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러브콜’은 끝났다
  • 유재순│일본 제이피뉴스 대표 (.)
  • 승인 2015.12.10 17:38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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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 청와대에서 푸대접 받아”…아베, 박 대통령 일절 언급 안 해

기자는 지난 11월2일에 있었던 한·일 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서울에 다녀온 전 한국 특파원 출신 일본 기자를 만났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역시 한국과 일본은 태생적으로 견원지간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누군가를 만나면 당연히 같은 곳을 바라보거나 한 가지 공통된 사안을 가지고 얘기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인과 한국인이 만나면 그게 안 된다. 일본인이 동쪽에 대해 얘기하면 한국인은 서쪽에 대해 얘기한다. 이는 양쪽 모두 똑같다. 특히 정치적인 이해득실에 가장 예민한 정치인 관계는 더욱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그러면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했다.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서로 회담 내용과 시간을 조율하기 위해 양국의 실무진이 바쁘게 움직였다고 한다. 그런데 낮에는 양국의 입장에 따라 첨예하게 부딪치던 사안들이 밤에 사적으로 만나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한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서로 양보도 잘한다는 것.

박근혜 대통령이 11월30일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기념촬영을 기다리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밤에 이뤄지는 양국 실무진의 사적 만남은 아무런 영향도, 기능도 발휘하지 못한다. 때문에 낮에는 서로 으르렁거리며 부딪치던 사람들이 밤만 되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 난관을 어찌할꼬?”라며 한탄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일 정상회담도 일본 언론의 보도처럼 아무런 소득 없이 “무사히 끝났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막을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우선적으로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확실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일본은 “과거 식민통치 시절에 있었던 모든 피해는 1965년 한일협정에서 모두 정산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회담은 최소한의 성과도 없이 양국 정상이 사진 찍고 악수하는 것으로 끝났다.

아베의 부친은 ‘친한파’ 신타로 前 외무장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해왔다. 한국에 가서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도 갖고 한국 음식을 먹으며 한국 문화를 즐기고 싶다는 의사를 거듭 밝혀왔다. 그래서 일부 일본 기자들은 아베 총리를 가리켜 ‘친한파 총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에는 극우 성향으로 알려져 있지만, 적어도 제2기 집권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친한파 정치인이었던 것이 맞다. 그 근거는 그의 아버지인 고(故)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무장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베 신타로 전 외무장관은 대표적인 친한파 정치인이었다. 그에게는 수시로 만나 인간적으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한국 정치인이나 기업인 친구가 많았다. 또한 도쿄 아카사카(赤坂)에 단골 한국 식당과 술집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과의 교류가 깊었다.

당시 아베 신타로 전 외무장관을 수행하던 비서가 다름 아닌 그의 아들 아베 신조 현 총리다. 아베 총리는 아버지의 비서 생활을 하면서 직간접적으로 한국인과 만나는 일이 잦았다. 그만큼 호불호(好不好)에 관계없이 환경적으로 한국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아베 총리가 집권하기 전 일부 일본 언론에서 그의 고향이자 선거구인 야마구치(山口)현의 재일동포 기업인들과 친밀한 관계라고 보도를 한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현지 파친코업계 재일동포 기업인들이 그의 정치자금을 후원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태생적으로 동류 의식을 느껴 기회 있을 때마다 러브콜을 보냈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월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를 ‘홀대’해 더 이상의 미련을 갖지 않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아베 총리를 담당해왔던 일본 기자들은 한목소리로, 아베 총리가 왠지 박 대통령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해왔다. 아베 총리는 자신과 박 대통령이 태생적으로 거물 정치인 아버지를 둔 2세 정치가로, 현재 또한 양국의 최고 지도자라는 공통점이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면 뭔가 잘 통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아베 총리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한국과 관련된 기자회견을 열 때마다 하루빨리 박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일본 언론이 톱뉴스로 연일 보도할 정도로 아베 총리의 러브콜은 계속됐다. 때문에 아베 총리 주변에서 너무 지나치게 적극성을 띠는 것 아니냐고 제동을 걸 만큼 박 대통령과의 회담에 심혈을 기울여온 것이 사실이다.

한·일 양국 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아베 총리는 의외로 낙관적이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과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다 보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래서 하루빨리 직접 만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 또한 아베 총리의 이 같은 의욕에 마취(?)돼, 박 대통령과 만나기만 하면 양국 사이에 쌓여 있던 현안들이 일시에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언론을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도 그대로 전이돼, 양국 정상이 만나기만 하면 한·일 관계가 금방 좋아질 것이라고 모두들 굳게 믿고 있었다.

“동방예의지국, 집에 온 거지에게도 밥은 줘”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실제로 기대는 한순간에 실망으로 바뀌었다. 특히 일본 국민들이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은 정상회담이 끝난 후 아베 총리의 점심 식사 때문이었다.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과 회담한 후 일본대사관 근처 한정식 집에서 일본대사 등 수행원 일행과 점심 식사를 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일본인들이 일제히 분노를 터뜨렸다.

일본인들이 알고 있는 한국의 손님 대접에 대한 상식은 이러했다.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으로서 집에 손님을 초대하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가득 차려내 융숭한 대접을 한다. 또한 일반 서민 가정집에서도 거지가 찾아오면 그냥 돌려보내는 일 없이 찬물에 밥을 말아서라도 먹여서 보낸다.’

위 내용은 한·일 정상회담이 끝난 후 한 민영 방송에서 방영한 한국 특집 내용이다. 이 방송에 출연한 게스트들은 “아무리 아베 총리가 청와대로부터 푸대접을 받았다고 해도 한국 정서상 찾아온 손님에게 한 끼 식사 정도는 대접하는 것이 기본 예의가 아닌가”라며,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놓은 상차림 영상까지 보여주며 비판했다.

신문들 또한 한국의 전통적인 손님 대접 정서를 거론하며 ‘속 좁은 외교 결례’라고 꼬집었다. 특히 회담 전 일본 정부가 몇 차례에 걸쳐 박 대통령과의 점심 식사를 요청했는데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일본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양국의 공동 기자회견도 하지 않아 ‘외교’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결국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면 양국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큰 기대를 걸었던 일본 언론과 국민들은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아베 총리의 박 대통령에 대한 동질감의 ‘환상’은 일장춘몽으로 막을 내렸다. 실제 아베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을 다녀온 이후 공식적으로 박 대통령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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