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에 희비 엇갈리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5.12.03 20:19
  • 호수 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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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철강업체 “국토부도 문제없다는데, 경찰이 거래업체 직원들까지 소환하며 압박”

국내의 한 중견 철강업체의 중국산 가짜 제품 사용 의혹과 관련한 경찰 수사에 철강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경찰은 지난 8월부터 연간 1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철강업체 M사를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업체는 주로 중국산 제품을 국내에 들여와 건설사에 납품하고 있다. M사의 주력 제품인 H빔은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등 두 대기업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M사를 비롯한 중견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이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는 중이다. 건설 경기가 호전되지 않는 상황에서 시장을 지키기 위한 대형 철강업체들과 시장을 넓혀가는 중견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중견 업체 제품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수사에 착수하면서 시장 상황이 묘하게 바뀌고 있다.

철강업계에서는 이번 경찰 수사의 배후에 대형 철강사들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는 대형 철강사들이 경찰 측에 악의적 제보를 넣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M사가 제품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시험성적표 등을 위조해 마치 국산인 것처럼 속여 팔았다고 보고 있다. 반면 M사는 경찰의 이런 의혹 제기가 터무니없다고 주장한다. 양측의 의견이 완전히 엇갈리는 상황에서 경찰은 다른 비슷한 규모의 업체로도 수사를 확대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경찰 수사가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현 정부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경찰이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업계 관행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조항을 문자 그대로만 해석해 중견 철강업체들을 사실상 고사(枯死)하게끔 만들고 있다고도 반발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무리한 기준을 들이대는 경찰 수사대로라면 모든 건설 현장에서는 국내 대형 철강사 제품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서울 중랑구 묵동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 시사저널 고성준 인턴기자

“KS 인증 안 받아 불법” vs “JIS 인증 더 엄격”

수사는 지난 8월24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서 인천 검단에 있는 M사 본사와 충북 진천 등에 있는 공장 2곳을 압수수색하면서 본격화됐다. 경찰은 9월 중순에 회사 관리이사를, 10월 중순엔 공장장 두 명을 소환조사했다. 경찰이 보고 있는 M사의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건설기술진흥법 제57조에 따라 철강재 수입·판매업자는 한국 표준규격(KS)에 따른 제품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중국산을 국내산으로 속여 판매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수입 철강 제조사의 시험성적서를 국산으로 위조해 구매자에게 공급한다는 것이 경찰 측의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M사가 중국산 제품을 국산으로 판매하기 위해 모든 일을 꾸몄다는 것이 경찰 측 판단이다.

반면 M사 측에서는 경찰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무리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경찰이 M사가 위반했다고 보는 법 조항은 ‘건설기술진흥법’ 제57조 2항이다. 이 조항에는 건설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재를 ‘한국산업표준’에 적합하다는 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제한하고 있다. M사의 제품은 한국산업표준, 즉 KS가 아닌 일본 제품 인증 기준인 JIS를 받은 제품이다. 경찰은 JIS는 KS가 아니기 때문에 불법이란 입장이고, M사는 KS보다 JIS가 더 까다로운 기준으로 인증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산업표준에 적합하다’는 조항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의 건설 현장에서 사용되는 H빔 제품의 KS와 JIS 기준을 따져보면 높이와 두께, 너비 등 모든 항목에서 JIS의 허용 오차가 KS보다 적다. 그렇다면 이 조항과 관련해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입장은 어떨까.  국토교통부 측은 “한국산업표준에 적합하다고 인증받은 자재나 이와 동등 수준 이상이면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경찰은 또한 ‘건설공사 품질시험 기준’에 따라 철강재 수입·유통업자는 수입 제품에 대해 50톤 단위마다 품질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M사 측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중국산을 국산으로 속여 팔다 보니 품질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M사 관계자는 “품질검사 의무는 수입업자가 아닌 시공사에 있는 것”이라면서 “시공사에 품질검사 의무가 있는 데다, 그들이 더 전문가이기 때문에 납품업체가 제품을 속여 판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산 철강사 제품은 일정 길이마다 회사 롤마크가 찍혀 있어 이를 수입업체에서 위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품질검사 의무가 없는 수입업자에게 왜 품질검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 경제정책과도 배치되는 수사” 불만

불법 여부를 가리는 것이 경찰 수사의 본질일 수 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면 이는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 우선 경찰이 M사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강압 수사로 오해할 만큼 주변 회사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사 측의 주장에 따르면, 경찰은 수사 시작 후 수백 곳에 달하는 M사의 거래업체 중 50곳 정도에 전화를 해서 조사를 벌였고, 그중 20~30개 업체에는 직접 찾아가 담당자들을 조사했다. 그중 일부 업체 관계자들은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조사를 하기도 했다. 거래업체 입장에서는 소환조사까지 받다 보니 M사와의 거래를 꺼리는 분위기도 생겨나고 있다. 게다가 수사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피의 사실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가면서 M사 측은 더욱 당황하고 있다.

M사 측은 경찰 측의 이런 수사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M사 관계자는 “국산 제품은 두 대형 철강사에서 나오는 것이 100%인데, 속여 팔았다면 대기업에서 우리를 상대로 직접적인 소송을 하지 왜 경찰이 인지수사를 하겠느냐”며 “게다가 경찰 측이 말한 대로 같은 혐의에 대한 수사를 다른 중소기업으로 확대한다면 결과적으로 대기업만 웃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수사가 기업 활동을 위해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과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수사 상황을 들어보면 경찰은 무조건 KS 기준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정작 주무 부처에서도 문제없다고 한 내용을 왜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며 “수사기관에서 규제 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수사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황인자 리스트’ 관련 반론보도문 
 

본지는 지난 10월12일자 뉴스면 「정·관계 브로커 ‘황인자 리스트’ 터진다」 제하의 기사에서 ‘황인자씨가 김한표 의원의 정·관계 인맥으로 도움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김한표 의원은 “황인자씨와 관련이 있다는 보도는 황인자씨 고소인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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