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산업은행-박삼구 금호 회장 ‘사전 합의’ 논란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5.12.01 17:13
  • 호수 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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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이 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에는 ‘박삼구 회장 봐주기’ 의혹에 휩싸였다. 산업은행은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돌입하자 이면 합의서를 작성해 박 회장의 경영권을 보장해줬다. 사재출연을 이유로 우선매수권을 부여해 그룹을 되찾도록 도왔다. 그동안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 구조조정을 진행한 동부나 STX그룹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최근에는 금호산업 자금조달계획안에 대한 부실 심사 의혹까지 제기됐다. 국책은행 산업은행의 오락가락 행보에 대해 국민들의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금호그룹 재건 플랜이 9부 능선을 넘었다. 금호산업 채권단이 11월6일 박삼구 금호아 시아나그룹 회장이 제출한 자금조달계획안(이하 계획안)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50%+1주’에 대한 인수대금 7228억원만 납입하면 박 회장은 그룹 경영권을 되찾게 된다. 하지만 금호그룹이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현재 계획안 내용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박 회장이 어떻게 인수 자금을 조달할지 여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박 회장과 장남 세창씨(금호타이어 부사장)는 금호타이어(9.85%)와 금호산업(7.99%) 지분을 매각해 1500여 억원을 마련한다. 또 NH투자증권이 주선한 인수금융(신디케이트론)과 기업 투자를 통해 나머지 5000여 억원을 조달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그동안 투명한 심사를 공언했다. “말도 안 되는 계획안을 내거나 계열사를 관여시킬 경우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잡음이 일었다. 산업은행은 박 회장의 요청을 받고 당초 예정됐던 계획안 제출 시기를 2주 연장해줬다. 박 회장 일가가 금호타이어 지분을 매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실제로는 전략적 투자자(SI)를 모집하기 위한 ‘시간 벌기용’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돌입한 직후인 2010년 2월 산업은행과 박삼구 회장은 경영권 보장을 약속하는 이면 합의서(사진)를 작성했다.

CJ 투자, 1000억대에서 500억원 줄어

11월6일 계획안이 승인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산업은행에 제출된 계획안에는 전략적 투자자들의 LOI(투자의향서)나 LOC(투자확약서)가 빠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투자금액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박삼구 회장의 계획안을 승인한 것이다. 덕분에 일부 기업의 투자금액이 계획안 때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산업은행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계획안에는 CJ그룹의 투자금액이 1000억~1800억원으로 표시돼 있다”며 “실제 투자액은 500억원 규모여서 자금 조달 계획을 정확하게 심사한 것인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측은 “서류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구체적인 자금 조달 방법은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문제가 없으니 채권단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것 아니겠나”라고 짧게 답했다. 하지만 관련 자료 공개는 한사코 거부했다. 전략적 투자자의 LOI나 LOC가 접수됐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2006년 현대건설의 매각을 추진한 바 있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연내 매각을 주장했지만, 산업은행은 ‘옛 사주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맞섰다. 현대건설 부실 책임이 있는 옛 사주에 대해 인수전 참여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건설 매각은 ‘없었던 일’로 됐다. 4년 후 매각이 재추진됐고, 2010년 현대그룹이 현대차그룹을 누르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현대그룹은 현금성 자산 3조7000억원과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 예치금 1조2000억원을 활용해 인수금액(5조 5000억원)을 조달한다고 밝혔다. 채권단은 나티시스 은행 예치금의 출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현대그룹의 우선협상자 자격을 박탈했다. 결국 현대건설은 현대차그룹에 넘어가게 됐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때는 돈을 어떻게 빌리든 채권단은 잔금만 받으면 되는 상황이었음에도 인수 자금의 출처를 물어 결국 계약을 파기했다”며 “금호산업 역시 계획안 승인을 앞두고 채권단은 박 회장의 자금 동원 능력을 가장 우려했다. 산업은행이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은 그동안 박삼구 회장에게 유독 관대한 잣대를 들이댔다. 산업은행은 2010년 2월5일 박회장과 경영 정상화를 위한 이면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돌입한 지 두 달 후였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합의서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박 회장에게 금호타이어의 경영권을 약속했다. 워크아웃에 돌입한 금호산업의 경영 역시 박 회장이 추천하는 인사가 대표이사를 맡기로 합의했다. 박 회장은 기옥 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을 금호산업의 대표이사로 추천했다. 기 사장은 2010년 7월 이사회 결의를 거쳐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박 회장은 대신 계열사 주식과 부동산을 담보로 내놓았다. 박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금호석유화학 주식(12%)도 팔아 우선적으로 금호타이어 정상화를 위한 지분 매입에 투입하기로 했다. 경영 정상화 계획이 달성되면 우선매수권을 통해 그룹을 되찾아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6쪽 짜리 합의서에는 민유성 당시 산업은행장과 박 회장, 그리고 박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의 서명이 포함돼 있었다.

산업은행과 박 회장은 2월23일 추가 합의서를 작성하게 된다. 금호산업 외에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통운까지 박 회장이 명예회장을 맡도록 협조하고, 대표이사 역시 박 회장이 추천한 인사에게 맡긴다는 내용이었다. 현대건설 매각 때와 달리 그룹 경영실패의 책임이 있는 박 회장에게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에 이어,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통운의 경영권까지 인정한 셈이 된다.

산업은행은 첫 합의서 작성 후 며칠이 지난 2월8일에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영기 당시 수석부행장은 “채권단 합의에 따라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을, 박삼구 명예회장 부자는 금호타이어의 경영권을 책임지기로 했다. 금호산업을 비롯한 나머지 계열사는 채권단이 경영권을 행사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금호산업의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은 산업은행과 박 회장이 이면 계약을 체결한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産銀 “자금조달계획안 승인 과정 문제없다”

박삼구 회장은 산업은행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그룹 재건에 나섰다. 2010년 11월 금호그룹 회장에 공식 복귀했다. 2013년 8월과 2014년 3월에는 각각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의 등기이사에 선임됐다. 올해 11월에는 자금조달계획안까지 채권단으로부터 승인받으면서 6년 만에 그룹을 되찾게 됐다.

문제는 박 회장이 산업은행의 합의서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 회장은 합의서에서 가능한 한 빨리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처분해 금호타이어 주식을 취득하고,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박 회장은 합의서를 작성한 지 2년이 지나서야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처분했다. 매각한 돈의 70%(2200억원)도 금호산업에 투입했다. 합의서대로 금호타이어 지분 매입을 위해 사용한 돈은 30%(1100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합의서에서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박 회장에게 했던 경영권보장 약속은 철회하기로 양측이 합의했다. 그럼에도 산업은행은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특혜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박 회장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한 근거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하 기촉법)이다. 채권 금융기관 출자전환 주식 관리 및 매각 준칙 제12조(구(舊)사주에 대한 경영권 부여)에 따르면, ‘부실 책임의 정도나 사재 출연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한 노력의 사후 평가를 통해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구사주에 대한 우선매수권은 사후적 평가 요소인 것이다.

박 회장이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한 주식이나 부동산에도 문제가 있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여신에 대한 담보로 각각 금호생명 주식 77만주(222억원 상당)와 금호산업 주식 30만주(40억원 상당), 전라도 등 묘지 지분 일부(2억원 상당) 등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들 주식이나 부동산은 담보로서 가치가 거의 없었다. 금호산업과 금호생명 지분은 얼마 후 100 대 1과 3.17 대 1로 감자됐다. 부동산 역시 일부 지분만 넘겨받았기 때문에 처분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산업은행은 사재 출연의 대가로 박 회장에게 경영권뿐 아니라 그룹을 되살 수 있는 우선 매수권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최근 구조조정을 진행한 STX나 동부그룹 사례와 대비되고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7월 STX조선과 자율협약을 체결하면서 강덕수 전 STX그룹회장의 사임을 요구했다. 강 전 회장을 포함한 STX중공업 전·현직 임원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압박을 느낀 강 전 회장이 사퇴하자 STX조선 대주주에 대한 100 대 1 감자를 단행했다. 대표이사에 정성립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을 앉히면서 강 전 회장의 복귀를 원천 차단했다. STX조선 노동조합은 “자율협약은 워크아웃보다 채권단의 개입 단계가 낮다”며 “워크아웃 중인 금호산업은 등기이사에 오너 일가를 선임하면서 자율협약이 진행 중인 우리 회사의 경영진을 교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2013년 말부터 진행된 동부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더욱 가혹한 잣대를 들이댔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초기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묶어 포스코에 파는 ‘패키지딜’을 시도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별도 매각을 제안했지만 산업은행이 거부했다. 결국 포스코가 거절하면서 패키지딜은 실패했고, 동부그룹의 자금난이 가중됐다.

산업은행은 동부제철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김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의 동부화재 지분 13.29%를 담보로 요구했다. 동부화재는 동부그룹 금융계열사의 지주회사다. 동부화재 지분까지 내놓을 경우 경영권에 위협을 받을 수 있었다. 김 회장이 거절하자 산업은행은 동부제철 대주주에 대한 100 대 1의 감자를 단행했다. 그 결과, 김 회장은 동부제철에 대한 경영권을 모두 상실했다. 이후 동부건설과 동부익스프레스, 동부특수강 등 주요 제조업체들이 매각되거나 워크아웃으로 그룹에서 떨어져나갔다. 하지만 채권단은 김 회장에게 우선매수권도 주지 않았다. 결국 동부는 제조업 부문이 없는 금융그룹으로 전락했다. 김 회장도 “억울하고 가혹한 자율협약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억울하고 가혹한 자율협약으로 동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지난 반세기 동안 땀 흘려 일궈 놓은 소중한 성과들이 구조조정의 쓰나미에 휩쓸려 초토화됐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CJ 본사 © 시사저널 포토

산업은행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사전 합의 논란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사실이 있다. CJ그룹은 최근 금호산업 지분 인수 과정에서 금호그룹에 500억원을 유상증자 형식으로 투자했다. 나머지 전략적 투자자들이 약속된 자금을 완납했을 때 투자를 실행한다는 조건이었다.

주목되는 사실은 증자 금액이 주당 4만 1000원이라는 점이다. 11월26일 기준으로 금호산업 종가는 1만5950원이다. 5년 전에 비해 90% 가까이 주가가 하락한 상태다. 전략적 투자자라면 투자 대비 이익을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4만1000원은 그룹 오너인 박 회장이 ‘50%+1주’를 인수한 것과 동일한 조건이었다. 때문에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배임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CJ그룹 측은 “법적인 검토를 모두 거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CJ그룹의 한 관계자는 “대한통운에서 지분을 투자하기로 했다. 현재 중국에서 금호타이어 물류를 맡고 있다. 향후 미국과 유럽 물량까지 확보한다면 회사에 엄청난 이득이 될 수 있다는 경영적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다른 시각도 나온다. CJ그룹은 2011년 12월 금호그룹으로부터 대한통운을 인수했다. 당시 대한통운은 금호터미널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었다. 금호터미널은 광주와 목포, 공주, 서대구 등 전국에 16개의 버스터미널을 보유하고 있었다. 대한통운만 인수하면 금호터미널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세계와 경쟁하던 롯데도 당시 대한통운 인수에 군침을 삼켰다.

하지만 금호그룹은 매각 본입찰 직전 금호터미널을 대한통운에서 떼어내 그룹 산하로 붙였다. 이에 반발해 롯데는 대한통운 입찰을 포기했지만, CJ그룹은 입찰을 계속 진행했다. 결국 CJ그룹은 당초 예정가보다 3% 할인된 주당 19만원대에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뒷말이 적지 않았다.

CJ그룹 측은 “애초부터 금호터미널을 인수할 계획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룹 관계자는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금호터미널은 알짜배기가 아니었다”며 “어차피 대한통운을 인수하더라도 금호터미널은 제외할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이 회사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말 금호터미널의 자산만 4254억원에 이르고 있다. 물론 장부가로 평가했을 때다. 광주터미널만 해도 광주신세계가 입점하면서 5000억원의 보증금을 냈다. 나머지 15개 터미널의 실제 가치를 합하면 수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매출이나 영업이익도 각각 379억원과 196억원에 이른다. 영업이익률이 50%를 넘어서면서 매년 10억~15억원의 배당금도 지급하고 있었다. CJ그룹 입장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놓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이번 거래에도 두 그룹의 오너 일가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손경식 CJ그룹 회장의 입김설도 나온다. 손 회장은 이재현 회장의 외삼촌이다. 이 회장의 어머니인 손복남 고문이 손 회장의 누나다. 과거 CJ가 삼성으로부터 분리됐을 당시 손 회장이 어린 조카들을 대신해 그룹을 이끌어왔다. 현재도 수감 중인 이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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