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9, 0.336, 0.444'의 선을 넘어라
  • 배지헌 | 베이스볼랩 운영자 (.)
  • 승인 2015.11.19 19:48
  • 호수 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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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거포’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1루수 합격 기준

‘국민 거포’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11월10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넥센 히어로즈 박병호(29)의 비공개 경쟁 입찰에서 미네소타 트윈스가 최고액인 1285만 달러(약 147억원)를 제시하며 독점 교섭권을 따냈다고 발표했다.

미네소타가 박병호에게 거액을 베팅한 건 관심과 애정 때문만은 아니다. 박병호와 같은 파워히터 1루수가 반드시 필요해서다. 2015 시즌 미네소타는 2010년 이후 5년 만에 5할 승률을 달성(83승 79패)했지만, 결국 포스트시즌 진출은 하지 못했다. 타선이 문제였다. 타자의 득점 생산력 리그 평균을 100으로 두고 비교하는 세이버메트릭스 스탯인 wRC+에서 미네소타 타선은 91로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기록을 남겼다. 아메리칸리그 15개 팀 중 독보적인 최하위다.

파워히터 1루수 반드시 필요한 미네소타

특히 프랜차이즈 스타 조 마우어가 주전으로 나선 1루수 자리에서 타격 부진이 심각했다. 마우어는 2015 시즌 리그 1루수 중 4번째로 많은 158경기에 출전해 8번째로 많은 666타석에 나섰다. 하지만 경기에서 보여준 공격력은 ‘나오면 나올수록 팀에 손해를 끼치는’ 수준이었다. 장타자의 기준인 홈런 수는 10개로 리그 1루수 전체에서 40위에 그쳤고, 출루율도 0.338로 전체 30위에 불과했다. 0.380을 기록한 장타율은 전체 1루수 중 53위였다. 공격력이 약한 선수가 많은 2루수(리그 평균 0.391)보다도 못한 장타율을 기록한 셈이다.

“우린 16세 때부터 그를 지켜봐왔다.” 박병호 포스팅의 승자는 1285만 달러를 써낸 미네소타 트윈스였다. ⓒ 연합뉴스

마우어의 부진 속에 미네소타는 1루 포지션에서 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WAR) -0.4를 기록하며 극심한 손해를 감수했다. 다른 구단들이 1루 자리에서 평균 2.5승 정도를 얻어낸 것과 비교하면 거의 3승 가까이 손해를 봤다. 만약 미네소타 1루수들이 리그 평균 수준의 활약만 해줬더라도, 팀은 시즌 83승에 3승을 더한 86승을 거둬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려볼 수 있었다. 86승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한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거둔 것과 같은 승수였다.

박병호가 미네소타의 바람대로 메이저리그 1루수 평균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을까. 가능성은 매우 큰 편이다. 각국의 리그를 이동한 선수들의 성적을 예측하는 기법으로 살펴보면, 박병호의 성공 가능성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엠엘비네이션(mlbnation.com)의 운영자 이현우씨는 한국의 KBO리그에서 미국 MLB로 진출한 선수의 예상 성적을 구하는 독자적인 기법을 개발했다. 과거 KBO리그에서 일본프로야구(NPB)에 진출한 선수들의 성적 변화를 통해 NPB 진출 시 예상 성적을 산출한 후, 이를 갖고 이전 NPB에서 MLB로 진출한 선수들의 성적 변화에 대입해 구하는 방식이다. 강정호 이전까지 KBO에서 MLB로 직행한 선수가 전무했기 때문에 이런 예측 기법을 고안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KBO에서 NPB로 진출한 타자들은 평균적으로 타석당 홈런 비율은 75.6%, 볼넷 비율은 82.9%로 낮아진다, 반면 삼진 비율은 147.6%로 올라간다. 페어 지역에 들어간 타구가 안타가 되는 비율을 나타내는 BABIP 수치도 93.9%로 다소 떨어진다. NPB에서 MLB로 진출한 선수들의 경우 진출 직전 시즌과 진출 첫해를 비교할 경우 홈런 비율은 62.7%, 볼넷 비율은 69.6%, 삼진 비율은 99%로 모두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홈런 비율이 크게 하락한 대신 삼진비율도 함께 낮아진 것은 일본 타자들이 미국 리그 적응을 위해 장타를 포기하는 대신 맞히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BABIP는 일본 기록과 비교해 평균 91.3%를 기록해 역시 하락하는 것으로 나왔다.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기록 예측해보니…

이씨는 이 기법을 강정호에게 적용해봤다. 2014년 강정호의 성적을 토대로 2015년 메이저리그에서 거둘 성적을 예측했다. 그 결과 162경기 기준으로 타율 0.247에 출루율 0.320, 장타율 0.425, OPS 0.745, 홈런 22개로 메이저리그 유격수 평균(OPS 0.668)을 훌쩍 뛰어넘는 활약을 한다는 예상치가 나왔다. 반면 미국 내 최고 예측 시스템으로 꼽히는 ‘Zips 프로젝션’은 강정호에 대해 타율 0.230, 출루율 0.299, 장타율 0.389, OPS 0.688, 14홈런으로 다소 보수적인 예상치를 내놓았다.

실제 결과는 어땠을까. 강정호는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어 126경기에서 타율 0.287에 출루율 0.355, 장타율 0.461, OPS 0.816에 15홈런을 때려내는 맹활약을 펼쳤다. 이씨는 “(강정호의 경우) KBO에서보다 훨씬 많은 내야 안타를 기록한 데다 페어 지역 안으로 들어간 타구가 안타가 되는 비율이 예상보다 높게 나타나면서 실제 타율도 높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메이저리그에 적응하기 위해 강정호가 보여준 노력이 중요했다. “약점으로 지적된 레그킥(다리를 들어올렸다가 치는 타법)을 줄이고 2스트라이크 이후에는 레그킥을 자제하면서 컨택트에 집중한 결과, 예상보다 훨씬 좋은 타석당 삼진 비율(예상 28.4%, 실제 19.9%)을 보여줬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를 근거로 박병호의 내년 예상 성적을 구해보면 어떨까. 박병호는 2015 시즌 KBO리그에서 140경기에 출전해 622타석 동안 0.343/0.436/0.714의 타율/출루율/장타율, 그리고 53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BABIP는 0.402를, 타석당 홈런 비율은 8.52%, 볼넷 비율은 12.54%, 삼진 비율은 25.88%였다. 이 기량 그대로 NPB에 진출한다고 가정하면 예상 성적은 0.259/0.349/0.660에 40홈런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MLB에서의 성적을 구해보면 140경기 622타석 기준으로 0.232/0.301/0.504에 25홈런을 기록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홈런 숫자와 장타율, OPS 등의 수치는 메이저리그 1루수 평균(0.259/0.336/0.444에 홈런 비율 3.73%)을 훨씬 상회하는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만약 박병호도 강정호가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타격 접근법에 변화를 주고 삼진을 예상보다 크게 줄이는 데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 박병호는 배트 스피드가 빠르지 않고 몸쪽 빠른 볼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약 박병호가 자신의 기존 장점들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 약점을 개선하고 삼진을 줄일 수 있다면 앞서의 예상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성적을 찍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박병호가 지금까지 예상한 것과 비슷한 성적을 낼 경우, 팀 승리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만약 박병호가 주전 1루수로 2015년 한국에서처럼 내년 미국에서 동일한 경기와 타석에 나선다고 가정하면, 대체선수 대비 승수(WAR) 2.5승을 추가로 가져다줄 수 있다. 2015년 미네소타 전체 1루수들(-0.4승)과 비교하면 거의 3승을 추가해주는 셈이다. WAR 2.5는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1900만 달러에 달한다. 이는 1승의 가치를 약 800만 달러로 환산하는 ‘팬그래프닷컴’ 기준에 따른 산술적인 수치다.

다만 박병호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멋진 결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선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우선 새 팀과 메이저리그에 빠르게 적응해서 시즌 초반부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존 1루수 조 마우어는 미네소타 팬들로부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터줏대감으로, 2018년까지 이어지는 초대형 계약을 맺어놓고 있다. 정치적인 이유에서라도 박병호가 입단과 동시에 마우어를 밀어내고 1루 자리를 바로 차지하기란 쉽지 않다. 테리 라이언 단장의 언급대로 초반에는 지명타자로 출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마우어의 최근 하락세를 감안하면, 박병호의 시즌 초 활약에 따라서 주전 1루 자리를 차지하는 시점이 훨씬 당겨질 수 있다.

MLB가 중시하는 1루수의 능력 ‘포구’

1루 수비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메이저리그 현장에서는 송구를 받아내는 능력을 1루수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다. 메이저리그 내야수들은 안타성 타구를 걷어낸 후 강한 어깨를 이용해 1루수 주변으로 던지는 공격적인 수비를 한다. 1루수의 능력이 떨어지면 받기 어려운 송구가 한 경기에도 수차례씩 나온다. 좋은 1루수가 있는 팀은 그만큼 많은 안타를 아웃으로 바꿀 수 있고 실점을 줄일 수 있다. 기존 1루수 조 마우어도 이 부문에서만큼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팀 동료들과의 융화, 코칭스태프와의 관계, 장거리 이동과 시차 적응에 따른 컨디션 관리, 휴식일 없는 연속 경기에서의 체력 관리, 시속 160㎞를 던지는 강속구 투수들에 대한 대처, 집요한 몸쪽 승부와 위협구에 대응하는 능력도 박병호의 실제 성적과 예상 성적의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요소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박병호의 앞에는 먼저 허허벌판을 걸어간 넥센 시절 동료 강정호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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