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의 칼날, 부영 앞에선 왜 무뎌질까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11.18 11:01
  • 호수 136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영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대해 조사도 하지 않고 면죄부 준 공정위

부영그룹이 자사 이중근 회장의 친인척 회사에 대량의 일감을 몰아준 사실을 놓고 재계와 공정거래위원회 내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부영그룹의 일감몰아주기 의혹은 시사저널과 뉴시스 등을 통해 제기된 바 있다. 언론을 통해 문제가 불거지자 새누리당 소속 A 의원실에서 부영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측에 질의서를 보냈다. 이에 공정위 측은 ‘위법행위소지가 있다고 보여지나, 그렇다고 해서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식의 모호한 답변서를 의원실에 제출했다.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부영 측에 유리한 결론을 내버린 셈이다. 공정위는 대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 의혹이 제기될 경우 통상적으로 조사를 진행한 후 시정조치를 하거나 검찰에 고발한다. 공정위는 부영 건에 대해서는 해당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위법이지만, 공정거래법 위반은 아니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 부영그룹 본사 © 시사저널 사진자료

의원실 및 관련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부영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이중근 회장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H기업에 총 200억원가량의 하청을 줬다. 이 회사는 경비업과 청소용역업을 주로 하는 업체로 이회장 친누나의 아들인 유 아무개씨가 대표이사로, 누나가 감사로 등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회사 지분 내역도 유씨가 80%를 가지고 있으며, 나머지 지분은 유씨의 아내와 자녀들이 나눠 갖고 있다. 회사 사무실도 전남 광양에 있는 부영아파트 내 상가에 위치하고 있다. 회사가 설립된 2006년에는 매출액이 5억원에 불과했다가 이듬 해에 6배가 넘는 32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2008년에는 40억원, 2009년에는 60억원까지 매출이 늘어났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60억원을 상회하다가 올해는 10월까지만 벌써 72억원을 넘어섰다. 영업이익은 2012년 6억1500만원, 2013년 6억8900만원, 2014년 13억6000만원이다. 실적의 대부분이 부영그룹 측에서 발주한 물량을 받아 올렸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건설업황이 바닥을 쳤던 때도 H사의 매출은 계속 늘어났다. 이는 건설경기 위축에도 불구하고 건설사 중 홀로 매출이 늘어난 부영그룹의 성장세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A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대기업이 검증도 되지 않은 신생회사에 하청을 몰아주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라며 “회사 설립연도나 지분 관계, 매출액 등을 봤을 때 부영의 일감을 받기 위해 설립된 회사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오너와 특수관계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특수관계인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것은 대중들도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법적 요소가 있다면 이는 대중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 부영그룹 역시 H사에 하청을 줄 때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통상적으로 기업이 경쟁입찰을 통해 하청을 줄 때는 응찰에 참여한 업체 측으로부터 견적서를 받아보고 가격과 수행력 등을 고려해 업체를 선정한다. 입찰 과정에서 경쟁업체가 써낸 가격은 상대측에 알려지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부영그룹 안팎에서는 부영 측이 경쟁업체로부터 사전에 가격 정보를 받아 이를 H사에 흘려줬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부영 측은 사전에 이메일로 예비 견적서를 받은 후 여기서 얻은 정보를 H사 측에 흘려주고, H사는 본입찰 때 이를 고려한 가격을 써냈다고 한다. 당연히 경쟁업체들이 입찰에서 미끄러지는 횟수가 잦아졌고, 부영의 입찰 방식에 대해 경쟁업체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부영그룹 담당직원과 경쟁업체 관계자들의 통화내용이 담긴 음성파일을 들어보면, 이러한 입찰 방식이 윗선에서 내려온 것임을 암시하는 발언이 나와 있다. 부영 측 관계자는 경쟁업체 직원에게 “내가 결정한 것은 아니니까…”라며 말끝을 흐리고 있다. 경쟁업체 직원이 “다른 업체한테 2개 주고 H사에는 10개 주는 식이냐”며 따져 묻자, 부영 직원은 어떠한 답변도 하지 않았다. 경쟁업체의 주장대로라면 부영 측은 회장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경쟁업체로부터 받은 정보를 흘려주는 ‘꼼수’를 쓴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측도 이러한 의혹이 실정법을 위반한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가 국회 측에 보낸 답변서를 보면 부영 측의 행위는 실정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답변서에는 “공정거래법 제23조의 제1항 7호가 금지하는 부당한 지원행위 중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란,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와 정상가격에 비해 상당히 낮거나 높은 대가로 거래하여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의미한다”며 “부영 측이 친인척 회사에 다른 응찰자의 입찰정보를 제공하였다면 이는 형법상 입찰방해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보여진다”고 돼 있다. 형법 제315조 경매 및 입찰의 방해 조항은 ‘위계, 위력 기타의 방법으로 경매 또는 입찰의 공정을 해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부영에 공정위 출신이 임원으로 가 있어”

과거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했던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왼쪽). © 시사저널 이종현

문제는 공정위가 실정법을 위반했을 소지가 있다고 보면서도 이에 대한 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답변서를 통해 “입찰정보를 부당하게 제공하였다는 사실만으로 부영주택이 관련 친인척 회사를 위해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해명했다. 즉 부영 측의 행위가 형법에 비춰봐서는 위법이지만, 공정거래법을 위반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공정위 측 주장의 요지다.

공정위 측의 이러한 애매한 입장에 대해 공정위 내부에서도 의아하게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입찰 정보를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메일이나 녹취록 등이 다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사에 나서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해명대로 입찰 정보를 부당하게 제공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유리한 조건에 거래를 했는지 여부는 공정위 조사에서 판단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이 아닌 형법에 위반되는 사안이라고 판단되면 조사 후 검찰에 고발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는 A 의원실 보좌관 역시 “구두로 답변을 요청했을 때는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 대한 지원 규정에 어긋난다’고 답했으나, 서면으로 답변서를 보냈을 때는 형법위반은 맞지만 공정위에서 할 일은 아니라는 듯이 면피성 해명을 보내왔다”고 주장했다.

공정위 측의 이러한 소극적 움직임의 배경에는 부영 측이 공정위 출신을 고문으로 영입했기 때문이라는 시선이 적지 않다. 앞서 언급했던 보좌관은 “현재 부영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생길 당시부터 지난해까지 약관 심사 업무를 담당했던 고위공직자 출신이 임원으로 가 있다”며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공정위가 이처럼 소극적인 것을 보면 부영 측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부영 “H사에 대한 지분도, 지배력도 없다”

이에 대해 부영그룹 측은 “부영은 H사에 대한 지분이 없고, 어떠한 지배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며 “H사는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독립 경영자로 인정되는 요건에 해당되고 있기 때문에 특수관계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부영 측은 또한 “부영의 경비용역 계약은 입찰을 통해 다수의 경비용역업체에서 견적서를 받아 최저가로 입찰한 업체와 경비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있어, 특정 업체에 사전에 정보를 준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며 “H사를 포함해 다수의 업체와 경비용역 계약을 체결하여 운영하고 있고 H사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업체도 아니다”고 반박했다.

부영 측은 “당사(부영)에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임원은 없으며, 출신 임원 때문에 공정한 조사에 영향력을 끼친다는 의혹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확인한 결과, 부영 측의 해명과는 다르게 현재 부영에는 판사 출신이면서 경제기획원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17년간 약관심사자문위원회 위원과 위원장을 역임한 J씨가 고문으로 재직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지난해 약관심사자문위원장을 그만뒀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J씨는 “17여 년 동안 약관심사 업무를 하면서 다양한 거래 분야 약관 조항의 불공정성 여부를 심사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약관의 제·개정 작업에 참여했다”며 “건전한 거래질서를 구축하고 소비자 권익 향상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게다가 그는 공정위 약관심사자문위원장을 역임하는 동안에도 부영그룹의 고문을 함께 맡기도 했으며, 역시 약관심사자문위원장이던 2009년에는 부영의 상임감사에 선임되기도 했다.

부영 측 관계자는 기자가 “고문은 상근임원이 아니기 때문에 공정위 출신은 부영에 없다고 답변한 것이냐”고 반문하자 “약관심사자문위원이라는 것이 비상임직이니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 관계자는 “공정위 관련 부분은 그쪽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