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산케이를 세계적인 신문으로 만들어준 구세주”
  • 유재순│일본 제이피뉴스 대표 (sisapress.com)
  • 승인 2015.12.23 17:54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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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 산케이신문 前 서울지국장 무죄 판결 대서특필
일본 언론은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무죄 판결을 받은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 연합뉴스

12월17일, 이날은 대한민국이 ‘견문발검 간뇌도지(見蚊拔劍 肝腦塗地, 모기를 보고 칼 빼들었다가 간과 뇌 등 온몸이 흙투성이가 됨)’가 된 날이다. 국격(國格)이 완벽하게 실종된 날이기도 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이동근 부장판사)는 이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의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9) 전 서울지국장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가토 전 서울지국장은 2014년 10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지난 10월 1년 6개월의 징역을 구형받았다. 하지만이날 재판부는 “피고인(가토 전 서울지국장)의 기사가 허위 소문을 근거로 기사를 작성, 박 대통령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사실이지만 공익적인 목적이었음을 고려할 수 있고, 또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해당 기사는 언론의 자유 보호 영역에 포함되므로 무죄”라고 선고했다.

문제가 된 기사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소문을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보도한 것. 당시 소문으로 떠돌던 정윤회씨와의 밀회에 대해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해서 가토 전 서울지국장이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에 올린 것이다.

“그냥 무시했어도 되는 글이 확대 재생산돼”

가토 전 지국장이 2014년 10월 기소되자 산케이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이 발끈했다. 오히려 청와대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처음에 짐짓 모른 척하던 아사히(朝日)·마이니치(每日)신문 같은 유수의 언론사까지 가세해 비판했다. 나중에는 일본 보도기관을 뛰어넘어 세계 언론사로 확대됐다. 결국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스캔들은 세계적인 스캔들이 돼버렸다.

차라리 무시했으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을 것이다. 가토 기자가 쓴 기사는 엄밀히 말하면 제대로 된 기사랄 수도 없는, 옐로페이퍼 기사 거리였다. 가토 기자가 직접 취재한 내용도 전혀 없거니와, 그의 말대로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했든, 혹은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조합했든, 기자로서의 기본 상식인 ‘확인’조차 하지 않은, 말 그대로 ‘수준 미달’의 기사였다. 그래서 산케이 신문 지면에도 실리지 못한 채 인터넷판에 게재하게 됐다. 사건 초기 아사히나 마이니치신문 등이 선뜻 나서지 못하고 관망만 했던 이유도 바로 이 기사의 질적 수준에 있었다.

때문에 이들 언론사가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가토 기자가 정식으로 기소된 후부터였다. 당시 일본 기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은 “엄밀히 말하면 그 글은 연예인 스캔들 같은 가십 거리지 기사랄 수도 없다. 그 글에 대한 현명한 대처는 그냥 싹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흐지부지 잊혀간다. 그런 글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며, 그 글에 관심이 없던 이들까지 관심을 갖게 만드는 확대 재생산 효과만 생길 뿐이다.”

일본 기자들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냥 무시했으면 지극히 일부만 보고 자연스럽게 묻혔을 사안이, 일국의 대통령을 모욕했다하여 기소하는 바람에 일본 열도 전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언론 스캔들이 돼버렸다.

어디 그뿐인가. ‘세월호-박 대통령의 미스터리 7시간-정윤회’로 이어지는 보도가, 시도 때도 없이 TV방송 매체와 일본 언론에 노출되다 보니 나중에는 정말로 믿는 일본인이 많아졌다. 급기야는 “박 대통령이 독신인데 밀회할 수도 있지. 뭐가 나빠?”라고 옹호하는 일본인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강해져

12월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1심 판결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름아닌 가토 기자를 포함한 산케이신문사와 그리고 반한(反韓)·혐한(嫌韓) 성향을 지닌 극우 일본인들이었다. 산케이신문 도쿄본사 기자가 필자에게 들려준 말이다. “가토 기자 기소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산케이신문은 일본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는 이류 신문사였다. 경제 전문 매체다 보니 발행부수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고, 특히 젊은이들의 산케이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어 언론 매체로서 딜레마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그런 수렁에서 건져준 것이 바로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 덕분에 산케이의 일본 내 인지도는 물론이고 하루아침에 이류 신문에서 언론 자유를 수호하는 세계적인 산케이신문이 됐다. 때문에 산케이신문 내부에서도 우리끼리 얘기할 때는 박 대통령이 산케이의 구세주라고 부른다.”(웃음)

실제로 가토 기자는 박 대통령의 명예훼손 기소 사건으로 일약 언론 자유를 수호하는 영웅이 됐고, 지난 4월 한국에서 일본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베 총리가 일부러 관저로 불러 “수고했다”고 위로를 해주기도 했다. 산케이신문 또한 박 대통령 덕분에 젊은이들까지 관심을 갖는 등 인지도를 높여, 가토 기자의 기소 덕에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유·무형의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판결이 나기 며칠 전부터 각 방송사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12월17일에 가토 기자에 대한 판결이 나올 예정이라고 일제히 애드벌룬을 띄웠다. 특히 16일에는 수시로 이 같은 정보를 내보냈고, 17일 오후 2시가 되면서부터는 아예 대놓고 생중계를 하다시피 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모습과 박 대통령의 얼굴을 오버랩시켜가며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보여줬다. 한 민방은20~30분마다 한 번씩 판결이 늦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친절하게 알려주기까지 했다. 언론 관계자 게스트들을 불러놓고 “일본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이니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이라고 한껏 조롱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각 민방이 대동소이했다. 판결이 나온 오후 5시쯤까지 그렇게 박 대통령과 한국 사법부에 대해 능멸하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이제 ‘유죄’ 판결만 나오면 그들의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결론만 내면 됐다. “역시 한국은 아직도 독재 국가다. 언론 자유도 없고 일본에 대해서는 오로지 역사 문제를 거론하며 사과와 배상만을 요구하는, 상대할 수 없는 나라다”라고.

그런데 유죄가 아닌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한국을 비판할 만반의 준비를 한 방송사들과 일부 우익 성향의 산케이 같은 신문사였다. 산케이신문은 일본어와 영어판 ‘호외’까지 발행하는 등 요란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타사 기자들이 “일개 기자 사건에 웬 호외?”라고 빈정댈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대한 일본 언론의 관심은 지대했다. 공영방송인 NHK를 비롯한 각 민방들이 ‘속보’ 형식으로 법원 앞에서 5분 이상 생중계를 했으며, 저녁 뉴스 시간에는 모든 방송사가 일제히 톱뉴스로 판결소식을 전했다. 일간 매체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속보로 인터넷에 가장 먼저 톱뉴스로 올렸고, 18일 조간신문에도 모든 언론 매체가 1면 톱뉴스로 가토 기자의 무죄 소식을 전했다. 일본 언론은 이번 판결을 앞두고 한국 외교부가 ‘일본 측의 선처 요청을 재판부가 고려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재판부에 보낸 사실을 높게 평가했다. 그동안 한·일 관계에서 보여준 외교부의 태도로 볼 때, 이번 공문은 매우 이례적이면서 한·일 관계에 좋은 영향을 주는 징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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