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과의 대화] 하찮은 너 따위가 이런 행복을…
  • 배상훈 |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 (프로파일러) (.)
  • 승인 2015.12.10 17:18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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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 미혼 여성, 여고 동창생과 자녀들 살해… 자신보다 못한 친구가 행복한 건 잘못됐다 ‘강박성 인격장애’

2003년 12월29일 오후 7시쯤 서울시 송파구 거여동 P 아파트 7층. 남편 C씨(당시 34세)는 자신의 집 현관문이 잠겨 있고 인기척이 없자 B씨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B씨는 의논 끝에 복도 쪽 방의 창문을 열고 열쇠가 든 손가방을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집 안으로 들어간 남편 C씨는 잔혹하고 충격적인 광경에 기겁을 했다. 얼굴에 치마를 뒤집어쓴 부인 A씨(당시 31세)가 빨랫줄로 목이 매어진 채 사망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다 세 살과 한 살(10개월)인 어린 두 자녀도 보자기나 비닐봉지에 의해 질식사한 상태였다. 현장 상황만으로 볼 때 동반자살(이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 ‘자녀 살해 후 자살’로 정정해야 하지만 일단 동반자살로 기술한다)이 의심됐다.

ⓒ 일러스트 오상민

타살로 보기에는 현장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먼저 현관문이 안으로 잠겨 있었고, 외부 침입을 의심할 만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숨진 부인 A씨가 갖고 있던 집 열쇠는 복도로 창이 난 작은방의 책상 위에 놓인 핸드백 안에 있었다. 창문을 통해 외부에서 침입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복도 쪽 창문은 닫혀 있고 방범창의 창살도 훼손된 흔적은 거의 없었다. 시신에 대한 초기 검안(檢案)에서도 외력(外力)에 의한 살해를 의심할 흔적은 없었다. 숨진 A씨에게서는 저항흔도 발견되지 않았다. 빨랫줄이 매달린 방문 위틀에도 타인의 외력을 의심할 만한 흔적이 없었다. A씨를 빨랫줄로 끌어올릴 때 생기는 마찰흔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제 자살로 정리하면 될까. 그런데 자살이라고 하기에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만약 A씨가 자녀들과 동반자살을 계획할 정도의 심리 상태라면 관련 정황과 전조 증상이 나타났어야 했다. 그런데 탐문 결과 A씨는 그 흔한 우울증도 없었다고 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도 나타나지 않았다. 자살의 핵심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변사 사건 처리의 핵심인 ‘변사자에 대한 심리 부검’은 이뤄지지 않았다. 담당 경찰은 직감적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겉보기에는 자살과 연결돼 있었으나 무언가 막힌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피살자 친구의 남편과 불륜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은 변사를 살인으로 가정한 후 사건을 하나하나 되짚었다. 굳이 죽일 것까지 없는 어린 자녀들까지 잔인하게 살해할 정도라면 면식범일 가능성이 크다. 일단 부부와 가까운 지인들이나 주변인들에 대한 탐문 조사를 펼쳤다. 그러던 중 A씨의 집에 자주 놀러 오던 여고 동창 B씨를 참고인으로 불렀다. 그런데 조사 도중 담당 형사는 B씨의 손등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마치 줄에 눌린 자국처럼 보이는 상처가 있었던 것이다. B씨는 진술 과정에서 그 상처를 감추려는 행동을 보였다.

B씨가 범인일 수 있다고 본 담당 형사는 그녀의 집을 수색했다. 아니나 다를까 의심스러운 물건이 나왔다. 잘려진 페트병이었다. 담당 형사의 계속된 추궁에 B씨는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녀가 밝힌 살해 수법은 나름 치밀했다. 사건 당일 오후 5시쯤 친구 집에서 같이 TV를 보던 B씨는 A씨에게 ‘깜짝쇼’를 준비했다며 치마를 머리에 둘러쓰게 했다. 눈을 감은 채 B씨의 손에 이끌려 방문 쪽으로 이동한 A씨는 빨랫줄로 미리 만들어놓은 올가미에 목이 졸렸다. 영문도 모른 채 저항할 새도 없이 죽어간 것이다. B씨는 페트병 자른 것을 이용해 줄 자국이 나지 않도록 했다.

이때 두 아이는 이미 살해된 후였다. 이모처럼 믿고 따랐던 세 살배기 첫째 아이를 작은방으로 데려가 보자기로 목을 졸라 살해한 데 이어 한 살 딸아이는 비닐봉지로 질식시켰다. 범행 당시 B씨는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B씨는 범행을 마친 후 집 안 곳곳을 다시 청소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A씨의 집 열쇠로 현관문을 잠근 후 그 열쇠를 넣어둔 핸드백을 창문 틈으로 작은방에 던졌다. 이렇게 완전범죄를 꿈꿨다. 하지만 고무장갑을 꼈다고 해도 빨랫줄을 당길 때 손등과 손가락에 줄 모양의 상처가 날 줄은 몰랐다. 또 그 상처가 일정 시간 동안 남아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랬다면 자신의 손등에 화상 자국을 내서라도 그 상처에 대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감췄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사실이 하나둘 드러났다. 범행 당시 B씨는 친구 A씨의 남편 C씨와 불륜 관계에 있었다.

매사 꼼꼼한 완벽주의자

B씨는 왜 자신의 여고 동창생과 그 가족에게 이토록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걸까. 경찰에서 한 진술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여고 시절 단짝 친구였던 A씨와 B씨는 오랫동안 못 보고 지내다 2년 전 인터넷 동창 모임을 통해 다시 만났다. 이후 B씨는 일주일에 2~3차례 A씨 집에 놀러 와 아이까지 돌봐주는 등 아주 가깝게 지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A씨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B씨는 그 이유에 대해 “친구가 내가 보는 앞에서는 잘해주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내가 결혼하지 못했다고 무시하는 것 같았고, 친구 시댁에서도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B씨는 평소 휴대전화로 C씨에게 ‘당신같이 좋은 사람이 왜 그렇게 빨리 결혼했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B씨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31세의 미혼 여성인 B씨는 경제적으로 유복했지만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들로부터 무관심과 기피의 대상이었다. 성격적으로 볼 때 매사에 꼼꼼한 완벽주의자였다.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을 일일이 메모할 정도로 규칙적이고 엄격했는데, 그만큼 독단적이며 융통성이 없었다. 자신이 세운 계획에 차질을 빚는 상황이나 방해 요인이 나타나면 참을 수 없이 불안해했다. 이는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도 드러났다. 자신의 뜻대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컨트롤하려 했던 것이다. 상황을 통제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이면서 강박에 가까운 행동을 했다. 감성과 이성이 분리돼 반사회적인 인격장애를 동반하게 됐다.

외톨이라고 해서 힘이 약한 왕따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때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여겼다. 외톨이라서가 아니라 자신보다 못한 애들과 거리를 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자기중심의 외톨이에게도 배설구 같은 게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런 존재가 바로 학교 동창인 A씨였던 것이다. 물론 A씨는 B씨가 조금 불쌍한 외톨이 친구라고 생각했겠지만, B씨는 A씨를 전혀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다. 늘 자기보다 못한 존재로, 자기가 데리고 다니는 일종의 ‘몸종’으로 여겼던 것이다. 바로 이 관계가 B씨가 여고 동창 A씨를 잔인하게 공격하는 전제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B씨의 이러한 성격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경제적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지나치게 엄격한 가정 분위기 등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으로 유추된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던 B씨는 부모와의 애착 관계에 문제가 있었다. 부모로부터 애정을 받고자 했지만 부모는 자신에게 무관심했다. B씨는 이를 상당히 부당하게 여겼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부모를 포함한 가족들의 일에 과도하게 관심을 기울여왔었다고 한다. 가족들이 애정과 지지로 보답해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기대와 달리 가족들은 오히려 그녀를 부담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B씨는 깊이 좌절하고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껴왔다고 한다.

B씨가 가진 강박적인 성격에는 아무래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의 경우 좋게 말하면 ‘자유방임’이지만 본질적으로 자녀에 대해 ‘무책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부모, 특히 어머니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대인 관계를 배운다. B씨의 경우 어머니가 ‘자기애적 인격 성향’이 강했다고 하니, 어머니로부터 사회성과 관련된 상호 감정 교류를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이 경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정서적 유대 관계의 결핍으로 인한 ‘경계성 인격장애’ 가능성이다.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거절과 거부에 대한 두려움이 큰데, 이런 사람들은 꾸준한 대인 관계를 못 갖고 사람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건강한 대인 관계를 맺지 못한 채 마음을 닫고 스스로 고립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여고 동창생 가족을 살해한 혐의로 긴급구속된 B씨가 2003년 12월30일 피의자 신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자살로 꾸며서 완전범죄 노려

경찰 진술에서 수사관들은 B씨가 A씨에게 질투를 느꼈다고 표현하지만 그게 단순한 질투는 아니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자신보다 못한 존재이자 자신이 데리고 다녔던 A씨가 자신이 가지지 못한 남편·자식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질투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질투보다도 B씨와 같은 강박성 인격장애를 가진 경우에는 스스로 양심적이고 도덕적이라는 높은 기준을 만들어놓는다. 따라서 친구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는 행동을 잘못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이 당연히 가져야 할 것을 가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보다 부족한 A씨가 행복한 가정을 꾸린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C씨가 자신을 선택한 것이라고 정당화했다. 그처럼 부족하다고 여겼던 A씨가 잘난 자신을 비난하자 이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B씨에게 여고 동창 A씨는 제거돼야 할 대상이 됐다. 그 친구만 사라지면 자신이 원하는 행복한 가정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강박에 가까운 꼼꼼함을 가진 B씨는 범행 한 달 전부터 피해자의 일상을 체크했다. 완벽하게 자살로 꾸미기 위해 범행 도구 또한 치밀하게 준비했다. 범행에 사용한 빨랫줄과 스카프는 피해자의 집 안에 있던 물건들을 사용했고, 물건 구입에 사용한 돈은 모두 현금으로 지불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 B씨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범행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기대했던 완벽한 상황에서 범행을 수행할 수 없게 되자 그때마다 범행을 포기했었다. 세 번째 범행을 결심한 사건 당일, 그날 또한 자신이 정한 계획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았다. B씨는 오후 3시에 다른 일로 A씨 집에 다녀갔었다. 150만원의 돈을 주고 왔는데 매우 허술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경찰은 당연히 피해자 주변을 수사할 것이며, 그 수사에는 당일 행적이 포함될 것이기 때문이다. 곧바로 사건 관련자로 포착될 수 있는 행동을 한 셈이다.

B씨는 연말에 A씨와 C씨의 가족이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했다. 그 상상의 한 귀퉁이에는 쓸쓸히 혼자 방 안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강박증 환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C씨가 전화하자 바로 달려갔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편 C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을까. 우선 B씨가 가진 남자에 대한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B씨에게 남자는 단순한 애정의 대상을 넘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또 하나의 ‘몸종’ 같은 존재였다. C씨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한 가족이라는 가상공간에 어울리는 인형으로 여겼을 것이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완벽한 범죄행위에 공범으로 끌어들일 만한 존재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증명해주는 진술이 있다. B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A씨의 애들을 왜 죽였느냐’는 질문에 “걔 옆에 있으니까, 걔 혼자 못 가니까”라고 답변했다. B씨에게 A씨 가족은 그냥 자신보다 못한 하찮은 존재인 것이다. 이들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은 행동에 대해 후회나 참회 같은 것도 필요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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