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길주의 黙黙不答]‘롯데 시네마’의 결말
  • 윤길주 편집위원 (ykj77@sisabiz.com)
  • 승인 2015.10.30 14:43
  • 호수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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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형제 경영권 다툼이 치열하다. 막장 드라마의 심판은 법원이 맡고 있다. 형인 신동주가 싸움을 법정으로 끌고 갔다. 신동주 측은 동생 신동빈의 ‘중국 사업 실패’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부실이 얼마인지 장부를 까봐야겠다는 것이다. 동생을 흠집 내 싸움을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의도다.

대세를 장악했다고 한숨 돌리던 동생은 고약스러운 상황이다. 일전을 펼치고 있는 형 곁에 아버지가 버티고 있어서다. 형과의 법적 공방도 부담이다. 여론이 악화되면 면세점 사업권을 잃을 수도 있다.   

아버지인 신격호가 머무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에선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신격호는 CCTV와 경호원을 철수시켜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작은 아들로부터 감시당한다고 여기고 있다. 94세의 나이에 롯데호텔 34층을 아들과의 전쟁을 위한 막사로 삼은 그가 한편으로 안쓰럽다.

재벌가 왕자들의 아귀다툼을 여러 번 봤던 터라 롯데라고 색다를 건 없다. 솔직히 형이 먹든, 동생이 먹든 별 관심이 없다. 경영 능력 어쩌고 하지만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일 뿐 우리 재벌가에선 부질없는 말이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 아버지가 후계자로 점지하면 그걸로 끝이다.

다만 롯데가 형제 싸움에서 우려스러운 게 있다. 3부자가 뒤엉켜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는 동안 커튼 뒤에서 누가 웃고 있을까. 롯데그룹의 앞날과 관련한 중대한 문제다. 신씨 형제만의 내전이 아니라는 거다.  

한일 롯데그룹의 최정점에 일본 롯데홀딩스가 있다. 이를 장악하면 한일 롯데를 지배할 수 있다. 현재 과장급 이상 직원들로 구성된 일본 종업원지주회는 롯데홀딩스 지분 27.8%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에 형제간 싸움으로 실체가 드러난 광윤사(光潤社․지분율 28.1%)에 이은 2대 주주다. 또 임원지주회가 6%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종업원지주회 지분과 합치면 33.8%에 이른다. 신동주가 1대주주인 광윤사를 압도한다.

종업원지주회와 임원지주회를 움직이는 핵심 인물은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으로 알려져 있다. 신동주 측에 따르면 그는 상왕처럼 섬기던 신격호를 해임한 ‘롯데 쿠데타’의 주역이다. 그가 누구 편에 서느냐에 따라 신씨 형제는 물론 롯데그룹 운명이 갈릴 수 있을 거란 얘기가 나온다.

칼자루는 이들이 쥐고 있는 모양새다. 신씨 형제는 지주회를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회사야 망가지든 말든 대권만 잡으면 그만인 것처럼 보인다.

지주회를 등에 업고 형제 중 한명이 권력을 잡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다. “자꾸 그런 식으로 하면 재미없어”라며 어느 날 이사회를 열어 ‘바지 회장’을 날려버릴 수도 있다. 절대적 존재였던 신격호도 한 순간에 추방한 그들이다. ‘공신’이란 점을 앞세워 얼토당토않은 조건을 들이댈 수도 있다. 급여를 다섯 배로 올려달랄지, 돈이 되는 사업권을 내놔랄지.

소설 같은 얘기라고? 그렇지 않다. 롯데그룹 지분 구조나 신씨 형제 싸움 양상을 봤을 때 현실화 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신격호는 이미 권위와 통제력을 잃었다. 형제가 싸우는 동안 롯데그룹은 무주공산이 되고 있다. 현해탄 건너에서 누군가 눈을 번뜩이며 형제의 양패구상(兩敗俱傷·쌍방이 다 패하고 상처를 입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등골이 오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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