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인터뷰 "부산 해운대에 출마한다"
  • 김지영·조유빈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5.12.16 15:25
  • 호수 1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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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새누리당 입당한 안대희 前 대법관

2003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 여야 불법 대선 자금 수사를 통해 일약 ‘국민 검사’로 도약한 안대희 전 대법관. 그가 2016년 4월13일 총선을 4개월 앞둔 시점에 법조계를 떠나 정계에 ‘공식’ 입성했다. 지난 12월7일 새누리당에 입당한 것이다.

안 전 대법관을 잘 아는 지인은 “안 전 대법관은 평소에도 공직에 대한 의욕이 강하다”고 말했다. MB 정부와 통하지 않았을 뿐 공직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많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과는 통했던 것일까. 2012년 8월 새누리당 정치쇄신위원장을 맡았다. 두 번 만난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정치쇄신위원장 시절 그는 “난 정치인이 아니다”고 여러 차례 선을 그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자유인이 됐다”며 여행 다니고, 볼링도 배우면서 ‘야인(野人)’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이명박(MB) 정부 때까지만 해도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검찰청사에서 대법원으로 출근 장소만 바뀌었을 뿐 1980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용된 이래 줄곧 법조계에만 몸담았다. MB 정부에서 국무총리나 법무부장관, 감사원장 등 자리가 빌 때마다 하마평에 오르내렸던 그다. 그때마다 그는 기자에게 “내가 이 정권(MB 정부)과 맞는 사람이 아니지 않으냐”며 손사래를 쳤다. 한편으론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얘기로도 들렸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5월 국무총리 후보로 낙점됐다가 ‘전관예우’ 논란이 불거지면서 사퇴했다. 이후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에 있는 법무법인 ‘평안’의 대표 변호사로 있으면서 와신상담했다. ‘국민 검사’ ‘청빈검사’ ‘강골 검사’ ‘원칙주의자’로 명성을 날렸던 그다. 스스로 “눈물이 많은 편”이라고 했던 그에겐 총리 낙마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였을 법하다. 그래서 장고(長考) 끝에 빼든 칼이 ‘총선 출마’였던 것 같다. 올해 들어 정가에선 안 전 대법관의 내년 총선 출마설이 나돌았다. 서울이나 부산에서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그리고 최근 “부산에서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산 어느 지역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부산 동구 혹은 해운대구라는 관측만 무성했다.

그런 그가 12월9일 오후, 법무법인 ‘평안’사무실에서 시사저널 취재진과 만나 마침내 ‘최종’ 출마 선언을 했다. 그는 “부산 해운대구에서 출마하겠다”며 “선거구 획정으로 분구(分區)가 예상되는 해운대구에서 출마하겠다”고 명확히 밝힌 것이다. ‘부산 해운대구 출마’ 결심을 언론에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불법 대선 자금 수사 때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을 ‘차떼기 정당’으로 전락시킨 주역이었던 그가 새누리당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이날 그는 봉황 문양이 인쇄된 ‘청와대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야당의 反공권력 분위기도 여당 선택한 이유”

12월7일 새누리당에 입당했는데 좀 늦지 않았나.
(2012년) 대선 캠프에서는 선거운동원(정치쇄신특별위원장)이었던 것이고, 이번에는 정치 입문을 하면서 입당한 것이다. 그 시기는 크게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유독 검찰 출신들이 여당에 많이 입당한다. 그 이유를 뭐라고 보나.
전체를 생각하느냐, 개인을 생각하느냐의 차이다. 결정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법조인들이 지향하는 공익·질서·법치 등이 여당의 틀과 맞는 부분이 있다. 다른 이야기지만 새누리당 캠프에 갔던 이유 중 하나가 당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의 반(反)공권력 분위기 때문이었다. 유재만 변호사(불법 대선 자금 수사 당시 중수2과장)도 민주당 비례대표를 하려다가 하지 않았다. 민주당 측에서도 검찰 출신을 포용해야 한다.

‘친박’(친박근혜계)으로 분류되는 것에 동의하나.
내 입으로 얘기한 적은 없지만 박근혜 대통령 후보 시절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대선 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외부적으로 많이 표현했고, 총리 후보 지명을 받았던 것도 친박으로 분류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친박이라고 단정 지어 얘기할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동의하고, 뒷받침하려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어떤 국정 철학에 동의하나.
지금 4대 개혁 문제, 국기(國基) 바로세우기 등이다. 현 정부의 의지에 공감하기 때문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 대통령과의 첫 인연은 언제인가.
외부에서 본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뵌 것은 2012년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을 때가 처음이었다. 진영논리로 내가 만든 가치가 새누리당에 있다고 봤다. 부조(扶助)라고 해야 할까. 몸으로 가서 돕고 싶었고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곳에 갔다.

대통령과 평소 연락하나.
답변하기가 좀 그렇다.

출마 지역에 대해 여러 관측이 있다.
부산 지역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역구는 분구가 예상되는 해운대구다. 해운대구 우동에 사무실을 준비하고 있다. 예비후보 등록을 한 후에 사무실을 운영할 것이다. 지금까진 운영되지 않았다. (해운대구엔) 현역 의원을 비롯한 훌륭한 경쟁자가 많다. 이에 맞서서 정정당당하게 경선하면 된다.

왜 부산 해운대구인가.
그동안 경제 성장을 견인한 것은 서울이었다. 그 결과, 제조업이 급진적으로 많이 발전했다. 이제는 문화 콘텐츠, 해양 물류, 금융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부산은 항만을 끼고 있어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도시다. 또 정치 개혁의 중심지 역할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부산과 개인적인 인연도 있다고 하는데.
부산 태생이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있었고 범일동·수정동에 살았다. 해운대는 부모님이 10여 년 사셨다. (2000년)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시절부터 매년 1월1일 해운대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부산에는 아직 여동생이 살고 있고, 다른 친척들도 있다. 부산지검 특수부장, 동부지청장, 고검 차장, 고검장 이렇게 네 번을 부산에서 근무하면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났다. 직원들 외에 부산 오피니언 리더들과의 관계도 많이 형성됐다. 올바른 일을 할 때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1. 2004년 3월8일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불법 대선 자금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2. 2006년 7월10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사법시험 동기인 안대희 신임 대법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국무총리 후보 사퇴는 자의적인 판단”

만약 당선이 되면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가.

서민을 위한 개혁을 주 포인트로 삼고 일해왔다. 그것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대법관으로서 법률 판단도 해봤고 검사로서 법률 집행도 해봤다. 입법 작용도 법의 가치를 실현하는 중요한 요소다. 입법은 질서일 수도, 정의 실현일 수도 있다. 어려운 사람과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포함되고, 사회를 바로잡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입법을 통한 정치 활동과 법의 가치를 실현하면서 ‘가진 사람의 횡포’를 규제하고 싶다.

출마를 결심한 것은 언제쯤인가.
원래 정치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부터 주변의 권유를 받았다. (총리 낙마 후) 국민들께 봉사할 기회를 못 가졌기 때문에 다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건 수사와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성원을 입은 것이 많았다. 그때 국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마지막으로 돌려드리는 것이 정치인으로서 봉사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정치에 불신이 있어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금 정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정치는 경제 문제에서도 해답이 된다. 금융 개혁 입법이 안 된 상황에서 IMF(외환위기)에 빠진 것 아닌가. 정치 발전이 우리나라, 국민이 살길이다. 그 길에 일조하고 싶다.

남기춘 전 서부지청장(불법 대선 자금 수사 당시 중수1과장) 등과 ‘우검회’라는 모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목 모임인데 보도가 됐더라. 2003년 불법 대선 자금 수사를 같이 한 사람들끼리 만나서 밥 먹는 모임이다. 눈치 안 보고, 국민들만, 앞만 보고 수사했다는 뜻으로 ‘우직한 검사들의 모임’이다. 명칭은 내가 지었다. 수사가 끝난 후인 2005년 만들어졌다. 불법 대선 자금 수사팀이 우검회다. 탈퇴한 사람들도 있고, 친목 모임에 불과하기 때문에 언급될 이유가 없다. 보도되고 나서 모임도 취소했다.

우검회 회원들은 총선 출마를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우려하는 바도 있다. 정치는 더러운 정치일 때 불신을 받는다. 수사 검사, 대법관 출신이 정치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스러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은 깨끗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시대다.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고쳐나가면 된다. 새로운 정치 모델이 돼보라는 격려도 받았고, 잘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과 경찰, 국세청 등 규제기관을 개혁하겠다”고 했다.
검찰·경찰·국세청 등을 비롯한 규제기관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규제가 필요하다. 규제기관들이 하는 것은 규제이지 권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변호사 활동을 해보니 규제기관들의 권위적인 모습들이 보이더라.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최근 한 강연에서 민중총궐기대회에 대해 “시위대가 쇠파이프로 경찰 때리는 것을 보면 법질서가 확립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경찰의 과잉 진압이 폭력 시위를 유발했다는 지적도 있다.
질서란 타인에 대한 배려다. 일부 시위하는 사람들이 경찰이나 공권력을 타도해야 할 대상, 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쇠파이프로 경찰을 때리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TV로 그 현장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20~30% 국민들이 ‘괜찮다’는 여론을 갖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있고 그것은 법률의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 정당하게 진행하면 문제가 없지만 그 정도를 지나치면 안되고, 큰 불편을 초래해서도 안 된다. 지인이 시위 때문에 자기 집에 돌아가는 데 여섯 시간이 걸렸다고 하더라. 정당한 시위, 정당한 집회 때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수할 수는 있지만 지나치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과거의 권위주의적 정부라면 그럴 만한 명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민주주의 사회다.

3. 2012년 9월5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과 김종인 국민행복특위 위원장(오른쪽) 등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4. 2014년 5월28일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사퇴 발표를 한 후 고개를 숙였다. © 연합뉴스


“대선 출마는 입법 활동 후 할 얘기”

서민 목소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시위 양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쌀 수입 등 서민과 관련된 문제들이 지금도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그것은 국회에서 반영해야 할 목소리다.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정치고, 사회 통합을 하는 것이 국회 역할이다. 불만의 목소리는 누구에게서나 나올 수 있다. 결정이 되면 따라야 하는 것이고, 정당한 절차나 방법에 의해서 하는 것이 맞다.

북한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나.
이중적이다. 우리 동포가 살고 있는 나라인 것은 맞지만, 또 우리의 체제를 위협하는 나라인 것도 틀림없다. 체제도 보호해야 하고, 북한 동포도 생각해야 한다. 북한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또 북한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가 우리 과제이기도 하다. 궁지에 몰아 반발을 초래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만만하게 보여서도 안 된다. 이러한 이중성에서 갈등이 생긴다. 김일성사상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안보 문제를 도외시하고 단일 민족, 동포라는 사실만 강조한다. 한쪽은 북한을 적이고 원수라고 본다. 현실적인 문제와 심정적인 문제를 구분해서 대응해야 한다.

지난해 국무총리 후보직을 중도에 사퇴했다.
지나간 일을 변명하고 싶진 않다. 사람의 일에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고, 죄송한 일도 있다. 그 일은 국민들에게 송구스러운 일 중 하나다. 당시 (6월4일) 지방선거에 쟁점화가 돼 있어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당이나 대통령에게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사퇴는 자의적인 판단에서 결정한 것이다.

총리 후보로 내정되자마자 차기 대선 주자로도 거론됐다. 대선 출마에 대해선.
현재로서는 그런 생각이 없다. 열심히 입법활동을 하고 나서 그 뒤에 할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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