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악몽 남일 아냐”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biz.com)
  • 승인 2015.10.29 17:13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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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국내 조선업 불황 장기화할 수 있어”
29일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에 4조 지원을 약속한 가운데, 현대중공업 역시 자금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사진=시사비즈

‘조선 빅3’에겐 악몽 같은 10월이다. 세계 조선업을 호령하던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모두 조 단위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조선 역사상 대형 3사가 동시에 1조 이상 분기 적자를 기록하기는 처음이다.

실적 악화의 골은 생각보다 깊어 보인다. 그 중 최악은 대우조선해양이다. 3분기 1조원 적자를 기록했고 빚만 4조원이다. LNG선을 합한 수주 잔고는 여유있지만 해양 플랜트 부문에서 적자 폭이 깊다. 노동조합이 파업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4조2000억원을 긴급 수혈한다지만 조선업 불황 탓에 회복세는 더딜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에게 대우조선의 비보는 남 일이 아니다. 늘어난 적자, 재집권한 강성 노조, 글로벌 경기 불황이라는 삼중고가 현대중공업을 옥죄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이 실적 반전을 이루지 못하면, 조만간 중국 조선사에 상선·플랜트 양대 시장을 모두 내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돈 잔치는 옛말, 쌓여가는 적자

2000년대 초반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조선사들은 매년 최다 실적을 갱신했다. 특히 업계 1위 현대중공업은 분기마다 돈 잔치를 벌이며 ‘조선업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특히 2010년에는 현대중공업 창사 이래 최다 실적인 매출 22조4052억원, 영업이익 3조4394억원, 당기순이익 3조7611억원을 기록했다. 그해 4분기 실적은 매출 6조원, 영업이익 9830억원이었다.

당시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고가 선박 수주가 늘었고 수익성 높은 해양플랜트가 이익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5년 뒤 상황은 급변했다. 현대중공업이 자랑하던 고가 선박 수주는 줄었고 해양플랜트는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플랜트 공사가 지연되며 투자 대비 수익성이 나빠진 탓이다.

그 결과 3분기 현대중공업은 매출액 10조9184억원, 영업손실 6784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손실액은 전 분기보다 296.7% 늘었다. 업계 예상을 웃도는 ‘어닝 쇼크’였다. 이에 현금자산이 빠르게 줄고 있어 현대중공업이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말라붙은 선박 수주, 해양플랜트도 기약 없어

전문가들은 당분간 글로벌 조선업 불황이 지속할 것이라 전망한다. 저유가 기조가 계속되면서 해양플랜트 발주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선박의 경우 해양플랜트보다 사정이 낫다. 상선분야가 연초 예상치보다 발주가 부족했지만 유조선과 컨테이너선 등 고가 선박 위주로 발주가 소폭 늘었다. 올해 3분기 누적으로 국내 주요 4개 조선소 선박 수주량은 185척으로 지난해 대비 15.6% 증가했다.

상선 부문의 호황은 내년부터 강화되는 환경규제 영향이 컸다. 국제해사기구(IMO)는 내년 1월부터 건조작업에 들어가는 선박 중 환경규제지역 운항 선박에 대해 질소산화물(NOx) 배출기준을 강화한 ‘Tier III (대기오염방지 3차 규제)’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따라 타이어III를 회피하려는 선주들이 올해 발주를 늘렸다. 4분기부터 환경규제에 따른 반사 이익이 사라지며 선박 발주가 다시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언더독(underdog)으로 인식되던 중국 조선소 성장세도 무섭다. 국내 조선사들이 선박 수주잔량 글로벌 순위에서 1~5위를 차지하며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9월 중국 조선소 70곳이 글로벌 수주잔량 순위 150위 내로 진입했다.

현대중공업이 중국 압박을 피하기 위해 저가 수주로 대응하다가는 자금난이 더 악화될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동시에 공사가 진행 중인 해양플랜트에서도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고된다.

◇ 강성노조의 재집권...현대重 ‘내우외환’

28일 현대중공업 제21대 노동조합 임원선거 결과 기호 1번 백형록 후보가 새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백 당선인은 현장조직 ‘분과동지회연합’ 출신으로 기존 노조 집행부와 같은 ‘강성’으로 분류된다.

현대중공업이 자금난을 호소하며 임금동결과 임금피크제 시행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백 당선인은 ‘불타협 비관용’ 원칙으로 맞서고 있다.

백 당선인은 선거 기간 “노조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회사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임금동결안에 맞불을 놨다. 또 ‘임금삭감 없는 정년 60세’라는 공약을 내세워 사측이 고려 중인 임금피크제에 날을 세웠다.

현대중공업으로서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수주 경쟁은 치열해지고 해양플랜트 등 발주량도 줄고 있다. 노사협상도 장기화할 것으로 보여 실적 회복에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기 어려운 처지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 3분기 해양플랜트 부문 적자를 상당 부문 털어냈기에 적자폭은 감소할 것이라 기대한다. 노사 협상에서는 새로운 임금 인상안이 제시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이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해양플랜트 부실이 거듭되면서 이미 발생한 영업손실액을 만회하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정동익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중공업은 저가수주와 잦은 설계변경, 이에 따른 공사지연 및 투입시수 증가, 기자재 가격 상승 등이 대규모 적자를 초래했다”며 “더 큰 문제는 동일한 문제가 매 분기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조선업계가 실적을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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