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때려 죽였는데 고작 ‘징역 3년’
  • 정락인│객원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5.12.08 17:47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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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박준호씨 사망 사건 가해자들 솜방망이 처벌 논란…유족들 “억울하다” 분노
고 박준호씨의 생전 © 고 박준호씨 유족 제공

이런 억울한 죽음이 또 있을까. 부산에 살던 박준호씨는 지난 5월31일 사망했다. 향년 32세.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나이였다. 박씨는 길을 가다가 술에 취한 20대 남성 2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그러고는 직접 치안센터에 가서 신고까지 한 후 쓰러졌다. 조금만 더 일찍 병원으로 옮겨졌다면 살릴 수도 있었겠지만 치안센터는 그를 ‘주취자(酒醉者)’로 인식하고 병원으로 후송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건이 일어난 후 약 6개월 만에 피해자들에 대한 재판이 열렸는데, 재판장은 상해치사죄의 최저 형량인 ‘징역 3년’을 선고해 네티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도대체 박준호씨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지난 5월23일 토요일. 박씨는 부산 사하구 하단2동의 한 노래방에서 새벽까지 후배 2명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는 노래방에서 나온 후 길을 지나가다 5명의 다른 일행과 마주쳤다. 그중 김 아무개씨(23) 등 2명이 “쳐다봤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면서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폐쇄회로(CCTV)를 보면 가해자 김씨가 먼저 무릎으로 폭행했고, 박씨가 바닥에 쓰러지자 얼굴과 머리를 또 다른 일행이 사정없이 발로 찼다. 담당 형사가 “무자비하게 찼다”고 표현할 정도였고, 머리를 폭행당한 박씨의 두개골은 함몰됐다.

얼마 후 가까스로 일어난 박씨는 현장에서 100여 m 정도 떨어진 치안센터로 걸어갔다. 박씨의 손과 바지 여기저기에는 코에서 흘린 피가 묻어 있었다. 박씨는 치안센터 소파에 엎드리더니 갑자기 막 발버둥치고 몸부림치다가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CCTV를 보면 박씨는 치안센터에 있는 동안 머리를 감싸쥐며 괴로워했고, 바닥에 쓰러진 뒤에는 손을 바닥에 내리치면서 살려달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박씨는 1시간 6분이 지난 후에야 멀쩡하게 걸어들어간 치안센터에서 후배에게 들려나왔다. 집에 돌아올 때는 의식이 전혀없는 상태였다. 박씨의 부모는 아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입을 열어 보니까 혓바닥이 많이 꼬여 있고, 입술색깔도 파랗게 변해 있었고, 평소 코를 골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이날은 유난히 코를 많이 골았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싶어 119를 불렀다.

박씨가 대학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태였다. 담당 의사는 “단순하게 주먹으로 맞은 게 아니라 망치나 몽둥이, 쇠뭉치 이런 걸로 때리면 모르겠지만, 머리에 금이 저렇게 갈 정도로 심한 충격이 가해졌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의 폭행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씨는 폭행당한 후 약 12시간이 지나서 수술을 받았지만, 살아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결국 8일간의 소생 노력에도 불구하고 박씨는 끝내 숨을 거뒀다. 유족들은 경찰의 방치가 박씨를 죽게 했다고 판단했다. 경찰관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부산지방검찰청에 ‘직무유기와 유기치사’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지난 8월1일증거불충분(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술 취했고 앞길 창창하다”며 선처

사건 이후 가해자들은 어떻게 처리됐을까. 부산 사하경찰서는 폭행 사건 하루 만인 5월24일 새벽 가해자 2명을 긴급 체포했고,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나머지 일행 3명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경찰은 폭행 가해자 2명을 중상해 혐의로 구속 수사한 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는데, 박씨가 사망함에 따라 검찰은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그리고 지난 11월27일 오전 부산지방법원 301호 대법정에서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20대 초반의 가해자 두 명에 대한 1심선고가 내려졌다. 재판장은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곧바로 방청석에서 고함소리가 터졌다. 박씨의 어머니였다. “이 사람들아, 빵을 훔쳐도 3년은 더 살더라. 사람이 죽었다. 우리 아들이 죽었다”고 재판부에 항의했다.

법정 경위들이 쏜살같이 달려와 박씨 어머니를 제지했지만, 차마 법정 밖으로 끌어내지는 못했다. 그사이 재판부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박씨의 어머니는 오열하다 끝내 실신하고 말았다. 재판을 지켜본 유족들은 “말도 안 된다”는 말만 연신 내뱉으며 법정을 떠났다.

‘징역 3년’은 ‘상해치사죄’의 최저 형량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술에 취했었고,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고, 죽을 줄 모르고 때렸기 때문’이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한마디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죽일 의도로 때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피고인들의 앞길을 염려해 ‘3년 형’을 선고했다는 것이다. 검사구형(각각 징역 9년, 8년)의 절반에도 못 미친 형량이다. 검사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항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술을 마시고 범죄를 저지르면 모두 감경의 사유가 될까. 이에 대해 임방글 변호사는 지난 6월5일 한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술 마시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법정에서는 절대 안 통한다. 형법 10조에서는 어떤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르면 형을 감경한다고 되어 있지만 심신미약은 술 마신 상태에는 거의 적용되지 않는다. 정신병이 있거나 이런 정도를 의미한다. 술을 마신 경우에 정말 명백하게 ‘실수했구나’ 하는 경우에는 형을 약간 감형해주는 정도만 있지, 술 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해도 감형은 절대 없다고 봐야 한다.”

임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가해자들에게 선고된 형량은 나올 수가 없어 보인다. 이들의 폭행을 보면 “무자비하다”고 할 정도였고, 여기에 한 명도 아닌 두 명이 가담했다. 그런데 판사는 왜 이들에게 ‘징역 3년’의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일까. 유족들은 여기에 분개한다. 빵을 훔쳐도 징역형을 3년은 사는데, 하물며 사람이 죽었는데 3년이라니…. 실제 조 아무개씨는 2010년 전남 보성군의 한 배추밭에서 배추 2포기를 뽑다 마을 주민에게 들켰다. 이후 도망치는 과정에서 주변 나뭇가지로 자신을 붙잡고 있는 마을 주민을 수차례 때린 혐의(강도상해)로 기소돼 징역 3년6월의 실형에 처해졌다. 이에 비하면 박씨를 죽인 가해자들의 형량은 대다수 국민들의 법 감정에 맞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박씨의 동생 신욱씨는 “너무 억울하다. 우리 가족은 형의 죽음으로 인해 희망이 사라졌다. 행복도 깨졌다”며 “부모님은 매일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잘 정도다. 어머니는 밤마다 ‘준호야, 준호야’를 부른다”고 전했다. 살인자들에게 ‘앞길이 창창하다’며 솜방망이 처벌을 하면, 그들이 죽인 32세 젊은 청년의 죽음과 가족들의 삶은 어디에서 보상을 받아야 할까. 만약 재판장이 피해자의 아버지라면 이런 처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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