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도요타의 가속 비결은 ‘기술력’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5.11.19 19:39
  • 호수 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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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고 흑자 낸 도요타자동차 과거 엔고 불황 때도 ‘기술만이 승리한다’는 원칙 고수

 

일본 열도가 들썩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도요타자동차가 지난 11월5일 2015회계연도 상반기(4~9월) 실적을 발표했다. 내놓은 수치는 놀라웠다. 순이익 1조2581억 엔(약 11조7900억원)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한 수치다. 반기 순익 기준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매출도 14조914억 엔(약 132조400억원)으로 9%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조5834억 엔(약 14조8400억원)으로 무려 17%나 늘어났다.

국내 언론에서는 이를 비중 있게 다뤘다. 도요타 관계자들의 웃음 옆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을 나란히 붙이기도 했다. 도요타로 인해 ‘아베노믹스’가 더욱 힘을 받게 된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금의 불편한 한·일 관계와 오버랩되는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한국의 시선에는 부러움과 질투가 뒤섞여 있다. 때마침 국내를 대표하는 현대·기아차의 같은 기간 실적이 나오기도 했다. 현대·기아차의 순이익은 4조2900억원이었다.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15% 줄어든 수치다. 도요타와는 무려 7조5000억원 차로 벌어졌다.<65면 그래프 참조>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11월6일 인공지능(AI) 개발을 위해 내년 1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 epa 연합

같은 기간 현대·기아차 실적은 하락세   

도요타가 항상 순탄한 길을 달려온 것은 아니었다. 도요타의 연도별 영업이익 현황을 보면 2008년 2조2700억 엔이었던 게, 2009년 마이너스 4610억 엔으로 급락했다. 이후 2010년 1470억 엔, 2011년 4680억 엔, 2012년 3560억 엔 등 좀처럼 천억 엔대 단위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2013년 들어서 비로소 1조3210억 엔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2014년 2조2920억 엔을 기록했고, 2015년 3월에 2조7505억 엔을 올렸다. 도요타의 영업이익은 2008년 최고액을 기록한 이래 2009년 리먼브러더스 쇼크와 엔고(高)를 거치면서 마이너스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2010년 북미 시장에서의 고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사태, 2012년 태국의 대홍수로 인해 태국의 도요타 공장 피해 및 엔고 등의 영향으로 4년간 영업이익이 격감했다. ‘이제 도요타자동차 성장에 한계가 왔나’라는 의혹이 일기 시작할 정도였다. 하지만 2013년 1조3210억 엔의 실적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특히 중·일 관계 악화로 중국에서 일본 제품의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도요타자동차도 그 영향을 받은 가운데 이뤄낸 성과였다.

도요타가 2013년 이래 비약적인 성장을 한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이 아베노믹스의 엔저(低) 정책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실제 지난해의 2조2920억 엔 영업이익 중 엔저 효과로 얻은 부분을 대략 9000억 엔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민주당 정권에서 자민당 정권으로 교체된 시점이 2012년 12월이다. 아베노믹스의 엔저 정책은 2013년부터 시작되었다. 아베 정부는 아베노믹스의 정책적 성과를 국민들에게 빠르게 체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주식시장을 띄우고,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한 대기업 중심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시켜 영업이익을 늘리고 이를 급여 상승으로 이어지게 해서 소비를 진작시키고자 노력했다. 매스컴 또한 아베노믹스를 선전하는 데 앞장섰다. 실제 도요타를 비롯해 닛산 등 일본 자동차업계의 이익에 아베노믹스에 의한 엔저 효과가 일부 반영된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2013년 3월 결산에서 1조3210억 엔의 영업이익을 달성한 것은 단순히 엔저 효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아베 정부가 공식적으로 2012년 12월26일 출범했고, 자동차업계의 2013년도 결산은 대부분 그 이전에 발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리먼 쇼크 이전에는 투자 확대에 따른 고정비 증가가 판매 이익을 상쇄해 남은 것은 엔저 효과뿐이었다. 당시 이지치 다카히코(伊地知隆彦) 도요타자동차 사장은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고정비를 줄이고 대당 영업이익을 늘리는 방안을 연구해왔다. 2008년 이래 엔고 상태에서 도요타자동차는 1달러당 79엔에 이르는 초엔고 상황에서도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해왔다. 따라서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개선된 이유를 단지 엔저 정책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일본 택시기사들 “도요타 최대 강점은 엔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대 최고의 영업이익을 달성한 요인은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지속적으로 실시해온 비용 삭감 노력이다. 엔고 과정에서 수천억 엔 규모의 비용 삭감을 추진해왔다. 2013년도의 경우 원가 개선 노력으로 2900억 엔을 줄였다. 2008년부터 꾸준하게 지속해온 비용 절감 노력이 엔저 효과를 업고 이익을 더 크게 창출한 것이다. 두 번째는 신흥국에서의 판매가 늘었다는 점이다. 과거 최고의 이익이 발생했던 2008년도의 판매대수는 943만대였는데, 2014년도에 1013만대를 판매해 처음으로 1000만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8년도에 비해 북미와 유럽에서의 판매대수는 줄었지만, 아시아·중남미·중동·오세아니아·아프리카에서의 판매가 늘어난 결과였다. 그리고 일본 국내 시장의 경우 다른 경쟁 회사들에 비해 판매회사를 많이 두고 있다는 점도 이익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모델별로 판매망을 구축해 판매인들에게 경쟁을 불러일으킨 마케팅 전략도 판매 실적을 끌어올린 요인이다. 이는 과거 마쓰시타전기가 전국에 대리점을 2만개 정도 두는 판매 전략으로 성공한 예와 비슷하다.

세 번째는 상품 기획 능력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도요타의 시련기였다. 일본 국내에서 연 10만대씩 판매해온 ‘크라운’ 자동차의 판매대수는 2만~3만대씩 감소했다. 크라운의 경우 중년의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젊은 층도 구매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바꿔 3주 만에 1만9000대를 판매하며 히트시켰다. 네 번째는 기술 개발이다. 도요타자동차가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으며 팔리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역시 지속적인 기술 개발에 있다. 연비와 안전성 면에서 지난 7년간 크게 개선되었다. 도요타자동차가 독점하고 있는 하이브리드카의 성능도 크게 좋아졌다. 도요타자동차는 과거 비록 실적이 좋지 않더라도 연구·개발 부문에는 예산을 줄이지 않고 끊임없이 투자해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2012년 태국 대홍수로 태국의 도요타 공장의 피해가 컸지만, 그나마 적자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기술 개발의 결과로 일본 국내에서 인기가 있는 소형 하이브리드카 ‘아쿠아’ ‘프리우스’의 판매 실적이 향상됐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성능에 대해 가장 민감한 집단은 영업용 택시 운전기사들이다. 일본에서 택시를 타고 기사들에게 물어보면, 기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많은 이가 공통적으로 꼽는 도요타자동차의 가장 큰 장점은 ‘엔진’이다. 한 기사는 유명한 닛산차가 5년 정도 문제가 없다면, 도요타자동차는 10년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2배 정도의 차이, 다시 말해 도요타자동차의 엔진 성능이 다른 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는 말이다. 지금은 생산이 중단되었지만, 1970년대 만들어져 지난 31년간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중형차 ‘카리나’를 이용해온 필자의 지인인 일본의 한 영업컨설팅 회사 대표는 “과거 18년간 이 차를 이용했는데 고장으로 불편했던 기억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1월15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도요타자동차의 새 상업용 연료전지차 시승식에서 도요다 아키오 사장으로부터 대형 자동차 키 모형을 기념선물로 받고 있다. ⓒ AP 연합

협력회사 및 노사 간 상생 관계 유지도 강점

이렇듯 도요타자동차가 사상 최고의 실적을 기록한 데는 앞서 지적한 대로 한두 가지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역시 기술력이다. ‘기술만이 이긴다’라는 도요타의 철학이 지난 6년간의 고전을 극복하고 최고의 실적을 달성한 비결이다. 1990년 이후 도요타의 생산 방식을 배우기 위해 일본 국내외에서 많은 기업이 도요타 연구를 하고 도요타자동차의 현장을 찾았다. 대다수 일본 기업들이 현재의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KAIZEN(가이젠: 자기비평을 통한 향상을 추구한다는 의미의 일본어)이라고 하는 보통명사를 만들 정도로 기업의 변화를 추구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도요타자동차와 같은 절대강자는 되지 못했다. 도요타자동차는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엎고 뛰어넘는 혁신을 추구해오고 있다.

예를 들면 불량률 0.5%라는, 상식을 초월하는 목표를 세워 그 목표에 다가가는 콘셉트를 추구함으로써 해결책을 찾아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엔고로 고전하던 시절 달러당 79엔이라는 초고환율 속에서도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혁신 또한 도요타식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곤란을 느끼지 않는 한 지혜를 짜내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도요타자동차는 극한 목표를 세우고 지혜를 짜내지 않으면 안 되는 혁신의 가이젠 문화를 정착시켜오고 있다. 이런 기업의 문화가 지난 6~7년간 대내외 위기를 극복하고 최고의 실적을 거두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된 것이다.

도요타자동차의 중요한 문화 중 또 다른 하나는 ‘일에 대한 철학’이다. 첫째는 사람에게 듣지 않고 물건에 듣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물건이라 함은 현장, 상품, 제품을 의미한다. 사람의 말을 신뢰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사람이란 뭔가 문제가 발생하면 본능적으로 자기방어를 하게 되고, 보고가 늦어지게 되며, 왜곡할 수 있기에 현장 확인이 중요하다는 문화다. 두 번째는 사람을 책망하지 말고 구조와 시스템을 탓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문화다. 문제가 발생하면 사람을 책망하게 되는 경우 ‘주의를 해라’ ‘더 열심히 해라’는 식의 감정적 대응을 하게 되어 재발 방지력이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구조나 시스템 관점에서 보면 좀 더 근본적으로 대책을 강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교지(巧遲: 솜씨는 좋으나 속도가 느림)보다는 차라리 졸속(拙速)이 낫다는 정신이다. 즉 생각은 좋지만 실행하는 데 마냥 시간이 걸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다소 부족하더라도 빨리 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도요타자동차는 후자를 선호하는 문화다. 

이외에도 도요타자동차의 기술력을 최고로 유지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협력업체들과의 상생 관계다. 아이치 현의 도요타 시는 도요타 협력업체들이 중심을 이루는 도시다. 많은 중소기업이 이곳에서 도요타자동차와 상생하면서 질 좋은 부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노하우를 상호 활용하고 있다. 노사 간의 상생 관계를 잘 유지해가는 게 이익 창출에 중요하다는 점을 도요타자동차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 환율이라고 하는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기대치에 불과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도요타자동차, 나아가 일본 제조업계는 기술 개발과 제품을 만드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이래 지난 20년 이상의 불황을 이겨내고 부활하는 일본 기업의 원천은 기술 최고지상주의와 연구·개발이라는 점을 우리나라 자동차업계 및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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