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검찰의 오락가락 수사 진짜 살인범은 누군가
  • 배상훈 |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프로파일러) (.)
  • 승인 2015.11.05 14:32
  • 호수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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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에 법정에 선 용의자…현장 재구성으로 유죄 입증 가능할까

1997년 4월3일 오후 10시쯤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중필씨가 잔혹하게 살해됐다. 그는 오른쪽 목 부위 세 곳, 가슴 부위 두 곳, 왼쪽 목 부위 네 곳 등 총 아홉 곳이 칼에 찔린 채 피투성이로 발견됐다. 당시 용의자는 미 군속의 아들인 존 아서 패터슨과 동갑내기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당시 18세) 두 명이었다. 그러나 이 둘 모두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4월10일 경찰 현장검증에서 둘은 서로 범인이 상대방이라는 엇갈린 주장을 했다. 수사를 직접 담당한 형사는 이들을 ‘공동정범’으로 판단하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담당 검사는 법의학적 소견과 거짓말탐지기 결과 등을 근거로 4월26일 에드워드 리를 살인죄로, 패터슨을 흉기 소지 혐의와 증거 인멸죄로 기소했다. 당시 부검의가 칼에 찔린 피해자의 목 부위 상처가 위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고, 두 번의 깊은 공격으로 목 가운데까지 관통했으며, 혈관이 잘려나간 게 치명적이었고, 방어흔이 없는 것으로 봐서 범인은 피해자(176cm)보다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을 근거로 했다. 당시 패터슨은 172cm 63kg이었고, 에드워드 리는 180cm 105kg이었다.

‘이태원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존 아서 패터슨이 9월2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되고 있다. ⓒ 연합뉴스

희생자는 있는데 살인자는 없는 사건

그러나 대법원은 이듬해 4월24일 “에드워드가 직접 살해했다고 단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고 단독 범행으로 인정한 데는 위법성이 있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고, 서울고법은 9월30일 파기환송심에서 에드워드 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패터슨은 장기 1년 6개월, 단기 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형집행정지로 1998년 8월15일 석방됐다. 패터슨은 출국정지가 풀린 틈을 타 미국으로 출국했다. 에드워드 리의 무죄가 확정되자 피해자 유족은 1998년 11월9일 패터슨 처벌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내고, 패터슨 출국의 책임이 검찰에 있다며 당시 담당 검사들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했지만 무혐의 결정이 났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2008년 영화 <이태원 살인 사건>이 개봉됐다. 2009년 10월15일 서울중앙지검은 미국 법무부로부터 패터슨이 미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받았으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의 질의가 있기 전까지 법무부는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패터슨 추가 기소나 출국금지 연장 등에 대한 사법 당국의 무관심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검찰은 2011년 12월22일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미국 법원은 2012년 10월22일 범죄인 인도 허가를 결정했으나 패터슨은 이와 별개로 인신보호 청원을 제기했다. 패터슨의 청원은 2014년 6월 1심과 올해 5월 항소심에서 모두 기각됐고, 7월 재심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패터슨은 이 과정에서 범죄인 인도 결정의 집행정지 신청을 하지 않았다. 명백한 패터슨의 실수였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미국 당국과 협의 끝에 패터슨 송환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패터슨은 올해 9월23일 국내로 송환됐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패터슨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0월8일 첫 공판에서 자신은 무고하다며 에드워드 리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패터슨의 송환으로 일단 사건이 정리될 것 같던 조중필씨 살해 사건이 오히려 더 논란에 휩싸인 듯하다. 희생자는 있지만 살인자는 없는 사건. 밀실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둘 중 하나는 분명 범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그렇게 단순한 사건만은 아닌 듯하다. 이 사건을 다루는 국가의 사법 과정이 이미 다른 길로 벗어날 가능성을 추정하게 만든다. 즉 그동안의 잘못된 과정을 통해 에드워드 리는 이미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아 ‘일사부재리’에 해당하고, 패터슨이 설령 진범이라 하더라도 증거가 불충분해 국가의 유죄 입증 책임이 필요하다. 최악의 경우 두 사람 모두 무죄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는 이유다.

‘부검 소견’ 방패막이 삼은 검찰

그렇다면 이 사건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사건과 수사 진행 과정을 되짚어보면서 하나하나 따져보자. 당시 담당 경찰과 미군 범죄수사대(CID)는 패터슨을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했다. 담당 경찰은 적어도 공동정범으로 송치했다. 그런데 검찰은 반대되는 많은 증거와 진술을 무시하고 에드워드 리를 진범으로 여기고 수사했다. 일반적으로 수사기관이 예단해 수사를 진행하다 보면 그 외의 다른 증거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는 사이 진범은 증거를 없애기 바쁘다. 나중에 진범을 잡아도 증거가 없거나 증거인멸죄로밖에 처리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문제는 왜 진범일 가능성이 작은 에드워드 리를 범인으로 단정했는가다. 경찰이나 CID도 다르게 본 증거들을 담당 검사만이 그렇게 처리한 게 이 사건이 꼬이게 된 결정적인 시점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의 신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미 군속의 아들이었고 후자는 재미교포의 아들이었다. 전자를 기소할 경우 소파(SOFA·주한미군에 대한 한·미 행정협정)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고, 그것은 곧 주한미군 범죄와 관련한 반미 감정으로 확산될 소지가 있다. CID가 이 사건에 신속하게 개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후자의 경우 단순한 재미교포의 아들이기에 전자와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실제로 담당 검사가 소파 문제 때문에 패터슨이 아닌 에드워드 리를 기소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많은 다른 증거와 진술들이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굳이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에드워드 리를 기소한 이유를 지금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다. 만약 필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검찰 입장에서 문제 해결은 간단해진다. 재미교포 한 명이 내국인을 살해한 단순한 살인 사건인 것이다. 만약 무리하게라도 기소를 해서 유죄를 받으면 좋고 무죄를 받아도 검찰로 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

그래도 무작정 에드워드 리를 범인으로 몰아붙이기는 어려웠는지 부검의의 부검 소견을 방패막이로 삼았다. 즉 조중필씨보다 키가 큰 사람에 의한 살인이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부검의는 위에서 아래로 나타난 상처를 해석하면서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부검 소견이 키가 크고 몸집이 큰 사람으로 둔갑했고, 이에 따라 다른 현장 증거와 진술은 무시됐다. 에드워드 리의 대법원 재판에서 조중필씨가 소변을 보면서 아래로 구부정한 자세로 있었을 가능성이나 가방을 메고 있었을 가능성 등이 제기되면서 검찰의 주장은 무참하게 깨져버렸다.

핵심은 부검 소견을 검사가 다른 가능성에 대한 검토 없이 자의적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불명확한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더해져서 마치 코끼리 뒷다리 잡듯이 기소가 이뤄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법정에서도 현실에서도 여러 가지 상황 조건이 충족돼야 인정받는다. 하물며 18년 전 아직 거짓말탐지기 기술이 미약했던 당시에야 오죽했을까. 그런데도 그 불명확한 결과가 유죄를 예단하는 근거가 됐다. 왜 그랬을까. 다른 정치적인 고려 없이 사건만 봤을 경우 분명 패터슨이 기소돼야 하고 적어도 공동정범 정도로는 기소돼야 마땅했다.

미국인 존 아서 패터슨의 첫 공판준비기일인 10월8일 처음 범인으로 지목됐던 에드워드 리의 아버지가 재판정으로 들어가기 전에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현장 상황 입증 안 될 경우 다음 카드는?

그다음 우리 검찰 당국의 무성의와 무관심 등으로 점철된 오욕의 시간이 지속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필자는 이들이 왜 그토록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지적하고 싶다. 대다수 수사 사법기관의 경우 과거의 사건, 즉 선배가 한 사건을 다시 꺼내거나 뒤엎는 것에 대해 심각한 부담을 가진다. 만약 그 사건을 다시 뒤집으려 하면 그 사건의 담당자나 결재 라인에 있었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조직의 고위직이거나 고위직이었던 사람들이고, 만약 그 사건 처리에서 잘못이 드러나면 경력에 흠이 갈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과거 사건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뒤집히지 않는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시끄럽게 떠들어야 들춰보는 정도다. 이 사건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일정 수준에서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수정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경우 검찰이 기소독점권을 가지고 있어서 검찰이 잘못한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변경이 매우 어렵다. 겨우 재정신청 정도나 재심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그것도 사실 무명무실하다. 물론 과거 ‘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유사한 주장이기도 하다. 즉, 특정한 경우 검찰을 대신해 수사하고 기소할 부서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사건의 경우에도 수사와 기소를 잘못한 검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고, 검찰에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둘 다 무죄가 된다고 해도 유족이 취할 조치는 국가에 대한 민사소송뿐이다. 이는 불합리하다. 프랑스식으로 치안판사와 같은 제도도 고려할 만하고 법원의 재정신청 범위를 확대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현재 이 사건의 재판은 검찰의 신청에 따라 에드워드 리가 증인으로 출석하고, 재판부는 가건물을 제작해 당시 상황을 검증한다고 한다. 또한 재판부는 패터슨이나 에드워드 리의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의 진술을 통해 당시 벌어진 상황을 최대한 재현할 예정이다. 그 밖에 당시 수사 검사를 포함해 검찰과 변호인이 신청한 증인은 총 31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당시 수사 검사 등 몇몇은 증인 신문이 필요한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려 채택 여부가 보류됐다. 해당 사건을 처음 조사한 CID 수사관과 혈흔 분석가, 도검 전문가, 현장 사진 촬영 사진가 등 25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초반에 변호인에 의해 문제가 제기됐던 공소시효와 일사부재리 문제도 다시 심리해 결론을 내기로 했다.

문제는 결국 모든 것이 진술 중심이고 또한 최종적으로는 현장 재구성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현장 재구성을 통해 유죄 입증이 가능할까. 합리적인 의심 없이 패터슨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을까. 진술의 경우 에드워드 리의 재판에서와 마찬가지로 엇갈릴 가능성이 크다. 진술의 신빙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장 재구성으로 답을 도출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구도, 즉 에드워드 리가 아니면 패터슨이라는 구도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지금 검찰의 판단은 에드워드 리가 조중필씨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으므로 그의 진술을 근거로 현장을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실제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면 현장에 모순이 생길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입증할 책임은 국가, 즉 검찰이 지는 것이다. 패터슨은 그 입증의 모순점만 찾으면 된다. 마치 18년 전 에드워드 리의 재판이 데자뷰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검찰의 주장처럼 현장 상황이 입증되지 않을 경우 그다음 카드는 무엇인가. 진정 간절한 마음으로 검찰의 분발을 촉구한다. 18년 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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