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교과서 상고사는 식민사관 복사판 될 것”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5.11.26 21:09
  • 호수 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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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교과서 집필진이 ‘식민사관’ 갖고 있다고 주장한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

“얼마나 한심하고, 민족 차원에서 얼마나 죄인들인가.” 현재의 국정 한국사교과서 집필진이 ‘식민사관’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 그는 식민사관을 뒤집는 민족사관을 연구하고 저술하는 한 학자(漢學者)다. 그는 저서 <잃어버린 상고사 되찾은 고조선>  <황하에서 한라까지> <한사군의 낙랑> 등에서 “한국 상고사가 왜곡돼 있다”며 중국 기록을 통해 반박해왔다. 특히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우리 역사>를 출판하는 등 역사 교육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11월20일 서울 광화문 인근 집무실에서 시사저널과 만나 국사편찬위원회 소속 학자와 국정 한국사교과서 집필을 맡은 학자들에 대해 날 선 비판을 내놓았다.

 

정부에서 교과서 국정화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어떻게 보나.

ⓒ 시사저널 이종현

정권이 역사교과서 문제를 들고나온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 소득이 없다. 방법론에서 문제가 있다. 여론을 수렴해서 정해야 한다. 국민이 국정을 원하면 하고 검인정을 원하면 하라고 해야 한다. 대통령이 방법론까지 집착을 보이면 안 된다. 장기를 둘 때 궁(宮)은 안에 있고 차포(車包)가 방어해야 하는 게 아닌가. 궁이 직접 나와서 차나 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략과 지혜가 부족한 것이다.

 

정부 발표대로 균형 잡힌 교과서 집필이 가능할까.

현재 논의된 상고사 부분만 놓고 보자면 어렵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식민사관을 가진 신석호의 제자다. 신석호는 식민사관의 본산인 조선사편수회에서 근무했다. 김 위원장도 그 사관을 그대로 따라서 인정한다. 그의 학맥이 집필진에 포함될 것이다. 김 위원장이 인터뷰에서 ‘논란의 핵심은 근대사 100년으로 한정된다’고 발언한 것을 보면 고대사는 왜곡된 이전 것의 복사판이 되고 근현대사만 손대겠다는 것이다.

왜곡된 식민사관의 본원이라는 조선사편수회는 어떤 곳인가.

일본이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었다. 회장은 정무총감이 맡고 고문은 이완용이 했다. 한국에서 이병도·신석호 이런 분들이 편수관으로 참여했다. 신석호는 편수관, 이병도는 편수관보였다. 이곳에서 통치를 위해 고조선은 신화다, 낙랑군은 한사군(漢四郡)에 있었다는 논리로 역사를 축소했다. 광복된 후 비슷한 기구인 국사관을 만들었는데 조선사편수회에서 편수관으로 한국사 말살에 참여했던 신석호가 광복 후 국사관의 초대 관장을 맡았다. 이후에는 문교부장관 겸직으로 관장에 재직했다. 이렇게 20년 동안 식민사관의 토대를 닦았다. 그렇게 운영됐기에 조선사편수회에서 국사편찬위원회로 간판만 바꿨지 인적 구성은 같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이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초라하게 만들 것인가”

현재 구성 중인 국정 교과서 집필진도 식민사관에 경도됐다고 보는가.

최몽룡 서울대 교수가 사퇴하면서 상고사 대표 집필을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맡든지 이기동 동국대 석좌교수가 맡게 된다. 이기동 교수는 이병도씨 제자이고 직계 학자다. 내가 충남 백제사연구소장 때 이기동 교수와 같이 일해봤다. 그가 말하길 ‘낙랑군 대동강설(說)은 하나의 철학이다’라고 한다. 그래서 더 이상 논의할 것이 없었다. 그런 사람들을 데리고 고대사 교과서를 만들어서는 전혀 변화가 없을 것이다.

상고사에서 왜곡된 부분은 어떤 것인가.

일제가 일본 역사는 2600년인데 우리는 4500년이라고 하니까 우리 역사를 잘랐다. 그래서 고조선을 잘랐다. 이때 고조선을 신화화(神話化)시켜서 우리 역사의 뿌리를 잘라냈다. 단군조선 1000년과 기자조선 1000년을 자르면 우리 역사는 2300년밖에 안 된다. 한사군 한반도설도 마찬가지다. 한 무제가 설치한 한사군이 고조선을 쳐가지고 나라를 빼앗아서 한사군을 세웠다는 거다. 이게 중국이 아니라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는 것 아닌가. 역사영토를 한정 짓는 것이다.

왜곡됐다는 문헌적 근거가 있나.

한사군의 낙랑군(樂浪郡)하고 낙랑국(樂浪國)하고 다르다. 문헌상 한사군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은 전무하다. 한사군 한반도설은 낙랑 유물이 대동강에서 나왔다는 게 유일한 근거다. 반면 한사군이 중국에 있었다는 근거는 기록에 있다. ‘낙랑 조선하(河)’(베이징 동북쪽)가 오늘날 중국 허베이(河北省) 동쪽을 흐르는 조하(潮河·차오허)이며, 조선(고조선)이 있었던 지역이기에 송나라 때까지 조선하로 불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역사는 기록 중심인 문헌학이 주(主)고, 유물 발굴에 의한 고고학이 보조 학문이다. 이 때문에 낙랑 대동강설은 근거가 빈약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역사 교육이 이뤄지면 어떤 점이 문제가 되는가.

한사군과 고조선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가게 되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제대로 대응을 못한다. 우리가 압록강 남쪽까지를 우리 역사로 한정 지으니까 동북방이 비어서 발해와 고구려가 다 중국 역사라고 동북공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역사영토 문제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영토에 관한 중대한 문제다. 중국이 역사영토가 의미 없으면 무엇 때문에 동북공정을 하겠나. 중국 기록에 우리 역사영토를 인정하는 게 있는데 우리는 왜 그걸 부정하는가. 속된 말로 일본은 전범 역사까지 미화하려고 하지 않나. 우리는 자랑스러운 역사도 어떻게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역사로 만들 것이냐, 이것에 혈안이 돼 있다.

“국정 교과서 집필진 전면 재논의해야”

그러면 역사 교육 논란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새로운 기구를 만들고 집필진에 대해 전면 재논의를 해야 한다. 이기동 교수나 최몽룡 교수 같은 경우 한쪽에 치우쳐 있다. 그 사람들의 견해도 반영은 하되 그동안 배제하고 참여 자체를 제한한 나나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같은 인물도 참여시켜야 한다. 원래 주장하던 쪽이 통설이고 그게 국가를 위해 도움이 된다면 그게 맞지만, 그게 아니라는 확실한 근거가 나왔는데 이대로 끌고 가선 안 된다. 역사특위 같은 새로운 기구에 이런 입장들을 반영해서 운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권이 바뀐 뒤에 다른 정권도 인정할 수 있는 교과서, 남한·북한 학생 다 읽을 수 있는 교과서를 역사의식이 있는 리더십으로 주도해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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