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이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11.04 22:36
  • 호수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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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오른 이재용, 위기 앞에 선 한국 경제 / 1997 IMF 외환위기, 2008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 시사저널 임준선

삼성그룹의 구조조정 소식에 한국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언론에서는 9월 말부터 삼성을 예의주시하며, 그룹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구조조정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재계는 이런 삼성의 구조조정 규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역시 최대 관심은 삼성전자로 집중된다. 삼성그룹의 핵심이자 국내 최대 기업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역시 구조조정에서 예외가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우리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삼성그룹의 구조조정에 재계와 언론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영향력과 상징성 때문이다. 삼성은 회사 실적뿐만 아니라, 향후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한 발짝 앞서 대처하는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다. 당시만 해도 삼성은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 현재와 같은 영향력을 가진 기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체질을 개선하면서 글로벌 기업 도약의 발판을 놓았다. 따라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현재 삼성그룹의 구조조정은 한국 경제의 방향을 알 수 있는 풍향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삼성의 구조조정을 간단히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29일, 올 3분기 동안 7조39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분기보다 7.18%,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82.08% 증가한 실적이다. 역대 최고이자, 국내 기업들 중 압도적이다. 이런 삼성전자가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란 얘기는 우리 경제 미래의 위기를 대변해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삼성전자에서는 ‘구조조정’이 아닌 ‘통상적 경영 활동의 일부’라고 부인하고 있다. 10월29일 기자와 만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언론이 생중계하듯 구조조정과 관련한 소식을 보도하다 보니 정상적인 업무를 하기가 힘들정도”라며 피로감을 나타냈다. 정리해보면, 언론을 비롯한 그룹 외부에서는 삼성그룹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고 있고, 삼성에서는 언론의 이런 보도가 확대해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DS 사업부 빼고는 삼성전자 모두 구조조정

그렇다면 삼성그룹이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은 사실일까. 삼성이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것과 달리, 내부 임직원들이나 재계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이 맞다고 보고 있다. 일단 삼성그룹 최대 계열사인 삼성전자에서부터 인력 감축과 경비 절감을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본사 인력의 상당수가 현장으로 배치되었을 뿐 아니라 현장에서도 폭넓은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가장 실적이 좋은 DS(Device Solution) 사업부를 제외한 대다수 사업부가 대상에 포함됐다. 최근 몇 년간 삼성전자의 실적을 이끌었던 휴대폰 사업부와 삼성전자가 한때 신수종 사업으로 꼽았던 LED 사업부의 경우, 아예 인사 파트에서 대상자까지 지정해 내려왔다고 한다.

삼성전자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LED 사업부의 경우 6주 전쯤 구조조정 기준이 내려왔다. 그 기준을 살펴보면 △부장급 △고참 책임 △고과 하위 등급자 △직급 장기 체류자 등으로 대상자를 못 박고 있다. 일부 언론에도 최근 이런 내용이 보도된 바있다. 구조조정 대상은 30% 수준으로 정하고 있다. 해당 사업부의 경우 먼저 희망 퇴직자를 신청받고 있는데, 이 경우 퇴직금 이외에 2년 치 연봉을 위로금으로 책정했다. 휴대폰 사업부 역시 비슷한 기준으로 인력을 조정하고 있다. 그 폭과 위로금 규모는 LED 사업부와는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측이 정한 구조조정 기준은 그동안 떠돌던 일부 임원과 부장급 외에 그 범위가 책임급 연구원과 고과 하위 등급자, 차·과장 중에서도 오랜 기간 승진을 하지 못한 인원으로까지 확대됐다.

삼성전자 측은 직원들에게 LED 사업의 경우 향후 삼성전자 내에서도 성장 가능성을 높지 않게 보고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려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DS 사업부가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는 반도체 때문인데, 이 사업부에서는 삼성 제품뿐만 아니라 애플을 비롯한 경쟁 기업에 들어가는 반도체도 생산하고 있다. 즉 삼성전자 휴대폰 판매 부진의 영향권 밖에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 대상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해외 사업장에서도 구조조정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중국 사업장의 경우 DS 사업장이 있는 중국 시안(西安)을 제외한 다른 사업장은 주재원 신분으로 있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장기출장자 신청을 받고 있다. 신분이 주재원에서 장기체류자로 바뀌면 현지에서 거주하는 가족들에 대한 지원이 끊긴다. 이럴 경우 자비로 체류비용을 부담하든가, 홀로 현지에 남아야 한다. 중국 공장에 있는 삼성전자 주재원들은 회사로부터 받는 체류비로 현지에서 대부분 최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며 가사도우미 등을 두고 생활하고 있다. 장기출장 신청을 하지 않으면 국내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현지 주재원들의 동요가 적지 않다고 한다.

삼성전자 내부 관계자는 “구조조정 기준을 정한 것뿐만 아니라 정확한 대상자까지 내려온 것으로 알려져 회사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며 “LED 사업의 경우 3~4년 전만해도 미래 수종 사업으로 각광을 받다가 현재는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나갈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며 “(나도) 외부를 통해 사업 전망 등에 대해 나름으로 알아보면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해외 주재원들을 대상으로 장기출장 신청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다른 기업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삼성물산도 합병 후 인력 감축 돌입

최근 제일모직과 합병한 삼성물산도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두 기업의 주력 사업이었던 건설업 부문 인력 감축이 주요 목표다. 삼성 측은 건설업황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입장이다. 10월 중순 직원들을 대상으로 했던 설명회에서는 현재 업황에 대한 회사의 입장과 구조조정 대상 및 보상 내역 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다음은 설명회의 일부분을 요약한 내용이다.

본인의 업무가 추후 지속적으로 활용 가능할지, 비전이 있을지 고민해보시기 바라며 회사에서는 선택의 기회를 드리겠음.
한시적으로 희망퇴직 받겠음. 전 직원이 대상임
희망위로금은 연봉의 약 2배.
학자금 명목으로 초등학교와 대학생 자녀가 있을 경우 1인당 1000만원 추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가시적으로 긍정적 상황이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볼 것.

인사팀에서는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공지를 했다.

1. 신청 대상: 전 직원(단, 신입사원은 2012년 이후 입사자 제외)
2. 신청 시기: 이번 주 금요일 ~ 다음 주토요일(10월 3째 주)
3. 신청 방법: 인사팀 누구나 연락하면, 개별 진행(이메일 접수)
4. 보상: 15년 계약 연봉+위로금
 자녀 1인당 1000만원
경력직의 경우 15년 입사자는 계약
연봉만, 14년 입사자는 입사일자에 따라 계산, 13년 이전 입사자는 기존 근무자와 동일

10년, 20년 장기 근무자는 휴가비+행운의 열쇠 지급

삼성전자나 삼성물산은 현재의 인력 감축이 희망퇴직자를 우선적으로 받는 것일 뿐더러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인력 재배치의 일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 재배치가 전사적으로 동시에 이뤄지고 있고, 그 규모가 예상보다 크다는 점, 그리고 자발적 퇴직을 유도하는 내용임을 감안하면 지금 일련의 움직임은 구조조정으로 봐도 무방하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구조조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시사저널 기자와 만나 “직원들 입장에서 당연히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사업이 잘되는 부서는 인력을 늘리고, 안되는 부서는 줄이는 것은 어느 기업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의 인력 배치는 매해 해오던 것이며, 구조조정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다. 삼성그룹 외부는 물론이고 내부 구성원 중 상당수가 삼성그룹의 인원 감축 및 비용 절감을 구조조정이라고 말하는데도, 삼성 측만 유독 이 단어를 사용하기를 극구 꺼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 측은 별도의 기자간담회를 열어 ‘구조조정이란 것은 없다’고 못 박아 말한 적이 몇 차례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 원인을 꼽는다.

하나는 삼성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된다고 했을 때 그 영향이 대한민국 경제계 전반으로 확대돼, 현 정부의 경제 살리기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경제가 바람 앞의 촛불과 같다고 말한다. 미국 금리 인상, 중국 경제성장률 둔화, 경쟁국 일본의 부활 등은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주요 요인이다. 삼성그룹이 급성장한 최근 20년 사이를 돌아볼 때, 삼성은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이나 경제위기 초기에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왔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를 보자. 다음은 당시 삼성그룹의 구조조정을 다뤘던 지난해 12월 아시아경제 기사의 일부다.

‘1996년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1위, 연평균 17% 성장 등의 성과를 내며 신경영 이후 처음으로 내부에서 ‘위기’라는 말이 사라졌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1위를 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잘나가던 1996년 4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샌디에이고에서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고삐를 좼다. 이회장은 “반도체가 조금 팔려서 이익이 난다 하니까 자기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자만에 빠져 있다”고 질책했다. 샌디에이고 회의 직후 삼성그룹은 향후 3년간 원가 및 경비의 30%를 절감하고 사업 구조 재편, 인적 구조조정 등 비상경영에 돌입해 외환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이재용 부회장, 이건희 회장 때와 다르다”

6월2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삼성은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도 선제적으로 해외법인을 구조조정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시작된 경기 침체가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을 비롯해 중국과 러시아 등 신흥 시장까지 번지자 수익 비중이 낮은 신흥국을 중심으로 효율이 낮은 해외법인을 정리한 바 있다.

이런 전례에 비추어 보았을 때 삼성의 구조조정은 곧 한국 경제의 위기를 의미한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청년 채용 등을 장려하고 있지만 대기업의 분위기는 이와 다르다. 삼성 역시 신규 채용 인원을 2012년 2만6100명에서 올해 1만4000명으로 46%정도 줄였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신규 채용도 줄이고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현직 인력을 줄일 경우, 이는 재계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곧바로 가계가 지갑을 닫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재 내수를 살리려고 애쓰는 정부 정책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삼성그룹 경영 전략이 근본적으로 뒤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리더십과도 연관이 있다. 현재 재계와 언론에서는 이 부회장 리더십의 첫 번째 특징으로 ‘실용주의’를 꼽고 있다. 이는 삼성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삼성그룹 내부에는 이러한 ‘실용주의’가 소극적 경영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누운 후 두 번의 대형 빅딜을 통해 화학과 방산 계열사를 다른 기업에 팔아버렸다. 또한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LED 사업처럼 신수종 사업들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한 삼성그룹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고는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조금 해보다가 안된다 싶으면 그냥 다 팔아버리는 측면이 강하다”며 “경영 전략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공격적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았던 이건희 회장과 다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삼성 계열사 임원 역시 “회사가 어려울 때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구조조정”이라며 “선제적으로 위기에 대응하는 것도 좋지만 조직원들의 고통 분담을 유도하기보다는 너무 손쉽게 칼을 빼든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삼성그룹은 삼성BP화학을 비롯해 지난 해 한화그룹과의 빅딜에서 남겨놓았던 화학계열사를 모두 롯데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10월30일 공시했다. 삼성그룹은 인력 감축 및 계열사 매각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고, 그 강도는 앞으로 더 세질 전망이다. 분명한 것은 삼성그룹의 이 같은 전사적이고 강도높은 구조조정이 2016년 한국 경제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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