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맷 데이먼이 아니라 ‘과학’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
  • 승인 2015.10.29 17:25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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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션> 속 과학의 리얼리티

SF영화 <마션(The Martian)>이 2015년 가을 스크린을 달구고 있다. ‘마션’은 화성인이라는 의미다.

영화 <마션>의 진짜 핵심은 바로 과학이다. 주인공이 고립무원 상태에서 다음 탐사대가 올 때(4년 후)까지 살아남기 위해 화성의 환경에 대응하는 방법이 모두 과학이다. 또한 ‘리얼리티’가 강한 영화다. 2030년대에 유인 화성 탐사를 계획하고 있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실제로 ‘화성 서바이벌’을 위해 개발된 우주 기술을 공개했는데, 많은 장면과 장치들이 대부분 실제 NASA가 고려하고 있는 것들이다.

 

헬멧과 슈트, 화성에서 짓는 농사 등 영화 에 쓰이는 모든 것은 과학적 리얼리티를 제대로 살렸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공전 주기의 차이, 1화성년=지구의 2년

NASA에 따르면, 현재의 우주여행 기술로 화성에 가려면 8개월에서 9개월 정도 걸린다. 화성은 타원 궤도로 공전하고 있어 지구와 화성 사이의 거리가 계속 바뀐다. 최단 거리는 약 5460만㎞. 실제로 2012년 화성에 도착한 탐사 로봇 ‘큐리오시티’는 5억6600만㎞를 253일간 날아갔다. 영화에서 지구에 거의 다 온 탐사선 헤르메스가 화성으로 돌아가 두고 온 와트니를 데려오는 추가 미션에 500일이 넘게 소요되는 이유다.

화성에서의 하루 또는 ‘SOL(화성에서의 1태양일)’은 지구에서보다 약 40분 길다. <마션>에서 와트니는 화성에서 그가 소비하는 시간을 ‘일’이 아닌 ‘SOL’로 계산한다. 이것은 NASA가 실제 화성에서 시간의 흔적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1화성년은 지구의 2년과 거의 같다. 화성이 한 바퀴 도는 태양 공전 궤도가 지구보다 멀기 때문이다.

헤르메스는 대원들의 여행을 좀 더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인공 중력과 방사능 차단 기능을 가지고 있다. 화성에는 대기가 거의 없다. 지구를 둘러싼 대기의 약 1% 밀도다. 이는 화성 표면을 위험한 우주 방사선으로부터 충분히 막아주지 못한다는 의미다. 또 화성의 중력은 약해 지구의 40%밖에 되지 않는다. 지구에서 1m 점프하는 농구선수가 화성에서는 26m까지 뛰어오를 수 있다. 그렇다고 달에서의 가벼움 정도만큼은 아니다. <마션>에서는 탐사선 생활공간에서 대원들이 바닥에 ‘발을 붙이고’ 생활한다. 탐사선이 바퀴처럼 원을 그리며 회전해 원심력으로 인공 중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NASA는 현재 두 가지 모두를 개발 중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또 헤르메스처럼 생활공간이 널찍한 규모의 탐사선을 만들려면 엄청난 연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쏘아 올리는 로켓의 숫자도 만만찮을 것이다. 이런 탐사선 개발은 이번 세기에는 불가능할 것 같다.

한편 헤르메스 우주선이 사용한 이온 엔진은 이미 개발한 상태다. 이온 엔진은 이온을 발사해 얻는 추력(推力)으로 우주선을 움직이는 기술로, 연료 소비를 최소화한 것이다. 기체를 전기로 충전해 시속 약 32만㎞로 방출하기 때문에 수년간 빠른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2012년 소행성 ‘베스타’를 탐사한 ‘돈(DAWN)’이 바로 이온 엔진 방식이다.

화성은 붉은 별이다. 푸른 별 지구의 절반 크기다. 사계절이 있지만 겨울에는 영하 140도에서 여름에는 영상 20도를 오르내린다. 모래폭풍도 자주 발생해 한 번에 며칠씩 화성을 뒤덮는다. 하지만 공기가 희박하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뭔가를 날려버릴 만큼 강한 바람을 일으킬 수 없다. 무서운 시속 160㎞의 폭풍도 힘이 없다.

<마션>에서 와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텐트 형태의 거주 모듈인 막사(hab)에서 보낸다. ‘hab’은 화성 착륙선 주거지의 약자다. NASA는 시시때때로 부는 모래폭풍과 영하 63도의 극한 환경을 잠시 피해갈 수 있는 거주 모듈로 ‘헤라(HERA)’를 고안 중이다. 헤라는 돔 형태의 2층짜리 막사로, 내부는 거주시설과 위생시설, 작업실 등으로 이뤄졌다. 이곳에서 우주인들은 14일 동안 머무를 수 있다.

화성에서 우주비행사들이 구할 수 있는 에너지는 태양에너지뿐. 화성 집에 조명을 켜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는 동력은 태양전지에서 얻는다. 현재 국제우주정거장(ISS)에는 태양전지판 4세트가 설치돼 84~124㎾의 전력을 공급받는다.

화성에서의 농업, 과연 가능할까

<마션>에서 홀로 고립된 주인공 와트니는 불굴의 지구 생환 작전을 시작한다. 기계공학자인 동시에 식물학자인 와트니는 화성에서 최대한 버티기 위해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한다. 그 첫 번째가 식량 확보다. 화성 기지 식당을 뒤져 감자를 발견한 후 곧바로 실내 정원을 만들어 감자 재배에 성공한다. 푸석한 화성의 흙에 동료들이 남기고 간 압축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해 촉촉한 흙으로 변신시킨다. 농사에 필요한 물은 자체 생산한다. 과연 이런 과정이 실제로 가능할까.

NASA에서 근무 중인 식물학자 브루스 벅비는 말한다. “우리는 화성 토양에 대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실제에서 가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지난 8월 NASA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재배한 상추를 먹는 우주비행사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한 적이 있다. 중력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베지(Veggie)’라는 우주 농사법을 개발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베지는 인공 빛으로 식물을 키우는 수경재배 시스템이다.

와트니는 식물을 키우는 물과 마실 물도 만들어냈다. 로켓 연료에서 수소를 분리해낸 후 산소를 반응시킨 것. 2008년 국제우주정거장에서는 처음으로 ‘물 재활용 시스템(Water Recovery System, WRS)’을 설치해 물을 얻고 있다. 우주비행사의 소변이나 땀, 손 씻은 물 등을 모아 정화하는 시스템이다.

산소도 직접 생산해야 한다. 화성에는 산소가 없다. 화성 대기의 95%가 이산화탄소다. 즉 인공적인 산소 공급이 없으면 인간이 살 수 없다. NASA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산소를 만드는 ‘산소 발생 시스템’도 이미 발명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는 이 시스템으로 우주의 대기를 재활용해 호흡에 필요한 공기를 공급받고 있다. 결국 우주 환경에서 채소를 재배할 수 있다는 건 인류가 우주 환경에서 생명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와트니의 감자 농사는 성공했다. 하지만 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마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감자밭이 날아갔다. 이후 그는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지구와의 교신을 시도한다. 화성 탐사선에서 지구로 한 번 교신하는 데 12분, 지구로부터 답을 듣는 데 또 12분, 최소 24분이 걸리는 셈이다. 이는 지구와 화성이 독자적으로 공전하기 때문이다.

결국 NASA는 그가 생존했음을 발견하고 끝내 그를 구해낸다. 이 과정에서 과학 지식이 펼쳐진다. <마션>은 물리학·생물학·화학·천문학적 지식과 과학자들의 창의성을 그럴싸하게 잘 버무려낸 좋은 SF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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