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길주의 黙黙不答] 제발 떠나라
  • 윤길주 편집위원 (ykj77@sisabiz.com)
  • 승인 2015.11.13 16:39
  • 호수 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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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장관들을 보면 장기판의 졸 같다. 언제 그 자리에 앉았나 했더니 이마에 ‘장관 경력’ 하나 달고 어느 날 그만 둔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뼈 빠지게 고생해서 낸 세금 자기 동네 퍼주기 바쁘다. 이런 사람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게 ‘민생’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건 국민을 위한 게 아니라 ‘셀프 민생’이다.

장관들이 줄사표를 내고 있다. 17개 부처 중 7명이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것이란 얘기가 떠돈다. 이 사람들 이름 일일이 거명하는 것조차 괜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몇몇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그들을 통해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이란 자리가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그는 지난 8일 뜬금없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일요일이라 모두가 좀 편하게 있고 싶었는데 ‘국민 안전’을 책임진 사람이 기자회견을 하겠다니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다. 근데 이거였다. “근래 저의 거취와 관련해 여러 의견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국정 운영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이 시점에서 사의를 밝히는 것이 옳다고 결정했다.”

누가 그의 거취에 대해 궁금해 한 적이 있나. 기자들이 ‘총선에 출마하려는 거냐’고 묻자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했다. 그럼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대통령에게 물어보란 말인가. 장기판의 졸임을 자인한 꼴이다.  

그의 고향 사랑은 남달랐다. 사표를 내기 직전 고향 경주에 특별교부세 38억원을 내려 보냈다. 장관으로 있는 1년 반 동안 100억원 가까운 돈을 고향에 지원했다. 국민 혈세를 주머니 쌈짓돈처럼 퍼준 것이다. 새누리당 연찬회에선 ‘총선 필승’ 건배사로 물의를 일으켰다. 선거를 관리하는 주무 장관이 이렇게 한심한 짓을 해놓고는 출마하겠고 한다. 일반의 상식으로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경제팀 수장인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도 자신의 지역구인 경북 경산에서 출마할 게 확실해 보인다. 그 또한 나랏돈으로 고향에 두둑하게 인심을 썼다. 그가 사령탑으로 있는 기획재정부는 사회간접자본 예산을 국토교통부가 요구한 것보다 대구는 3000억원, 경북은 2500억원 증액 배정했다. 반면 충남, 전북 등은 예산이 줄었다. 그 동네가 이른바 ‘친박’의 텃밭인지라 누구를 위한 퍼주기인지 말 안 해도 다 안다.

이정현 의원은 새누리당 불모지인 순천․곡성에서 당선돼 일약 ‘전국구’가 됐다. 그의 선거 공약은 고향에 대한 ‘예산폭탄’이다. 그는 올해 국회 예결특위 예산조정소위 17인에 포함됐다. 그가 나랏돈을 얼마나 빼서 고향에 안겨줄지 궁금하다. 거기엔 우리가 낸 세금도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산은 정해져 있어 어느 한 곳에서 많이 가져가면 다른 곳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당사자는 이걸 자랑하고 소속 당에서는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추켜세운다. 국민을 장기판의 졸로 보는 것이다.

예산은 지역에 골고루, 공평하게 배분돼야 한다. 나랏일을 하는 ‘머슴’들은 이 돈을 아껴 써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특정한 곳에 편중되지 않게 해야 한다. 이건 공직자와 국가의 기본이다. 이런 기본이 헝클어진 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힘 좀 쓴다는 자들이 나라 곳간을 마음대로 열고 닫으며 국민을 ‘봉’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장관이란 자리는 엄중하다. 마음이 뽕밭에 가 있는 사람은 빨리 떠나라.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며 장관 자리를 경력관리용 정도로 여기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겨우 직장이라고 잡은 게 ‘알바’라서 한숨 짓고 있다. 이 와중에 나라 살림살이는 뒷전에 밀쳐 놓고 밤낮으로 어디에 출마할지, 계산기만 두들기는 이들이 있다. 빨리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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