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통 기업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 김지영 기자 고재석 기자 (kjy@sisabiz.com jayko@sisabiz.com)
  • 승인 2015.12.24 10:40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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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혜 베인앤컴퍼니 고객전략마케팅 파트너 인터뷰

송지혜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는 한국 유통산업을 '정글 그리고 등대'에 비유한다. 송 파트너는 전략컨설팅업체 배인앤드컴퍼니코리아에서 고객전략마케팅 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유통과 소비재 분야에서 15년간 컨설팅한 베테랑이다.

2015년은 유통 시장에서 구조적 변화가 많은 시기였다. 한국 유통 시장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디지털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갖가지 커머스(Commerce) 사업 모델이 등장했다. 견고했던 온오프라인 경계가 무너지고 기업들은 유연한 옴니채널 사업을 확대했다. 제조와 유통, 결제까지 한번에 이어지는 통합 상품과 서비스가 줄줄이 출시됐다. 

이에 한국 유통산업은 아무도 가지 않은 정글로 들어섰고 세계 유통 시장과 산업을 끌고 가는 등대가 될 것이라고 송 파트너는 설명했다. 

시사비즈는 지난 21일 서울 중구 태평로 베인앤컴퍼니코리아 사무실에서 송지혜 파트너를 만났다. 

송지혜 Bain&Company 고객전략마케팅 파트너가 21일 시사비즈와 만나 한국 유통 시장 현황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사진=시사저널 최준필

◇ 미래 유통 시장의 네 가지 트렌드 

유통 시장은 2015년 구조적 변화를 많이 겪었다. 송지혜 파트너는 유통 시장 특성로 4가지 추세(트렌드)를 꼽았다. 저성장, 디지털 커머스(Digital Commerce), 사업 간 가치 사슬 붕괴, 소비자 중심 서비스 확산이다. 
그는 전통적 유통산업의 성장시기는 끝났다고 봤다. 그는 “일본 백화점은 성장을 멈춘 지 꽤 됐다. 오프라인 채널은 역성장하고 있다. 한국 역시 성장세가 완만해지는 변곡점에 있다. 앞으로 '메르스 사태' 같은 어려운 일이 상시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견디다보면 언제가 나아진다고 기대하지 말라고 지적하며 “저성장 상황에서 어떻게 수익을 내는 모델을 만들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이 미래 유통 시장에서 가장 큰 화두가 될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디지털 커머스다. 송지혜 파트너는 “온라인 시장 침투율은 앞으로 4년간 26% 증가해 2019년엔 소비자 60%가 온라인으로 상품을 구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에서 디지털 커머스는 ‘전 국가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그는 “중국에선 디지털 커머스 선두업체들만 점유율이 높고 나머지는 아직 영세하다. 미국에서도 실리콘밸리 등 일부 지역만 디지털화했다. 반면 한국은 유일하게 전 국가적으로 디지털화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전 세계 어느 기업도 겪지 못하는 현상이다. 

제조·유통·서비스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면서 가치사슬이 붕괴하고 있는 것도 큰 변화라고 송 파트너는 지적했다. 그는 “유통채널이 직접 상품을 만들어 제조업에 진출하고 반대로 제조업이 매장을 열고 유통업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체가 PB(Private Brand·유통업체가 상품을 위탁생산한 뒤 유통업체 브랜드로 내놓는 것) 상품을 개발하는가 하면 제조업체가 매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송 파트너는 이를 가치 사슬이 붕괴되고 다시 융합하는 시도라고 해석한다. 그는 “유통업체는 자기 브랜드 상품 없이는 온라인 채널과 차별화할 수 가 없다"며 “유럽에선 유통업체 수익 60~70%는 자기 브랜드에서 나온다. 한국에서도 PB상품 성장률이 지난 5년간 연평균 8%에 이르므로 PB 상품 없이 성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제조업체가 매장을 내고 고객과 만나는 형태도 기존 가치사슬을 붕괴시키고 있다. 그는 아모레퍼시픽 전략을 예로 들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0년대 후반 제조에서 유통으로 넘어가며 화장품 등 고관여 상품 위주로 자사 매장을 열었다. 유통을 모른채 제조에만 몰두해선 성장성과 수익성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마지막 흐름은 고객 기반 서비스의 확장이다. 그는 “저성장, 모바일 시장 확대, 가치사슬 붕괴로 경쟁이 심해지면서 다시 소비자에게 집중하는 서비스로 회귀할 것”이라고 내다 봤다. 디지털 기술도 결국 고객을 잡아두기 위한 수단이라는 지적이다. 오프라인 유통채널이 체험을 제공하는 공간 마케팅을 벌이고 이마트가 현대카드와 제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디지털화만 빠르지 사업모델 만들기는 늦다” 한국 유통산업의 역설 

“한국은 앞서있지 않다.”

송지혜 파트너는 한국 유통업계가 착시현상에 빠져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디지털화는 빠르지만 디지털 커머스 사업 모델이 앞서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커머스 사업 진화단계 상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보다 오히려 뒤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디지털 커머스는 개별 판매자가 고객을 만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플랫폼을 제공하고 수수료만 받았다. 국내 백화점 사업 모델과 비슷하다.  

미국 백화점은 납품업체에게 상품을 사서 소비자에게 파는 방식을 선호한다. 반면 국내 백화점은 판매업자에게 매장을 제공하고 수수료만 챙긴다. 매장에 기반하지 않는 온라인화가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내 오프라인 업계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도 디지털 커머스 사업모델이 성장정체증에 걸리게 하는데 기여했다. 오프라인 업체들은 온라인 사업에 시장을 뺏긴다고만 생각했다. 매장을 온라인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탓에 오픈마켓의 플랫폼을 흉내내거나 오픈마켓에 입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송 파트너는 아마존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아마존은 재고를 쌓아놓고 물건을 직접 판다. 그는 “고객 만족을 실현하기 위해 사업자를 엄격하고 선정·교육하고 브랜드를 설계하는 사업모델을 빨리 도입해야 한다"며 "짝퉁 옥션, 짝퉁 지마켓이 아니라 오프라인과 온라인 상품과 경험을 맞물리는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소셜커머스는 해외에서도 통할 좋은 사업 모델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소셜커머스 업체는 성장성을 극대화해 기업가치를 높이는게 1차 목표다. 송파트너가 만난 소셜커머스 관계자들은 2~3년 안에 오프라인 매체만큼 수익을 끌어올리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존 등 유수 미국 디지털 커머스 업체들은 단기간에 수익을 많이 올려 기업가치를 높인 건 아니라고 송 파트너는 설명한다. 

핵심은 플랫폼 장악이다. 송파트너는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고객 접점을 늘리고 고객이 해당 플랫폼과 서비스를 충분히 경험하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프라인 업체들이 매장에 투자할 비용을 고객 접점에 투자하겠다는 발상이다. 고객 접점을 장악하면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수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직 한계는 있다. 소셜커머스 상품은 구매액이 작고 특정 카테고리에 제한되다보니 물류 효율이 떨어진다. 송 파트너는 “쿠팡과 티몬은 초창기부터 30대 여성 고객을 목표로 생필품 판매에 주력하다보니 30대 여성이 많이 쓰는 의류, 화장품, 명품 등에선 소구력이 낮다”고 설명했다. 그는 “1만~2만원에 불과한 1회 결제금액을 10만~20만원까지 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송 파트너는 ‘물류관리’와 ‘소싱(sourcing·구매)’에서 답을 찾는다. 그는 “물류센터를 많이 짓는게 물류관리의 본질이 아니다. 고객에게 적시 배송할 수 있는 재고 적정량을 물류센터에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통업게가 물류센터를 많이 짓고 있지만 소싱과 재고관리 역량을 강화하지 않으면 경쟁하기 어렵다. 송 파트너는 “좋은 제품을 좋은 가격에 적절한 시기에 맞춰 물류센터에 쌓아놓을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며 "국내 유통업체들이 갖지 못한 역량”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식품, 패션처럼 정형화하지 상품은 소싱 경쟁력을 갖추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신선식품 등은 좋은 도매상, 영농조합 등과 긴밀히 연결해 상품을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유통업체마다 비정형화 상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송 파트너는 강조했다. 

◇ 검색·구매·결제를 한번에 

모바일 쇼핑이 확대되면서 소비자는 검색부터 결제까지 쇼핑 전 과정을 간편하게 해결하기를 원한다.

미국 소비자는 아마존에서 상품을 검색한다. 구글 등 검색엔진에서 상품을 찾는 사례는 흔치 않다. 검색과 쇼핑이 하나로 연결된 것이다. 송 파트너는 “한국에서도 아마존 같은 쇼핑의 최강자가 나온다면 쇼핑 관련 게이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소비자도 네이버 검색을 거치지 않고 특정 업체로 바로 가서 물건을 찾는다는 뜻이다. 한국에 아마존 같은 업체가 없다보니 네이버 쇼핑이 유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오픈마켓 같은 중개업은 설 자리가 줄어든다. 가격경쟁이 심해지는데 중개 수수료를 얹어 파는 방식은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송 파트너는 “온오프라인을 통합하는 유통업체가 등장하면 검색과 쇼핑을 잇는 다리가 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이런 통합 모델은 검색과 구매 뿐만 아니라 결제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통과 간편결제가 융합하고 있다. 롯데 L페이, 신세계 SSG페이, 카카오페이 등이 선두 주자다. 

송 파트너는 '완결된 경험'을 주기 위해 유통업체가 간편결제 시장에 경쟁적으로 진입한다고 본다. 검색부터 구매와 결제까지 하나의 플랫폼에서 가능하다면 온·오프라인의 통합된 경험, 편의성, 마케팅 효과까지 있어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는 “고객 경험 차별화와 검색·구매·결제 과정을 하나로 묶기 위한 목적이 크다. 유통업체는 수익창출보다 고객 지키기, 고객 경험 차별화 차원에서 간편결제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간편결제 인프라는 아직 부족하다. 중국에선 알리페이, 위쳇페이 등이 통합 플랫폼을 만들고 범용으로 쓰이고 있다. 반면 국내 업체들은 폐쇄적인 플랫폼을 채택하다보니 쿠팡가면 쿠팡 간편결제, 신세계 가면 신세계 간편결제 시스템을 사용해야 한다. 유통업체 입장에선 차별화 전략이지만 고객 입장에선 불편하다. 폐쇄 전략을 고수하면 서비스 품질이 떨어진다. 송 파트너는 "유통업체들이 함께 참여할 통합 플랫폼을 만드는 방안을 모색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유통업계는 저성장시대에 모바일과 디지털 커머스에 적합한 통합 서비스를 찾아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송 파트너는 "이런 측면에서 한국은 아주 흥미로운 시장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위험 부담이 크지만 세계 최초로 시도하는 서비스가 많기 때문이다. 
세계 유통업계에서 한국은 ‘라이트 하우스(등대) 시장’으로 통한다. 급속한 디지털화와 모바일 커머스 성장 덕분이다. 송지혜 파트너는 “혁신적인 사업 모델들을 선보이기 시작하면 한국은 세계 유통 시장을 주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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