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페북 등 IT 기업들 ‘인공 고기’에 꽂히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5.12.03 20:53
  • 호수 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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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채소로 만든 진짜보다 정교한 ‘가짜 고기’에 IT 갑부들의 돈줄 이어져

2013년 영국의 한 방송사 카메라는 햄버거 패티를 확대 촬영했다. 인간이 실험실에서 만든 소고기가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그 패티는 일반 소고기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소의 근육세포를 배양해 만든 고기라서 배양육이라 불렀고, 흔히 인공 고기 또는 가짜 고기로 세간에 알려졌다. 2008년부터 이 연구를 진행해온 네덜란드 마스트리치 대학의 마크 포스트 교수는 “자연에서 얻은 고기와 똑같아지려면 더 시간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채소로 만든 소시지보다는 훨씬 진짜 같다”고 설명했다. ‘모사 미트(Mosa Meat)’라는 회사까지 설립하고 본격적인 상업화에 나선 포스트 교수는 올해 10월 “5년 이내에 인공 소고기를 상용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드는 이 연구에 네덜란드 정부는 물론 구글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도 수백억 원을 투자했다.

현대판 연금술은 이미 오래전 예견됐다. 1932년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50년 후의 세계’라는 수필에서 “50년 후 가슴살이나 날개를 먹으려고 닭을 키우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대신 원하는 부위만 골라 키워낼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 시기는 빗나갔지만 예언은 적중했다. 2000년대 들어 소·돼지·닭과 같은 가축을 사육하는 대신 세포나 채소로 고기를 만드는 회사가 생겼다. 미국 대형마트에서는 이미 인공 고기가 팔리고 있다. 이런 ‘가짜’에 세계적인 기업들이 돈줄을 대기 시작했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는 “식량 부족, 환경오염, 식품 안전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배양육과 같은 미래 식품이 대안”이라며 “각국 정부와 세계적 기업의 지원이 활발한 만큼 늦어도 2030년에는 배양육이 우리 식탁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빌 게이츠, “미래 음식의 모습” 격찬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CKH홀딩스의 리카싱 회장, 코슬라 벤처스의 비노드 코슬라 대표가 미국의 햄버거 벤처업체인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s)’에 투자한 규모는 모두 1억800만 달러(약 1245억원)다. 구글은 아예 이 회사를 3억 달러(약 3459억원)에 사들이려고 했지만 업체의 거절로 무산됐다. 2011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 생물학자 겸 의사 출신인 패트릭 브라운이 설립한 이 회사는 아몬드와 마카다미아(호주산 견과류) 등 식물성 재료로 햄버거 패티와 치즈를 만든다. 과거 콩·밀·두부 등으로 고기 맛을 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맛·향·색·육질은 물론 촉감·식감 심지어 영양 성분도 진짜 고기와 같다. 오히려 콜레스테롤·포화지방·트랜스지방 등 나쁜 성분이 없다. 이 업체는 내년에 가짜 고기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호르몬·항생제 등 실제 고기 속 나쁜 성분이 없는 식품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첫 상용 식품은 2016년에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2년 뉴욕타임스 식품 전문기자이자 베스트셀러 요리책 저자인 마크 비트만은 한 시식회에 참석했다. 같은 멕시코 음식 두 접시가 식탁에 올랐다. 하나는 진짜 닭고기로, 다른 하나는 가짜 닭고기로 만들었다. 이 사실을 모르고 두 음식을 먹은 마크 비트만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다”고 평했다. 이 블라인드 시식을 제안한 회사인 ‘비욘드 미트(Beyond Meat)’는 콩과 채소로 가짜 닭고기를 생산한다. 2013년부터 미국 대형 유기농 식품 체인점인 ‘홀푸드’와 계약을 맺고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에단 브라운 대표는 현지 언론을 통해 “농장에서 기르는 닭은 동물 취급을 받지 못한다. 곡물을 먹고 고기를 생산하는 기계에 가깝다”고 가짜 닭고기를 생산한 이유를 설명했다. 2009년 설립된 이 회사에 빌 게이츠는 물론 트위터 공동 창업자인 에반 윌리엄스와 비즈 스톤 등이 투자했다.

에이즈를 연구하던 조슈아 테트릭 박사가 2011년 만든 회사인 ‘햄프턴 크릭(Hampton Creek)’은 설립 2년 만에 3000만 달러(약 340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그 비결은 완두콩, 수수기름과 단백질로 만든 달걀이었다. 이 개발에 왈도 세브린 페이스북 공동 설립자, 제리 양 야후 창업자,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 등이 경제적으로 지원했다. 진짜 달걀과 영양·성분·맛·향 등이 같으면서도 생산 비용은 48%나 저렴하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6개 식품 제조업체는 이 달걀을 이용해 마요네즈와 과자 반죽 등을 만들기도 한다. 빌 게이츠는 이들 식품을 미래 음식의 모습이라고 격찬한 바 있다. 조슈아 테트릭 대표는 “최신 과학기술을 이용해 트랜스지방이 없는 건강한 식품을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이 집적된 3D 프린터를 이용해 고기를 만들어내는 기업도 있다. ‘모던 메도(Modern Meadow)’다. 가축의 근육세포를 배양해 흐물흐물한 점액질 상태로 만들고, 이를 3D 바이오 프린터에 넣으면 일회용 반창고처럼 보이는 고기 조각이 출력된다. 그 조각을 합치고 향·비타민·철분 등을 첨가하면 가짜 소고기가 탄생한다. 의료용 인공 장기를 만드는 방법을 응용해 이 기술을 개발한 이 업체는 가죽도 만든다. 천연 가죽 흉내만 낸 인조 가죽이 아니라 실제 가축의 세포를 배양해 만든 인공 가죽이다. 가방·구두·의류 업체는 물론 자동차 제조사들과 협력 관계를 논의 중이다. 이 기술에 미국 농무부는 700만 달러(약 80억원)를 지원했고, 페이팔의 피터 틸 창업자 등도 투자를 결정했다. 안드라스 포르각 대표는 “2050년 고기·유제품·달걀·가죽 수요에 맞추려면 1000억 마리 이상의 가축이 필요하다”며 “생체 조직 제조 기술을 이용하면 동물을 죽이지 않고도 고기와 가죽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밖에도 가짜 우유와 가짜 물고기를 만드는 실험도 세계 각지에서 진행 중이다. 이기원 서울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는 “인공 고기 기술은 이미 완성됐고 앞으로 부족한 육류 소비를 보완하게 될 것”이라며 “인공 고기를 상업화하려면 안전성, 생산 방법 등에 대한 제도를 마련해두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몬드 등 견과류로 만든 패티와 치즈가 들어간 햄버거. ⓒ Impossible Foods

IT기업, 미래 문제 해결 이미지 얻을 수 있어

현재 세계 인구는 73억명이고, 2050년엔 96억명에 이를 전망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50년까지 식량을 70% 증산해야 한다. 세계 육류 소비량은 2억8000만톤인데, 2050년엔 5억톤, 즉 현재보다 2배 많은 가축 1000억 마리가 필요하다. 지금의 가축 사육 방식으로는 육류 소비를 감당할 수 없다.

고기가 가정의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도축장·트랙터·트럭 등에 화석연료가 소모된다. 가축이 내뿜는 메탄가스는 지구 온실가스의 51%를 차지한다. 닭고기 450g을 얻기 위해 사료 3.4㎏과 물 30리터가 필요하다면, 인공 닭고기는 식물성 재료 500g에 물 2리터면 충분하다. 유럽연합(EU) 등의 연구에 따르면, 인공 고기는 에너지 소비를 45%, 온실가스 배출을 96% 각각 줄일 수 있다. 물도 일반 가축 생산 때의 4% 수준만 이용한다.

미국에서는 콩과 곡류로 만든 닭고기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세계 식량 시장은 2014년 5조8000억 달러 규모에서 2020년 6조4000억 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이는 2020년 IT 시장(3조5000억 달러)과 자동차 시장(1조6000억 달러)보다 각각 1.5배, 3배나 많은 수치다. 가짜 고기에 투자하지 않을 수 없는 배경이다. 특히 IT기업은 이와 같은 연구에 자신들의 기술을 접목할 여지가 있고, 미래 문제들을 해결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도 얻을 수 있다.

인공 고기 개발의 걸림돌은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불쾌한 골짜기)다. 사람은 로봇과 같은 사물이 자신과 흡사할수록 호감을 느끼지만, 그 정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오히려 혐오감을 느낀다. 정교한 가짜라는 인식이 생긴다. 인공 고기는 이미 진짜 고기와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도달했다. 앞으로 진짜 고기에 있는 나쁜 성분을 제거하고 오메가3 지방산 등을 첨가해 영양을 강화한 가짜 고기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식품공학 전문가인 최낙언 시아스(식품업체) 이사는 “진짜 고기보다 우월한 가짜 고기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을 극복하는 것이 숙제”라며 “인공 고기를 환자 처방식으로 먼저 사용하면서 거부감을 완충하는 방법도 있다”고 조언했다.

 

 

국내에서도 카카오·SK·LG화학·CJ제일제당 등이 농업 투자 나서 


구글은 올해 5월 토양 데이터를 분석해 생산성을 개선하는 농업정보회사인 ‘파머스비즈니스네트워크’에 1500만 달러(약 164억원)를, 10월에는 물 사용량을 줄이되 생산량은 늘리는 기술을 보유한 회사인 크롭엑스에 900만 달러(약 100억원)를 투자했다. 올해 10월 일본 최대 IT 투자기업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내년 봄 홋카이도에 농업 생산 법인을 설립하고 농업 산업(agro-biz)에 본격 진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본 종합무역상사 스미토모는 쌀 생산·판매에, 전자회사 소니는 농업용 드론 개발에 나선 상태다. 후지쓰, 도시바, 도요타도 농업 산업에 참여하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은 인공 고기 개발과 농업 산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반면 우리는 인공 고기 개발은커녕 낙후된 농업 산업 개선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나마 일부 대기업이 농업 산업에 관심을 둔 것이 고무적이다. SK는 SK텔레콤의 주력 기술인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농업에 접목했다. 지난해 세종시 인근 비닐하우스 100곳에 스마트팜(농사 기술에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한 지능화된 농장)을 설치했다. 정보통신 기술로 최적화된 영농 환경을 만들어 우수한 농작물을 얻으려는 시도다.

카카오는 아예 농사를 지을 작정이다. 올해 10월 농업 법인 ‘만나CEA’ 지분 33%를 사들였다. 만나CEA는 ‘수경재배 유기농’ 작물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기반으로 농작물을 생산하는 회사다. LG화학은 최근 동부팜한농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동부팜한농은 국내 농약 시장 점유율 1위(27%), 비료·종자 시장에서는 2위(19%)인 농자재 기업이다. 그룹 계열사인 LG생명과학과 더불어 농약 원료 개발 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식품업계의 강자 CJ제일제당은 종자 개발에 나섰다. 올해 3월 종자 법인 ‘CJ브리딩’을 설립했다. 쌀·콩·녹두·고추·배추·참깨·김 등 농산물의 우수 종자를 연구·개발해 우수 식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기원 서울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는 “농업 분야에 늦었다고 판단한 삼성은 화학과 방위산업을 접는 대신 바이오산업에 집중하는 분위기”라며 “공정 최적화에 앞선 기업이니만큼 신약 개발, 원천기술 확보보다 복제약을 대량 생산해 싼값에 공급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국산 농산물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 기업이 이를 개선하려 해도 제도 부재(不在)와 국민 정서로 어려움이 많다. 지난해 동부팜한농은 수출 전용 토마토 사업을 시작했으나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좌초됐다. 기업이 한국 농산물의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해도 농민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규제도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농식품부 주최로 열린 농업 산업 발전 포럼에서 이계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기업이 농업 법인 지분 30% 이상을 소유하면 ‘기업집단’으로 분류돼 공정거래법을 적용받는다고 지적했다. 기업집단에 포함되면 각종 지원을 받지 못하고 법인세 혜택 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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