다. 23위의 프랑스지만 출산율에서 북유럽을 앞지르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경제학자이자 인구 문제 전문가인 장 프랑수아 뒤퐁은 “경제 위기 이후에도 프랑스가 복지정책의 수정을 거들떠보지 않는 것은 출산을 위해 고무적이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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