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속 난민의 존재 정면으로 응시하다
  • 이은선│매거진 M 기자 (.)
  • 승인 2015.10.29 17:18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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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귀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디판>

<디판>은 지난 5월 열린 제68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차지했다. 영화제 당시를 반추하면,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큰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오히려 올해 황금종려상의 유력한 주인공으로 언급되던 영화들은 따로 있었다. <디판>은 토드 헤인즈 감독이 연출한 <캐롤>이 불러일으킨 화제성, 라즐로 네메스 감독의 <사울의 아들>이 던진 충격,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자객 섭은낭>으로 증명한 미학적 성취 등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영화였다. <예언자>(2009년), <러스트 앤 본>(2012년) 등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신작임을 감안할 때 전에 없이 설명적이고 장르적인 영화라는 인상이 짙었다. 각종 언론의 의견은 대체로 “절제미 있고 힘이 넘치는 영화지만 감독의 작품 중 최고는 아니다”(가디언)로 수렴되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올해 칸이 <디판>의 손을 들어준 데는 명백한 이유가 있는 듯 보인다. 이 영화는 21세기 유럽 사회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인 망명과 난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바라보는 감독의 어떤 시각을 보여준다. 그 시각은 절망의 끝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서로를 끌어안는 숭고한 순간에 가 닿는다. 동시대 사회 문제에 대한 영화적 응답. <디판>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스리랑카에서 내전을 겪은 35세 디판, 24세 얄리니, 9세 일라얄은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지만 망명을 위해 가족 행세를 해야 했다. ⓒ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꽃 파는 가난한 존재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

‘디판’은 주인공 남자(안토니타산 제수타산)가 새롭게 얻은 이름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남자가 정말로 그 이름을 얻기 위해 벌이는, 사투에 가까운 인정(認定) 투쟁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고국 스리랑카의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의 망명을 택한 그는 브로커로부터 몇 개월 전 죽은 사람의 신분증을 산다. 실제 신분증 주인의 서류에는 아내와 어린 딸이 올라 있다. 이에 디판은 대피소에서 만난 여자 얄리니(칼리스와리 스리니바산) 그리고 부모가 없는 소녀 일라얄(클로딘 비나시탐비)과 함께 프랑스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세 사람은 시민권을 얻을 때까지 가족 행세를 해야 한다.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불가능한 낯선 환경이지만, 디판은 세 사람이 함께 머무르는 다세대 주택의 관리인 일을 맡으며 생활 터전을 닦아나간다.

조금씩 웃음을 되찾고 얼추 그럴싸한 가족의 모습을 갖춰나가던 세 사람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들이 터를 잡은 곳은 갱단이 활개를 치는 우범지대이기 때문이다. 갱단은 어느덧 세 사람의 일상을 위협한다. 게다가 디판은 우연히 스리랑카에서 함께 반군으로 활동하던 이를 만난 후 조국의 상황을 등졌다는 비난에 휘청거린다. 목숨을 걸고 망명을 택했지만, 형태만 다른 또 하나의 전쟁터에 내던져진 이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그들의 선택과 감정적 파장을 찬찬히 따라간다.

감독은 사소한 계기에서 이 영화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카페에 앉아 있을 때 다가와 꽃을 파는 가난한 이들의 존재에 대해 문득 궁금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온 사람들인가. 감독이 품었던 궁금증은 디판이라는 하나의 분명한 캐릭터가 돼 영화 속을 유영(游泳)한다. 극 중 그가 부딪치는 유럽 사회는 망명자나 난민이 된 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이상적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비단 그 꿈이 총성과 비명이 가득한 곳이 아닌 삶의 터전을 원하는, 소박한 바람이라 해도 말이다. 감독이 주목하는 곳은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서 시름하는 이들이 웅크리고 있는 그늘진 구석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삶이란, 전쟁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 영화는 망명자들의 배경을 세세하게 설명하려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건, 디판을 연기한 안토니타산 제수타산이 열여섯 살 때 타밀 호랑이 반군에 합류해 열아홉 살 때까지 소년병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때의 경험을 모티브로 2001년에 소설을 펴내기도 했다. 하지만 오디아르 감독은 이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 기능하는 스리랑카 내전(1983~2009년, 정부군과 스리랑카 내 힌두계 타밀족 사이에 벌어진 분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목 역시 거의 없다. “내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게 오디아르 감독이 밝힌 이유다.

거장의 전작들 빛나는 부분 녹여놓은 <디판>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연출 데뷔작 <그들이 어떻게 추락하는지 보라>(1994년)를 포함해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이야기를 꾸준히 해온 작가다. 2009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대표작 <예언자>에서는 감옥에서 냉혹한 인생의 섭리를 배우며 성장하는 열아홉 살 소년 말리크(타하르 라힘)의 이야기를, 바로 전작인 <러스트 앤 본>에서는 예기치 않은 사고로 다리를 잃은 범고래 조련사 스테파니(마리옹 코티아르)와 삼류 복서 알리(마티아스 쇼에나에츠)가 절망의 끝에서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런 점에서 <디판>은 이 두 영화의 가장 빛나는 부분들을 녹여 만든 작품처럼 보인다. 강렬한 액션 시퀀스를 중심으로 극의 분위기가 장르적으로 변모하는 후반부는 여러모로 <예언자>를 떠올리게 한다. 삶의 결함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껴안아가는 과정은 <러스트 앤 본>을 닮았다.

이에 대해 오디아르 감독은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명백히 사랑 이야기”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는 폭력이 등장하지만, 그 형태는 처음과 끝이 완전히 다르다. 주인공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싸우다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사랑이 위험에 처했을 때, 기꺼이 다시 전쟁을 시작한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판>의 폭력은 인물의 감정이 폭발하는 계기로 기능한다. 무언가의 가치를 상기하기 위한 장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에 가깝다는 인상이다. 그리고 사랑은 삶이 뿌리째 흔들리는 폭력 안에서 거대한 힘을 발휘하는 가치다.

다만 <디판>이 말하는 사랑은 멜로드라마의 그것이 아닌 좀 더 폭넓은 의미의 ‘인간애’다.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이 다른 인간을 향해 발휘하는 마음. 그 숭고한 가치를 그린 후반부 장면에 이르면, 감정적 울림이 꽤 크게 진동한다. 현실적 주제를 날카롭게 응시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프랑스 거장의 포용력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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