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병력 1000여 명에 맞선 스님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5.12.15 17:11
  • 호수 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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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체포되기까지 긴박했던 조계사 24시
조계사 은신 25일째인 12월10일 자진 퇴거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53)이 결국 경찰에 체포돼 남대문경찰서로 압송됐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24분쯤 은신했던 서울 종로구 조계사 관음전에서 나왔다. © 시사저널 임준선

지난 12월9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한 조계사에서는 염불과 목탁 소리 대신고함과 욕설에 몸싸움이 난무했다. “조계사는 조계종 총본산으로서 대한불교 조계종을 대표하는 상징적 공간이며 부처님의 도량이자 1000만 서울 시민의 휴식처”라는 조계종의 설명을 무색하게 했다. 경찰이 11월16일부터 조계사에 은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강제 집행하기 위해 경내 진입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조계종 측은 “조계사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단지 체포영장이 발부된 한 개인을 강제 구인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계종, 나아가 한국 불교를 또다시 공권력으로 짓밟겠다는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지만 엄정한 법 집행을 내세운 경찰 앞에서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최종 시한 앞두고 물리적 충돌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12월8일 경찰은 다음 날인 9일 오후 4시를 기준으로 한 위원장이 자진출두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강제 집행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에 대해 조계종은 9일 오전 10시쯤 “경찰 병력이 조계사에 투입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음을 경고한다”면서 한 위원장에 대해서도 “공권력 투입이라는 폭력의 악순환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속한 결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를 시작으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기독교사회단체연합 등 종교계, 민주사회를 위한변호사모임 등 법조계, 참여연대·인권운동사랑방 등 사회단체들은 일제히 경찰의 강제 집행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은 조계종의 반발에도 조계사 주변에 600명 상당의 경찰 인력을 배치하고 강제 집행을 준비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은 오후에 접어들면서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2시를 넘어서면서 한 위원장이 거처하고 있던 관음전 주변에 폴리스라인이 둘러쳐지면서 취재진과 스님들을 제외하고는 출입이 제한됐다. 이에 맞서 조계사 측은 2시30분쯤 조계사 경내와 관음전을 잇는 구름다리를 해체해 경찰의 진입 경로를 최소화했다. 아울러 조계종 총무원과 산하 단체 소속 200여 명은 도심포교 100주년 기념관 건물 입구 세 곳에 모여 경찰의 진입을 막았다. 스님들은 목탁 소리에 맞춰 염불을 외기 시작했고, 신도들은 연등과 피켓 등으로 평화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조계사 측과 경찰의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장에 있던 보수단체 회원들은 “법치국가에서 범법자를 종교인들이 보호해주고 있다”며 격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최종 시한 한 시간 전인 3시를 넘어서면서 진입로를 확보하려는 경찰과 이를 저지하는 조계사 측 간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신도 20여 명이 연행됐으며, 4시쯤 경찰은 관음전 남쪽 출입구를 장악했다. 진입로가 확보되면서 수사형사 100명을 포함한 400명 상당이 추가 투입됐다. 사전에 배치됐던 600명과 더불어 1000여 명이 조계사에 배치된 것이다. 경찰은 4시를 넘어선 상황에서 관음전 주변에 매트리스를 설치하며 강제 집행 초읽기에 들어갔다. 경찰은 관음전 잠금장치 해정(解錠)을 조계사 측에 세 차례에 걸쳐 요구한 후 이에 불응할 경우 열쇠공을 불러 강제로 해정을 할 계획이었다. 강제 집행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한 위원장은 관음전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상황을 파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복 경찰관 20여 명이 관음전에 진입하려던 그때, 자승 총무원장이 전격적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10일 정오까지 한 위원장의 거취 문제를 해결하겠다. 영장 집행을 보류해달라”고 밝혔다. 4시를 훌쩍 넘어 5시 가까이 됐을 때였다. 자승 총무원장의 깜짝 발표로 경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경찰 수뇌부는 즉각 회의에 들어갔고, 자승 총무원장의 발표가 있은 지 1시간 후 결국 경찰 병력을 철수했다. 조계사의 숨 가빴던 하루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이튿날인 12월10일 한 위원장은 25일간의 조계사 은신을 마치고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고통과 불편을 감내해주신 조계종과 조계사 스님, 신도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운을 뗀 한 위원장은 “노동 개악 저지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1월30일부터 단식을 해온 한 위원장은 경찰 조사를 받는 도중에도 구운 소금만을 섭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위원장은 모두 9건의 집회에서 불법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일반교통방해죄, 주최자 준수사항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 더불어 경찰은 한 위원장에 대해 1차 민중총궐기대회에서 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한 위원장이 체포됐지만 ‘노동 개악 저지’를 내세운 민주노총의 대(對)정부 투쟁은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다. 최종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대행 체제에서 12월16일 총파업과 19일 제3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진행된다. 총파업의 경우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최소 15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금속노조는 모든 사업장에서 주야 각각 4시간씩 파업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1차 민중총궐기대회와 달리 2차 대회는 평화집회로 끝을 맺은 만큼 3차 대회 역시 충돌은 없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위원장의 구속으로 인해 과격 시위로 변질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12월9일 오후 4시 이후 조계사에 은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예고한 가운데, 경찰이 한상균 위원장 검거를 위해 조계사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노동 개악 저지 투쟁 계속될 것”

총파업과 3차 민중총궐기대회는 인사 시즌을 맞은 경찰에도 중대한 갈림길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찰은 올해 안에 치안정감·치안감 인사와 경무관급 인사를 마무리하고 총경급 인사는 내년 1월 발표할 예정이다. 12월16일과 19일의 집회 이후에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보이는데 일정상 집회 관리가 인사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강신명 경찰청장은 물론 구은수 서울청장의 거취가 두 집회에 달려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강 청장의 경우 스스로가 내년 8월까지 임기를 모두 마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하고 있지만, 내년 4월 총선 출마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구은수 서울청장도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데, 총파업이나 3차 민중총궐기대회에서 자칫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경우 인사를 목전에 두고 거센 후폭풍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앞서 강 청장은 11월21일 사상 처음으로 민주노총 본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해 사실상 민주노총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한 바 있다. 또한 경찰은 1차 민중총궐기대회와 관련해 715명에 대해 수사중이며,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한 53개 단체 대표에게 출석 요구서를 보내놓은 상황이다. 경찰은 3차 출석 요구에도 응하지 않을 경우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방침인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노동 개혁 5대 법안의 연내 처리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지만 좀처럼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노동 개혁 5대 법안은 근로기준법과 고용보험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기간제 근로자법과 파견근로법 등을 일컫는다. 이 중 비정규직법과 관련된 기간제 근로자법과 파견근로법을 놓고 정부와 노동계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기간제 근로자법은 35세 이상 근로자가 원할 경우 기간제 계약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정부에서는 늘어난 기간만큼 숙련도가 향상돼 정규직 전환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기간만 연장하는 것은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미봉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파견법은 파견업무를 확대하자는 것인데, 파견이 가능한 업무는 현재 32개로 제한돼 있다. 정부는 파견허용 업무 규제를 풀면 특히 고령자들이 질 높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파견업종을 확대하면 오히려 기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해칠 것이라는 입장이다.

노동 개혁 5대 법안은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진 지 3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법안 심사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노동 개혁법안들이 올해 처리되지 못하면 내년 4월총선 등과 맞물려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현대판 소도’ 조계사 
‘소도(蘇塗)’. 삼한시대 때 죄인이 도피해도 잡지 않았던 신성지역을 말한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25일간 피신해 있던 조계사는 현대판 소도라고 불린다. 처음에 이러한 역할을 맡았던 곳은 명동성당이었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당시 명동성당은 이른바 민주화 성지 역할을 했다. 종교시설로 피신한 사람에 대해서는 해당 종교단체의 허락 없이 체포해가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생기면서 경찰에 쫓긴 많은 사람이 명동성당을 찾았다.

그러나 1995년 한국통신 노조 간부들을 체포하기 위해 명동성당에 처음으로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불문율은 깨지기 시작했다. 명동성당 역시 빈번해진 장기 농성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1999년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이던 지하철 노조원과 2001년 단병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명동성당은 일부 집단의 이익을 위한 곳이 아니다”며 퇴거를 공식 요청한 바 있다.

명동성당의 뒤를 조계사가 이었다. 2008년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수뇌부와 이석행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 몸을 숨긴 곳이 조계사다. 2013년에는 김명환 전 철도노조 위원장과 지도부도 조계사를 찾았다. 이보다 앞선 2002년 발전노조 조합원 150여 명이 조계사에 은신해 있었는데, 이때 경찰은 처음으로 조계사 경내로 강제 진입을 시도한 바 있다. 조계사는 이번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사건까지 포함해 2000년대 들어서만 모두 4건의 노동·사회운동의 피난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조계사가 ‘범법자의 도피처’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조계사는 앞으로 있을 ‘제2의 한상균 사태’를 대비해 자체 매뉴얼 마련을 고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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