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유착 통해 만들어진 박용성식 중앙대 개혁의 민낯
  • 한광범 기자 (totoro@sisabiz.com)
  • 승인 2015.11.20 14:54
  • 호수 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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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총장 출신 박범훈 교육수석 임명되자 본격 로비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은 20일 법원에서 뇌물공여죄 등이 인정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지난 5월 서울중앙지검에 출석 당시 모습. / 사진=뉴스1

'중앙대 특혜비리'로 재판을 받아온 박용성(74) 전 두산그룹 회장과 박범훈(67)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20일 법원에서 각각 집행유예와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로 중앙대 인수 후 정권과 유착한 박용성식 개혁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장준현 부장판사)는 이날 진행된 '중앙대 특혜비리' 사건 선고공판에서 박 전 회장에 대해 "사립대학을 운영하며 교육부 소관 대학행정사무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했고 대가로 수천만원의 뇌물을 공여했다"며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박 전 수석에 대해선 "중앙대에 대한 행정제재 사안을 해결해주고, 단일교지 승인 혜택을 베풀고자 교육부 공무원들에 대한 부당한 지시와 영향력을 행사해 직권을 남용했다"며 징역 3년에 벌금 3000만원, 추징금 3700만원을 선고했다.

단일교지 제도는 교지가 분리된 대학에 대해서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서 각 캠퍼스 단위가 아닌 통합해서 교지확보율을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2012년 7월 기준 중앙대 서울캠퍼스 교지확보율은 38.2%로 통폐합 당시 기준인 39.9%에 미달했다. 반면 안성캠퍼스 교지확보율은 343.5%였다.

재판부는 박 전 수석에 대해 재임 당시 교육부 실무자들에게 중앙대에 대한 행정제재 처분을 종결하도록 하고 중앙대 단일교지 안건을 상정하고 이를 승인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점을 유죄로 판단했다. 또 두산 측으로부터 상가분양권 등 금품을 받은 혐의도 인정했다.

박 전 회장에 대해선 이태희 전 중앙대 상임이사를 통해 박 전 수석에게 청탁과 함께 그가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국악단체에 공연 협찬금 명목으로 3000만원을 건넨 점과 박 전 수석 등에게 총 260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건넨 혐의가 인정됐다.  

아울러 박 전 회장과 박 전 수석 등이 공모해 법인회계에서 지출해야 할 법인부담금과 법인직원 인건비를 중앙대 교비회계에서 먼저 지출한 후 보전해 사립학교법을 위반한 점도 유죄 판단을 받았다.

재판부는 그러나 박 전 회장과 박 전 수석 등이 2008년 우리은행과 연장계약을 하며 받은 발전기금 100억원을 법인회계에 편입시켜 학교에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배임)에 대해선 "학교시설의 사용료나 이용료라기보다 주거래은행 지위의 확보와 대가관계"라며 무죄로 판단했다.

박 전 회장은 선고 후 법원을 나서며 '중앙대 학생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이사장 그만둔 지가 언제인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박범훈, 중앙대 관련 '원칙 지킨' 교육부 공무원 지방으로 좌천

이번 재판을 통해 박 전 회장이 추진하던 기업식 대학 구조조정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는 학문의 가치에 기업식 경제논리를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학내의 의견수렴은 무시한 채 재벌의 과거 구태를 답습해 정권 실세와 유착을 통해 불법적인 방법까지 동원해가며 개혁을 밀어붙였다. 박 전 회장은 중앙대 인수 당시 중앙대 총장이던 박 전 수석이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되자 이를 적극 이용했다.

박 전 수석은 2005년부터 2011년 2월 교육문화수석 임명 직전까지 중앙대 총장을 역임했다. 두산의 중앙대 인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는 그는 2011년 2월초 교육문화수석 내정 사실을 통보 받은 직후 이태희 전 중앙대 상임이사로부터 "중앙대 현안을 잘 처리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동대문 두산타워 상가분양권 임대를 제안 받고 취임 후 이를 실제 분양받았다.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서 박 전 수석이 얻은 이익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기준인 3000만원 이상인 것을 인정할 자료가 없다며 일반 뇌물죄를 적용했다.

박 전 회장은 또 2011년 3월 중앙대 캠퍼스 통폐합 신청이 잘 통과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했다. 박 전 수석은 같은 해 8월 교과부가 통폐합을 승인하자 박 전 회장 측에 전화를 걸어 공연 후원을 요청했다. 이에 박 전 회장은 두산그룹 계열사 3곳에 각각 1000만원씩 후원토록 했다. 재판부는 "직무관련성 및 대가성이 인정된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중앙대는 2012년 8월 서울캠퍼스의 교지확보율이 서울·안성캠퍼스 승인 당시 요건에 미달되자 교육부로부터 '학생 모집정지 행정처분' 의결사실을 통보받았다. 박 전 수석은 담당 교육부 공무원들에게 행정제재 처분을 지연·중단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이 과정에서 중앙대 행정실사를 나간 교육부 실무자 2명을 지방으로 좌천시키기도 했다.

박 전 수석은 중앙대 서울캠퍼스의 교지확보율을 충족이 어렵게 되자 서울·안성캠퍼스를 단일교지로 인정할 수 있도록 교육부에 압력을 넣었다. 이 과정에서 실무자의 부정적 의견은 배제됐고 2012년 11월 단일교지안은 교육부 대학설립심사위원회를 통과했다.

박 전 회장은 이에 같은해 12월경 저녁모임에 참석해 단일교지안 통과에 대한 사례로 박 전 수석과 교육부 담당 공무원 등에게 총 260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건넸다. 박 전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이를 인정했다.

중앙대 보직교수 3명은 2012년 1월경 행정제재와 관련해 수업진행확인서와 전자결재공문 등을 허위로 만들어 이를 교육부에 소명자료를 제출한 점이 인정돼 각각 벌금 500만~1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중앙대, 두산 인수 후 ‘기업식 구조조정’ 학내 반발...박용성 막말로 사퇴

앞서 두산그룹은 지난 2008년 5월 1200억원에 중앙대를 인수했다. 박 전 회장은 그해 6월 중앙대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중앙대라는 이름만 빼고 다 바꾸겠다"고 선언해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그 방향과 관련해선 "대학도 하나의 산업"이라며 기업식 개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박 전 회장은 2009년 3월 국내 대학 최초로 교수 연봉제를 도입했다. 교수들을 강의·연구 실적에 따라 S·A·B·C 등급으로 나눠 연봉에 반영한 것이다. 2014년부턴 3년 연속 C등급을 받은 교수에 대해선 연구실 몰수와 대학원 강의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실제 2014년 8월엔 5년 연속 C등급을 받은 교수 4명이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박 전 회장은 또 2010년 3월에는 학과 구조조정을 통해 18개 단과대를 10개로 줄이고, 77개 학과를 46개로 통폐합했다. 2012년 3월엔 서울 흑석동 캠퍼스와 경기도 안성 캠퍼스 통합을 밀어붙였다. 이어 2013년 6월엔 '전공선택 비율이 낮다'는 이유로 인문사회계열 4개 학과를 폐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학생·교수를 중심으로 한 학내 구성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학내 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 반대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일부 학생들은 중앙대 정문 앞 공사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나 한강대교 난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중앙대는 이들 중 세 명에 대해 '교직원 욕설' 등을 이유로 퇴학과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법원이 2011년 1월 퇴학 무효 판결을 내렸으나 중앙대는 같은 해 3월 이들에 대해 또 다시 각각 무기정학 또는 유기정학을 처분했다.

지속적으로 학내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던 박 전 회장은 지난 4월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들에 대한 막말이 공개되자 이사장직을 사퇴했다. 그는 동시에 당시 맡고 있던 두산중공업 회장직과 대한체육회 명예회장직도 함께 그만뒀다.

앞서 그는 3월 보직교수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구조조정 반대 교수들로 구성된 중앙대 비상대책위원회와 관련해 "그들(비대위 교수들)이 목을 쳐 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며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라고 적었다. 비대위에 대해서도 "Bidet委(비데위)" 또는 "鳥頭(조두)'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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