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우리 아이 옆에 있다”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5.11.05 14:22
  • 호수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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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올해 7월까지 취업 제한 대상 기관 근무 성범죄자 178명에 달해

지난 8월, 충남 아산의 한 태권도장 관장이 도장에 다니는 10대 여학생들에게 수년간 성폭행과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달은 태권도장 수련회에서 났다. 관장 A씨는 수련회에 참가한 여학생에게 술을 먹인 후 성폭행을 시도하다 다른 여학생의 제지로 실패하자, 자신을 제지한 여학생을 다른 장소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태권도장 사범이 학생들과 수련회 장소를 빠져나와 학부모에게 알리면서 드러난 이 사건은 방어력을 키우기 위해 태권도장에 어린 여학생들을 보내는 학부모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A씨가 각종 수련회나 대회 출전 등 외지에서 숙박하는 일정이 있을 때마다 범행을 저질렀다는 주변 사람들 증언까지 나왔고, 추가 범행 여부에 대해 조사가 이뤄졌다. 현재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태권도장에서 일어난 범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9월에는 또 다른 태권도장 사범인 B씨가 체육관에서 잠든 여중생의 신체 특정 부위를 수차례 만진 일이 발생했다. 여중생이 몸을 비틀며 피하려 했으나 B씨는 이를 무시하고 계속 추행했다.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는 학생들. 학원과 체육시설, 경비실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 시사저널 포토

지난 2012년 아동을 성추행해 처벌을 받았던 체육관장이 또다시 여학생을 성추행했다가 중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C씨는 다시 체육관을 차려 원생을 모집했다. 여자 초등학생에게 ‘도복 띠를 묶어주겠다’며 접근해 두 차례 성추행했고, 피해 학생의 신고로 사건이 드러났다.

집행유예 선고받고 다시 태권도장 열어 성추행

이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들의 취업 제한 대상 기관은 2015년 6월 말 기준으로 52만개에 달한다. 현행법상 유치원, 학교, 학원, 개인과외 교습자, 체육시설, 어린이집, 경비업, 청소년센터 등이 성범죄자 취업 제한 대상 기관으로 올라 있다.

이 가운데 성범죄자가 근무한다는 사실을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등에 신고할 의무가 있는 기관은 26만여 개로 취업 제한 대상 기관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유치원이나 학교, 학원, 어린이집, 장애인 복지시설, 청소년센터는 신고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체육센터나 경비업, 과외 등은 신고 의무가 없다.

현행법상 태권도장은 ‘학원’이 아닌 ‘체육시설’로 분류된다. 교육청이 관리하는 학원은 설립자와 교사 모두가 신원조회를 받도록 하고 있으나, 체육시설은 신원조회를 할 의무도 없다. 체육시설 설립자는 물론이고, 그곳에 취업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태권도장에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 나이 어린 학생들이기 때문에 학원 성격이 강하지만,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당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곧바로 운영이 가능하다.

체육센터와 마찬가지로 과외와 경비업 등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난 2월, 자신이 가르치는 8세 남자아이를 성추행한 30대 남성 이 아무개씨가 구속됐다. 과외 수업 도중 학생의 몸을 만지고 엉덩이를 때리는 등 성추행한 것이다. 또 같은 달, 자신이 가르치는 과외 학생을 수십 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로 60대 정 아무개씨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네 달 동안 28차례에 걸쳐 과외학생을 성추행했는데, 오히려 정씨는 “학생이 내게 과외 수업을 받는 동안 학업 성적이 향상됐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비슷한 수법의 동종 범죄로 집행유예 중인 범죄자였던 것으로도 밝혀졌다. 집행유예 기간 동안 또 다른 과외를 하면서 성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최근엔 아파트 경비원이 8~10세 여자 어린이들을 경비실로 불러 음란 동영상과 사진을 보여주며 아이들을 껴안거나 만진 사건도 발생했다.

경비업·과외 성범죄자 신고 의무 없어

밀폐된 공간에서 학생들과 일대일 수업을 하는 과외나 주민들과 접근성이 큰 경비업의 경우 특히 신고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아동 성폭행 피해 신고센터인 해바라기아동센터 우경희 부소장은 “(취업제한 대상 기관)리스트가 있어도 성범죄자 취업 적발 내용은 재작년부터 계속 나왔다”고 설명했다.

여성가족부는 취업 제한 대상 기관(52만개)과 신고 의무 기관(26만개)의 숫자가 다른 것에 대해 “개인과외 교습자, 가정방문 학습 교사 등 1인 사업장의 경우 신고 의무를 부여할 필요성이 낮고,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와 같이 실제 종사자의 성범죄 발생 사실을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 신고 의무를 부여할 필요성이 작다”는 입장이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장정은 새누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5년 7월까지 취업 제한 대상 기관에서 근무한 성범죄자가 178명에 달한다. 2010년 5명, 2011년 전수조사 당시 46명, 2012년 8명, 2013년 62명, 2014년 47명, 올해 상반기까지는 10명이 적발됐다. 전수조사가 아닌 표본조사에서도 이처럼 적지 않은 인원이 적발된 점을 감안하면 실제론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성범죄자가 학원 등 취업 제한 대상 기관에서 일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 큰 문제는 신고 의무가 있는 기관에도 성범죄자들이 버젓이 취업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고 의무 기관 중 학생들이 학교 외에 가장 많이 접하는 곳은 학원과 교습소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윤재옥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학원·교습소가 성범죄 경력을 조회하지 않고 강사를 고용한 것이 적발돼 과태료를 부과 받은 곳은 2013년 183곳, 2014년 146곳, 2015년 5월까지 59곳이었다. 이 가운데 성범죄자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곳은 2013년 13곳, 2014년 19곳, 2015년 5월까지 2곳이었다. 학원과 교습소가 12만 곳을 넘지만 이 가운데 매년 1%인 1200곳도 점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당 기관에 종사하는 성범죄자들을 신고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교육도 부족하다. 전국적으로 성범죄자 신고 교육을 연간 40여 회 실시하고 있지만 교육을 받아야 할 의무도 없고, 신청자에 한해서만 교육이 실시된다. 윤재옥 의원은 “학원이 강사를 채용할 때 성범죄 경력을 조회하지 않으면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이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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