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피디의 방송수첩] 손님을 빨리 앉혀야 오래간다
  • 박진석 | KBS PD (.)
  • 승인 2015.10.29 17:22
  • 호수 13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 미니시리즈 <육룡이 나르샤>와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초반 전개 흥미로워

얼마 전 월스트리트저널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봤다. 동영상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가 시청자의 콘텐츠 충성도에 대한 데이터를 만들었다는데, ‘시청자가 드라마를 접할 때, 대체 초반 몇 회까지 봐야 시즌 전체를 유료로 구매하게 되느냐’에 관한 내용을 다룬 것이다. 가령 인기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는 시즌1이 총 7편인데, 대다수 시청자는 2회까지 보고 나서야 이 드라마의 매력에 빠져들어 시즌1 전체를 샀다는 것이다.

우리 업계에선 지상파 16부작 미니시리즈에 대해 “초반 4회가 좋으면, 그 힘으로 끝까지 간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넷플릭스만큼 데이터를 기반으로 명쾌한 결과를 도출한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의 제작 경험에서 나온 경험적 진리(?)일 것이다.

결국 드라마 초반에 얼마나 빨리 시청자를 끌어들이느냐가 드라마 전체를 좌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제작진이 만들어낸 세계관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일종의 언어 배우기라고나 할까. 빠를수록 그 언어 안에서 놀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시작한 미니시리즈 두 편의 초반 전개는 흥미롭다. 각기 현실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굉장히 이질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시청자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살펴볼 드라마는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육룡이 나르샤>와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다.

에서 태종 이방원 역을 맡은 유아인. ⓒ MBC

<육룡이 나르샤>

MBC의 <육룡이 나르샤>는 현재 대한민국 드라마에서 가장 ‘핫(hot)’한 김영현-박상연 작가의 새 프로그램이다.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재미 요소는 가득한데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첫인상이었다.

전작들에서 보인 이 작가진의 장점이자 특질은 역사적 사실 위에 대중문화에 익숙한 무협 활극적 요소들(비밀 음모 집단, 복수심에 불타는 칼잡이, 운명을 부정하는 인물들)을 잘 버무리는 전개다. 물론 이런 요소들은, 굉장히 탄탄한 이야기 조직을 구성하는 작가진의 기본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아역들이 극의 초반 플롯을 이끌어가는 구조와 작가진의 장점이 만나면서 의외로 상승효과를 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다.

초반에는 아무래도 중심인물인 ‘여섯 용’을 작가들 고유의 관점으로 묘사하고, 이들이 얽히면서 자연스럽게 극이 전개될 설계였을 터다. 그런데 어린 ‘이방원’이 향후 자신이 메인 인물로 성장할 주인공인데도 1회와 2회에 ‘이성계’와 ‘정도전’을 시청자에게 소개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한 것이 산만함의 원인이다. 나중에 성장해 여섯 용의 구성원이 될 젊은 인물들과의 관계도 미리 짜둬야 하고, 그러면서 어른 세대인 이성계와 정도전의 이야기도 전개해야 하니 그 밸런스 맞추기가 만만치 않았으리라.

그래도 1회에서 기본적인 인물 관계를 전달해둔 덕일까, 2회에서는 좀 더 이 드라마의 색깔을 보여줬다.

흥미로운 대목은 2회 말미에 정도전(김명민)이 노래를 하며 농성하는 장면이었는데, 방송 후 많은 기사가 영화 <레미제라블>을 언급하며 “뮤지컬스럽다”는 평가를 내렸다.

나는 오히려 민주화 세대의 시위 시절을 스케치한 사진들이 연상됐다. 민중가요를 부르며 스크럼을 짜고 전경들과 대치하는, 그런 상황들의 모습 말이다. 전작 <뿌리 깊은 나무>에서 보여준 정치관이나 이번 드라마에서 슬며시 보이는 이런 장치들에서 그 세대에 대한 작가의 존중과 향수가 느껴졌다고 할까.

어떻게 조선을 세워나가는가가 이 드라마의 중심이니 결국 키워드는 ‘정권 교체’ 혹은 ‘변혁’일 텐데, 그 속에서 이러한 코드를 어떻게 녹여낼지가 흥미롭다.
 

에서 과거의 비밀을 풀기 위해 미스터리에 접근하는 여주인공 한소윤 역을 맡은 문근영. ⓒ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은 미스터리물을 적극 표방하고 있다. 어린 시절 사고를 겪고 홀로 남겨진 주인공은 단절된 과거의 비밀을 풀기 위해 마을에 흘러들게 되는데, 이 마을에도 무언가 음산한 비밀이 감춰져 있고, 주인공은 그 미스터리에 조금씩 접근하게 된다는 드라마다. 요약한 설정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이 드라마는 두 가지의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자신이 기억할 수 없는 어린 시절 사고의 비밀을 파헤쳐야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에서 일어났던, 그리고 아직 해결되지 않고 덮여 있는 살인 사건의 진상이다. 이 드라마 첫 주 포석에서는 두 이야기를 엮지 않고 놓아두기를 택했다.

사실 드라마의 첫 시퀀스부터 흔치 않은 선택을 했더랬다. 시작하자마자 소윤(문근영)의 1년 전 과거를 보여주면서 마을로 가게 될 동기를 부여하는가 싶더니, 바로 다음에선 2년 전으로 튀어 지숙(신은경) 가족의 불륜 스캔들을 다룬다. 연이어 다른 시간대의 각기 다른 인물들의 과거를 툭툭 던지는 선택은 TV 드라마의 시작치고는 산만할 수 있기에?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통상적으로는 선택하지 않을 구성이다. 한데 첫 주 방송을 다 보고 돌이켜보고서야 이런 선택이 이해됐다. 앞으로 이야기를 따라갈 시청자들에게 필요한 사전 정보를 어느 시점에서든 명쾌하게 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의 관건 역시 어떻게 이처럼 분리된 두 스토리라인을 따로 놀지 않게 하느냐일 것이다.

어떤 드라마든 실제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진 단역 캐스팅부터 메인플롯의 방향까지, 다양한 갈림길에서 취사선택을 하고 숙고하기 마련이다. 나중에 결과를 보고서 그 선택을 거슬러 올라가 ‘더 재밌으려면 이랬어야 해’라고 사후약방문을 쓰는 것처럼 의미 없는 것이 어디 있으랴(물론 드라마를 즐겨 보는 시청자의 입장에선 이런 것도 큰 재미다).

어찌됐건 이 글이 공개될 즈음이면 이미 두 드라마 모두 초반 포석을 바탕으로 해 본격적으로 극의 중반에 들어가고 있을 시점일 텐데, 아무쪼록 외부 영향에 휘둘리지 않고 애초의 기획을 오롯이 끌고 가면서 완성도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주길 응원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