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에서 남자들이 마음을 더 많이 앓고 있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5.12.10 17:45
  • 호수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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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 대한 심리 에세이집 <오늘의 남자> 펴낸 김형경 작가

11월26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을 방송을 통해 지켜본 김형경 작가는 매주 쓰는 한 일간지의 칼럼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성장기 동안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감정, 생존법, 자기 이미지 등의 복합체다. 성인이 된 후에도 성취나 좌절, 기쁨과 슬픔의 순간마다 그 경험을 내면의 부모와 공유한다. 부모에게 기대하거나 기여하는 일, 부모를 원망하거나 미화하는 일은 자기 문제를 외부로 투사하는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다. 하지만 부모가 사망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사라진다. 삶의 해법, 의미, 정체성조차 흔들린다. 50세가 되어도 부모 없는 상태가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인간 본질에 대한 중요한 통찰에 도달한다. 어른인 척하고 살았지만 내면에서 여전히 아이였다는 것을. 그때부터 성장과 변화가 따라온다. 서설(瑞雪) 흩날리는 국가장 의식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지켜보는 동안 국민의 변화도 같은 방식으로 오는 걸까, 의문이 눈보라 같다.’

칼럼의 꼭지명은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다. 김 작가가 2년 전 이맘때 펴낸 심리 에세이집 <남자를 위하여>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김 작가는 당시 필자와 인터뷰하고 헤어지면서 “우리 사회가 에리히 프롬이나 프로이트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잘 먹고 잘살 때까지 우리 마음을 너무 방치해놓았다가 이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서로 성찰하고 남녀가 서로를 이해해 관계를 잘 만들어갈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내다봤다.

ⓒ 시사저널 이종현

그런데 아직도 현실은 희망적이지 않나 보다. 남녀가 관계를 잘 만들어갈 것이라는 건 일부에 국한된 이야기고, 세상은 그다지 진화하지 않았다. 김 작가는 최근 남자에 대한 또 한 권의 심리 에세이집 <오늘의 남자>를 펴냈는데, 2년 전의 바람을 그대로 담고 있어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이 글들을 쓰기 시작할 때의 의도는 한없이 벌어져가는 남녀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었으면 하는 거였다. 현실에서 만나는 여성들은 남자의 실체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지했다. 그들은 남자 인간을 보는 게 아니라 내면의 남자 환상을 원하고 있었다.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여성들이 자존감으로 무장한 채 주체적으로 변해가는 동안 남자들은 자기 내면을 알지도 표현하지도 못한 채 여자들을 못마땅해하는 상태로 머물렀다.”

문제는 남녀 관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고서는 자녀에게 심각한 심리적 문제를 물려주기 때문이다. 김 작가가 더욱 안타깝게 생각하게 된 이들은 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고통부터 떠안는 청소년과 청년들이었다. 그들을 도우려면 우선 부모 세대가 변해야 한다고 김 작가는 믿었다. 부모가 변하려면 부부가 서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거나 부딪치는 일들을 개선해야 할 터.

“아픈 남자가 나쁜 남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사회적 역할을 해내느라 버릇처럼 감정을 억압하는 남자들은 슬픔을 경험하면서 고통을 지나가는 애도 과정을 밟기 어렵다. 그 결과 고통이 연장되면서 갈수록 더욱 힘든 감정 상태에 처한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입 밖에 내어 고통을 말하는 여자보다 침묵 속에서 남자들이 마음을 더 많이 앓고 있다고 설명한다.”

여자와는 확연히 다른 방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남자의 심리를 들여다본 것이다. 안부를 묻는 대신 술잔을 채워주고, 수다로 스트레스를 푸는 대신 무행동·무반응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남자, 야근에 시달리면서도 새벽 외국어학원을 찾는 남자들…. 그렇게 김 작가는 외출하기 전 오늘의 날씨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오늘의 남자’를 알고 세상에 나서기를 바랐다.

“늘 그렇게 생각해왔다. 가장 나쁜 사람이 가장 아픈 사람이라고. 폭력적이고 괴팍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가 성장기에 중요한 양육자로부터 그와 같은 것을 받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성장기 아이에게 단 한 명의 어른이라도 따뜻한 눈길을 주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잠재력을 믿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픈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 작가는 <오늘의 남자>를 내면서 남녀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환상을 버려 현실감을 되찾고 더욱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랐다. “남자들은 여자의 간접 어법이나 완곡한 ‘돌려 말하기’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 핵심만 정확하게 건네는 남자의 말하기 방식과 머뭇거리며 돌아가는 여자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자의 언어를 오해한다. 저녁 식사를 못하겠다는 말의 내용보다 그녀가 건네는 상냥한 말투를 먼저 인지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남자들이 대체로 나르시시스트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밥을 사주겠다고 하는데 감히 거절할 여자는 없다고 믿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소중한 존재로 대접받고, 엄마의 왕자로 자라나고, 남성 중심인 사회의 주인공으로 살면서 나르시시스트가 되지 않기는 오히려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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