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직원들 차명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5.12.03 20:50
  • 호수 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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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법정관리 기업 부실 관리 논란 재점화

산업은행이 관리 중인 기업의 관리를 부실하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제기돼온 문제다. 이로 인해 떠안아야 할 부실은 이미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났다. 201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산업은행이 맡은 기업에서 발생한 부실 여신은 4조1356억원에 달한다. 구조조정 중인 기업의 채권 회수율이 30% 수준임을 감안하면 부실 규모는 2조9000억원대로 추산된다.

산업은행의 기업 부실 관리 실태는 이번 국감에서도 어김없이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느 때와 분위기가 달랐다. 산업은행이 관리하는 대우조선해양에서 3조원대 영업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9월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 현장은 사실상 산업은행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산업은행의 관리 책임 문제를 놓고 여야 의원들의 질의가 줄을 이었다. 산업은행 측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의원들의 질타는 한층 강도를 더했다. 사실상 ‘몰매’를 맞다시피 했다는 평가다.

9월21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이 대우조선해양 부실 사태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소기업의 밥줄 단칼에 베어버려”

이처럼 산업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사전에 발견할 수 있는 단서가 곳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산업은행은 일이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실사에 나섰다. 그 결과 대우조선해양의 영업손실은 올해 말 6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대규모 손실을 메우기 위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4조2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산업은행의 부실한 기업 관리로 인해 생긴 구멍을 막대한 국민 혈세로 틀어막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산업은행의 부실한 관리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추가로 확인됐다. 대우조선해양 구매부 직원이 차명으로 회사를 설립해 기존 협력업체의 납품 물량을 빼앗아갔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대우조선해양 감사팀에 접수된 민원서류에 이런 내용이 빼곡히 담겨 있다. 해당 서류에서 자신을 대우조선해양의 2차 협력업체 Y사 직원이라고 소개한 민원인은 자신의 회사가 지난 수년간 1차 협력업체인 M사를 통해 선박 부품을 납품해왔다고 했다.

문제는 지난해 말 M사의 발주 물량이 줄어들면서 불거졌다. 이에 Y사 측이 문제를 제기하자 M사에서는 납품 물량 일부를 양보해달라고 제안했다. 그 이유에 대해 M사 측은 민원인에게 대우조선해양 구매부 직원이 사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족들을 돕는 차원에서 구매부 직원들이 차명으로 B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에 일감을 넘겨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M사 측은 일감의 일부만 넘겨줄 것이고, 향후 기존에 납품하던 물량을 회복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Y사 측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시기, 구매부 직원들의 차명 회사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B사에는 대우조선해양의 일감이 몰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당시 선박 부품 제작을 위한 설비를 보유하고 있지도 않은 상태였다. 당연히 납품 실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B사는 지난해 말 대우조선해양 1차 협력업체로 등록됐다. 그리고 이 회사는 자회사인 K사를 내세워 그동안 Y사가 납품해오던 물량을 차례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민원인은 “대우조선해양이 Y사를 밀어내기 위해 납품 단가를 대폭 인하하는 등 압박을 가했다”며 “이후 차츰 납품 물량을 줄여 나가더니 결국 모든 일감이 K사에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렇게 피해를 본 회사가 Y사뿐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민원인은 대우조선해양의 또 다른 협력업체인 O사의 일감 상당량도 B사로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원인은 “불황으로 업계 전체에 대규모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열심히 기술을 축적해온 중소기업의 밥줄을 단칼에 베어버렸다”며 “이런 행위는 대우조선해양이 강조하는 ‘윤리경영’과 ‘부정부패 없는 회사’라는 구호와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감사실에서는 이런 제보를 토대로 진위 파악에 나섰다. 그 결과, 민원인이 제기한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대우조선해양 감사실은 Y사 측에 기존에 납품하던 물량을 복구해주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사실을 외부에 알릴 경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올해 여름 이런 민원이 제기돼 감사실에서 확인에 나서 절차상 적절치 않은 부분을 발견했다”며 “기존에 계약한 부분까지만 납품을 받고 추가 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명백한 문제가 발견됐음에도 대우조선해양은 고발 조치 없이 조용히 덮고 넘어갔다. 회사 관계자는 “문제가 된 직원들은 회사 내규에 따라 처리됐다”면서도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9월20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의 야드가 건조 중인 배로 가득 들어차 있다. ⓒ 연합뉴스

민원인에게 “외부에 알리지 말라” 입단속

이번 일은 직원 개인의 일탈이나 도덕적인 문제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여느 대기업의 경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이번 일에는 방만한 내부 분위기가 한몫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관리를 맡고 있는 산업은행은 이런 사내 기류가 조성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동안 기업 관리를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산업은행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산업은행의 부실 관리 논란이 끊이지 않는 배경은 뭘까. 그 원인으로 먼저 관리 실패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산은법에는 ‘산은의 손실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립해준다’고 명시돼 있다. 관리에 실패해 손실이 생기더라도 이를 정부로부터 보전받을 수 있는 셈이다. 산업은행 직원과 관리 기업 간의 유착도 또 다른 배경으로 지목된다. 산업은행 직원들은 퇴직 이후 관리하던 기업에 사외이사나 자문역, 고문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강도 높은 관리보다 긴밀한 관계 형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 책임도 크다. 국책은행인 만큼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대우조선해양 부실 사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근혜 정부 이후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 7명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5명이 전문성 없는 정치권 낙하산 인사로 채워지면서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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