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결핍을 메울 무언가를 지닌 그해
  • 정덕현 | 대중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1.0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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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는 왜 ‘1988년’을 택했을까

tvN <응답하라 1997>이 방영됐을 때 그 1997년의 의미는 명확했다. 1990년대를 관통하는 음악과 팬덤 문화가 있고, 인터넷 문화가 태동하던 시기로서의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공존점을 지녔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의미는 1997년 터진 IMF 외환위기라는 사건이었다. 복고가 현재의 어려움을 살짝 벗어나 과거 좋았던 시절을 돌아보는 것이라면,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 상황은 정확히 지금 현재의 대중이 바라보고 싶은 시점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응답하라>는 1997년을 소환했다.

경제적 팽창, 도시화의 기점이 된 1988년

그렇다면 이번에 새롭게 방영되는 <응답하라 1988>에서 그 1988년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88서울올림픽일 것이다. 커다란 종합운동장 잔디밭 위로 굴렁쇠를 밀며 뛰어가는 한 아이가 떠오를 것이고, 마스코트였던 호돌이도 기억에 삼삼할 것이다. 최근 JTBC <비정상회담>에서 종종 흘러나오는 <손에 손잡고>라는 노래가 귓가에 여전히 쟁쟁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올림픽 풍경만 있는 게 아니다. 1987년 상황을 떠올려보라. 당시 거리에서는 민주화운동이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6월10일을 기점으로 민주화운동은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6·29 선언으로 이어졌다. 대통령 직선제가 통과되었고, 국민의 투표에 의한 대통령 선거가 그해 12월16일에 치러지게 되었다. 하지만 군부 체제를 뒤집고 정권 교체를 하려 했던 선거는 당시 김대중과 김영삼의 단일화가 결렬되면서 실패하게 되었고, 결국 집권 여당인 민정당 후보였던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즉 1987년은 그해까지 치열했던 정치적인 이슈들이 한순간에 소멸되고 점차적으로 1990년대 경제적 이슈가 전면으로 나서게 되는 기점이었다. 1987년 상황이 사라지고 이제는 경제라는 틀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손에 손잡고>가 이어지던 당대를 표상하는 사건이 88올림픽이었다. 1988년은 바로 전해와 완전히 대비되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었다.

1988년부터 1997년까지 10년간 기업들은 줄기차게 몸을 키웠고, ‘세계 경영’을 부르짖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내실보다 팽창을 추구했던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고 나면 도처에 아파트들이 세워지던 그 시작점으로서의 1988년을 굳이 <응답하라>가 선택한 것은 당대의 경제적 팽창이나 도시화의 문제, 나아가 아날로그가 점점 사라지고 디지털로 나아가는 그 흐름에서 우리가 서서히 잃어가게 된 것들을 반추하기 위함이다.

신원호 PD는 이미 <응답하라 1988>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가족’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 드라마의 소개란에는 ‘쌍팔년도 쌍문동, 한 골목 다섯 가족의 왁자지껄 코믹 가족극’이라고 적혀 있다. 한 골목 다섯 가족. 지금은 발견하기 힘든 풍경이 되어버렸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풍경은 그리 낯선 게 아니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에 놓인 골목은 좀 더 확장된 개념의 가족을 가능하게 했던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함께 놀며 자라고 부모들도 ‘이웃사촌’이라는 표현 그대로 고향을 떠나 새로 정착한 그곳에서 또 하나의 가족을 꾸리며 살아갔다.

1986년부터 1994년까지 방영됐던 MBC <한 지붕 세 가족>은 그런 당대의 분위기를 잘 보여줬던 드라마다. 일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방영되던 그 드라마 속에서 우리가 발견했던건 이웃이지만 가족 같은 그들의 소박하고 정이 넘치는 삶이다. 순돌이 아빠(임현식)와 만수 아버지(최주봉)는 지금도 이 배우들의 캐릭터로 불릴 정도로 우리네 기억에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88올림픽이라는 국제적인 행사가 치러지면서 이런 다세대주택이나 서울의 언덕배기를 가득 메우고 있던 달동네의 주택들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도시 외관상 좋지 않다는 논리로 철거되고 그 자리에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응답하라 1988>은 그래도 아직은 남아 있던 이웃사촌의 마지막 세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셈이다. 현재 도시화의 끝단을 살아가는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이웃과 가족의 모습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것들이 그나마 남아 있는 지점

1988년은 음악적으로도 의미 있는 해다. 1990년대 대형 기획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들과는 사뭇 다른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이 점령했던 때다.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가 1990년대 음악을 향수했다면, <응답하라 1988>은 1980년대의 음악을 현재로 다시 끌어낸다. 거기에는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았던 무한궤도의 신해철이 있고, 1984년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으로 연기는 물론이고 음악까지 선보였던 김수철이 있다. <강변가요제>를 통해 ‘담다디’ 열풍을 만들었던 이상은이나 역시 같은 가요제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던 이선희, <첫눈이 온다구요>로 그해 겨울을 뜨겁게 했던 이정석도 있다. 또 고(故) 이영훈을 만나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완성시켰던 이문세와, 아까운 나이에 타계했던 김현식같은 가객은 물론이고, 천재 아티스트 유재하, 김광석을 배출했던 동물원 같은 싱어송라이터들이 무수히 많다. 스스로 작사·작곡·노래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던 싱어송라이터들의 르네상스는 1980년대였다.

복고의 지점들은 현재의 결핍을 드러낸다. 즉 복고가 과거를 들여다보는 건 현재 비어 있는 무언가가 그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힘겨울 때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며 “그때가 참 좋았는데…”라고 말하는 건 아마도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따라서 신원호 PD의 <응답하라> 시리즈가 지금껏 대중들에게 어떤 호응을 얻어온 건 과거의 그 지점만큼 현재의 결핍을 잘 읽어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1988년에는 2015년을 사는 우리에게는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막연했지만 그래도 희망에 부풀었던 경제적 성장에 대한 대책 없는 낙관론이기도 하고, 아파트가 사람들을 나눠놓고 구획하기 전의 가족 같은 관계를 꾸려나갔던 삶이기도 하며, 모든 것이 대자본에 의해 기획되고 심지어 예술조차 상업적 기반 위에 올라가게 된 현실이 잃어버린 진정한 예술혼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1987년의 민주화운동 이후, 1988년부터 1997년까지 한껏 부풀었던 그 팽창의 과정들은 사실 우리가 갖고 있던 많은 것을 잃어가는 과정이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1988년은 그 잃어버린 것들이 그나마 남아 있던 지점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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